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이이와] 이별하지 못한 이별 속에서
[오이이와]
이별하지 못한 이별 속에서
by. 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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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와이즈미는 벽에 바싹 붙었다. 그를 찾는 발걸음들이 길거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젠장. 최대한 숨소리를 죽이며 조금 더 골목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거친 욕설과 함께 그림자가 발밑을 스쳐 지나간다. 여기서 걸렸다간 개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골목 끝자락으로 조금씩 조금씩 몸을 숨기며 그들이 이곳을 빨리 뜨길 기도했다. 길고양이조차 피할 캄캄한 어둠속은 지금 이 순간 이와이즈미의 안락한 피난처가 되었다. 그들이 절대 찾지 못할 거라 확신한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은 채 이와이즈미는 구석에 몸을 웅크려 앉았다. 손바닥에 달달 떨리며 고르지 못하게 닿는 숨결은 지금 그가 어떤 심정인지 잘 표현해주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손바닥을 뚫고 나가는 숨결은 너무나도 크게 들려 금방이라도 그들이 자신을 찾아낼 것 같았다. 최대한 숨을 죽이며 구석에 태아마냥 몸을 웅크렸다.
미국에 오는 게 아니었다. 주위에서는 다 말렸으나 젊은 패기로 혼자 여행을 하겠다며 고집을 부린 게 탓이었다. 아니, 밤늦게까지 술을 진탕 마시는 게 아니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경찰들을 보고 괜히 쫄아 골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룻밤 경찰서 신세를 지더라도 자신은 큰 도로변으로 다녔어야 했다. 그랬다면, 정말 그랬다면 살인사건 같은 건 목격할 리가 없었을 테니까.
처음엔 그저 술 먹은 놈들끼리 패를 가르고 싸우는 줄 알았다. 그들이 손에 쥔 게 총인지 칼인지도 구별을 못할 만큼 이와이즈미는 많이 취해있었다. 혹여 지나가다 시비라도 털릴까봐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시원한 벽에 얼굴을 대고 식히고 있던 와중에 크게 총소리가 울렸다. 영화나 게임에서나 듣던 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머리끝부터 척추 끝까지 오싹해가 만드는 소리에 비틀거리는 것을 겨우 다잡고 흐린 눈에 힘을 줘 앞을 본 순간 사람이 뒤통수가 뻥 뚫린 채 앞으로 천천히 쓰러지고 있었다. 이마에 총알을 박은채로 자신과 눈을 똑똑히 마주한 채 입을 크게 벌리고 동공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확장한 채 쓰러지는 남자의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그대로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도 총소리는 매섭도록 고막을 울렸다.
큰 충격에 멍하니 몸만 달달 떠는 이와이즈미를 발견한 것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 시체의 머리통을 총으로 갈기던 자였다. 저 새끼 뭐야? 당황한 듯 크게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에 모두가 이와이즈미를 쳐다보았고 단 하나의 목격자를 죽이기 위해 모두가 그를 향해 총을 조준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다리에 힘을 주고 제가 서있던 벽에 박히는 총알들을 뒤로 한 채 이와이즈미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갱들의 무서움은 이미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숙소 주인부부나, 음식점에서 만난 사람들 등 이곳 현지인들은 자신들과는 확연히 다른 생김새의 동양인에게 이곳 갱에 대해 몇 번이고 얘기를 해주었다. 다른 곳보다 더 질이 안 좋은 놈들이라고 관광객들 중 실종된 사람이 여럿이라고 말하며 조심하라고 만날 때마다 그에게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그럴 때마다 이와이즈미는 내심 외국인인 그에게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해 부풀려서 얘기하는 거라 생각했었다. 허나 그들은 어수룩하고 안타까울 정도로 순진하고 멍청한 외국인에게 끊임없는 경고를 했다는 것을 이와이즈미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고 후회해도 이미 너무 많이 늦어버렸다.
