글
황립, Tragic Romanticism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가 내게 했던 말이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Tragic Romanticism
by. MARU
빛나는 것은 지기도 쉽다. 별똥별처럼 빠르게 제 몸을 불사르며 사라진 비운의 천재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냈고 그만큼 쉽게 잊혀져갔다. 세상에 그를 대신할 사람은 많았다. 그를 잊지 못하는 자들은 소속사와 일부의 팬들 뿐이었다. 그들은 떨어진 별을 다시 하늘 위로 올릴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그 수많은 방법들 중 하나가 나였을 뿐이다. 나는 그들의 생명줄이 될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저 그런 썩은 동앗줄이 될 수도 있었다.
덜컹거리는 차 덕분에 속이 메스꺼웠다. 금방이라도 올라올것 같은 토기를 진정시켜러 창문에 머리를 기댔지만 덜컹거리는 통에 더 속이 안좋아져 결국 허리를 꼿꼿이 핀 채 앉아야만 했다.
"선생님, 물 좀 드릴까요? 아니면 창문 열어드릴까요? 그래야 좀 속이 진정될텐데.."
"아뇨, 감기 기운이 있어서요. 물만 주세요."
물을 삼키어 억지로 올라오는 것을 막아버리고 창 밖을 봤다. 온통 나무와 풀 쪼가리들 뿐이었다. 네모난 틀 사이로 초록색과 갈색이 빠르게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이 두가지 색을 두시간째 보고 있다. 깊고 깊은 산 속 작은 오두막집. 비운의 천재가 스스로를 가둔 성. 그는 무슨 이유로 이곳에 갇혀버린걸까.
"도착하려면 멀었으니 눈 좀 붙이세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운전석에 있던 사람이 흘끗 쳐다보았다. 눈 좀 붙이라는 그 한마디에 마법이라도 걸린것 처럼 스르륵 눈을 감겼다. 빠르게 밀려오는 수마에 약이라도 진탕 먹은 것 마냥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어디, 여긴 누구?
-
나는 하늘을 둥둥 날고 있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덜컹거리며 구름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법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가르며 천사들이 저마다의 날개를 퍼덕거리며 하늘로 태양으로 높이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날개를 힘껏 퍼덕이며 태양 가까이로 날아가려 안간힘을 썼다. 수많은 빛의 무리에서 한명의 천사가 나에게로 날아와 입을 연다.
"선생님, 다 왔어요."
그 순간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내 것은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져 버렸다. 굳어가는 밀랍과 깃털을 손에 있는 힘껏 쥐어보았지만 결국 그건 쓰레기일 뿐이었다. 나는 빠르게 땅으로 정처 없이 흔들리며 떨어짐과 동시에 꿈에서 깼다. 벌떡 뜨인 눈동자에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몸을 흔들던 손을 떼는 사람들이 보였다.
"너무 곤히 잠들어 계시길래 깨울까 말까 고민 많이 했어요."
"아닙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 보이는 집이 그가 살고 있는 곳이에요. 여기서부터는 차가 들어갈 수 없으니 선생님 혼자 가셔야 될 거에요."
그들이 가르키는 집을 보며 나는 생각을 대폭 수정해야만 했다. 오두막집이라 해서 하이디가 뛰어놀것만 같은 작은 집을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게 돈의 힘이구나. 나무로 지어진 성이라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집이 눈을 가득 채웠다. 저건 통유리인건가. 벽 한면을 통유리로 해놓은 것은 종종 보았지만 저렇게 큰 것은 처음이었기에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 졌다.
"저 집이 맞나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한 번 더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인다. 저 커다란 집에서 우울증에 걸린 천재 하나랑 나, 이렇게 둘이서 사는 건가. ……나까지 미치지 않으면 다행이겠군.
차를 타고 떠나버리는 그들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선생님 믿고 있어요, 힘내세요. 그 한마디만을 남긴 채 매정하게도 빠르게 떠나버린 그들이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타고 사라락 거리는 소리가 귓속을 웅웅 거리며 부유한다. 그 감각을 즐기고 있을 때 쯤 커다란 대문이 길을 가로 막았다.
도착해버렸다. 나무의 성에.
소속사를 통해 받은 열쇠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다. 근데 이거 무단침입 아닌가. 모르겠다. 그쪽이 알아서 잘 수습 해주겠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조용히 열리는 문에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집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별 천지가 눈 앞에 펼쳐졌다.
세상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기에 돈도 많이 벌었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벌었을 줄은 몰랐다. 투박한 겉과 달리 세련된 집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섣불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안된다 카사마츠 유키오. 여기서 밀리면 안돼.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기죽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키세 료타님 계십니까?"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그를 찾던 중 거실 한복판 카페트 위에 헝겊 조각 마냥 널부러져 있는 인영이 보인다. 슬쩍 눈을 떴다가 감는 그 얼굴이 바로 내가 찾던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겐타 사장님의 부탁을 받고 키세씨를 치료하러 온 카사마츠 유키오라고 합니다."
제법 크게 말했는데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는 내 쪽을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부드러워 보이는 카페트에 몸을 파 묻은 채 텅빈 눈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는 미쳐도 단단히 미친것 같았다. 새하얀 얼굴에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를 밀랍 인형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한 때 무대위에서 반짝거렸을 머리카락은 푸석하게 가라앉은지 오래되어 보였다.
멈춰버린 그의 시간 속 입만이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미동도 없이 조용히 입술만 열었다 닫으며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가 제법 귓가에 익숙했다. 아닌 익숙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늘 들려주던 클래식 중 하나였다. 쇼팽 왈츠 10번. 음악의 천재가 19살 때 작곡했다고 알려진 이 곡은 내 눈 앞의 천재와 퍽 잘 어울렸다.
가만히 서서 그를 관찰하는 것도 지겨워 소파에 기대고 앉았다. 사실 한참 전부터 차를 타고 왔기에 지친 몸뚱아리를 편히 누이고 싶었을 뿐이다. 편안하게 온 몸을 감싸주는 푹신한 감촉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자본주의 만세.
"....라라리라루.."
내가 거슬렸는지 노래가 잠깐 끊겼다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에 안심했는지 자연스럽게 다시 이어진다. 따라라 라리라루. 그는 노래를 부르고 나는 맞은편에 앉아 그의 노래를 감상한다.
이제까지 만난 환자들 중 가장 기묘한 첫 만남이다.
이곳에 올때까지만 해도 머리위를 비추었던 해는 어느새 산 너머에 걸려있었다. 그의 노래도 멈춘 지 오래였다. 적막한 공기 속 작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그 한 마디만을 남긴 채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덩그러니 홀로 남은 거실속에서 나는 그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입속에 머금어 보았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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