방해자들을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산채로 바다 속에 던져버린댔나 아니면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버린댔나. 그도 아니면 장기를 숨통도 끊지 않은 채 끄집어내 이리저리 팔아버린댔나. 그만두려 해도 이미 뻗어가는 상상력은 이와이즈미를 한층 더 공포심으로 밀어 넣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켜 화면밝기를 최저로 한 채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더라도 위치추적 정도는 해서 자신을 찾아내 주지 않을까 하는 미약한 희망을 가진 채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 긴 통화음에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던 와중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여기 사,사,사람이 죽었어요, 살,살려,살려 주세,"
말은 더 이상 이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제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간 탓이었다. 언제 당장 머리가 날라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달달 떨며 겨우 그 쪽을 쳐다보자 가볍게 제 손에서 핸드폰을 앗아간 남자는 빙글 웃으면서 그대로 핸드폰을 벽으로 던졌다. 배터리와 분리되며 화면이 틱하고 꺼지는 게 어둠속에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핸드폰을 키지 않았더라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가여워라."
"사,사,사,살려 주세요. 어디 가서 말 안할게요. 살려,살려 주세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수,수,술에, 술에 취해서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응응, 알았어요 알았어. 일단 나가서 얘기할까 우리?"
술에 취한 친구를 집에 데려가는 모양새로 남자는 이와이즈미의 팔을 어깨에 두르고 끙차, 하며 일어났다. 긴장으로 덜덜 떨리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는 모양새가 퍽이나 다정하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이와이즈미의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그는 어둠속에서 걸어 나왔다. 골목 어귀에서 총을 든 남자들이 서성이는 것이 보인다. 아, 저기 있네! 내 동료들이야, 널 찾느라 발바닥에 땀이 나게 뛰어다니는 바람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 뭐야? 키득키득 웃으며 재밌다는 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몇 번이고 살려달라는 말을 고장난 인형 마냥 되풀이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새끼마냥 발에 힘을 주고 뻐팅겼다. 학생시절 배구부였고 지금도 꾸준히 한 운동 덕에 힘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어린아이라도 다루는 것 마냥 온 몸에 힘을 주고 버티는 이와이즈미를 어린아이라도 데려가는 것 마냥 가볍게 끌고 갔다. 이 골목을 벗어나는 순간 사라질 제 목숨이 아까워 이와이즈미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질질 끌려가며 애처럼 엉엉 울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유독 느낌이 안 좋다며 여행을 가는 것을 꺼리던 어머니의 음성이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힘껏 밀어내며 우는 이와이즈미가 당황스럽다는 듯 남자는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그 발걸음을 결코 멈추지는 않는 남자의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더욱 더 서럽게 울어댔다.
어느새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강제로 끝없는 절망을 느껴야만 했다. 공포와 절망 다신 살아 만나지 못한다는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서글픔이 지나간 후에는 자신을 찾아낸 자에 대한 끝없는 분노와 원망이 몸을 휘감았다. 이 개자식.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똑똑히 봐둘테다. 지옥에서라도 니 새끼를 저주할거야.
핏발 선 눈으로 가로등에 희미하게 비친 남자의 얼굴을 노려본 순간 마법이라도 걸린 것 마냥 이와이즈미의 속 그를 향한 모든 악의는 씻겨져 내려갔다. 악의를 대신해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의문이었다. 낯익은 갈색 눈동자, 남자답게 다부지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이 묘하게 어우러진 언제나 자랑하던 수려한 얼굴이 빙글빙글 웃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이카와?"
왜, 니가 여기에. 이와이즈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땅바닥으로 풀썩 꺾인 목덜미에는 작은 주사가 꽂혀있었다. 무척이나 고된 일이라도 한 것 마냥 남자는 과장스럽게 손을 털었다. 어휴, 힘들어라.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고 허리를 툭툭 치며 온갖 난리부스럼을 피우는 남자를 보며 주변의 사내들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들의 인사를 눈을 찡긋하는 걸로 맞받아친 남자는 이와이즈미의 머리를 신발 코로 툭툭 쳐보였다. 그 순간 제 발밑에 쓰러진 인영을 향해 일제히 부하들이 총을 겨누었다. 어디 가서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처리하기 골치 아파진다. 목격자는 그 즉시 없앤 후 바다에 던져버리는 것이 그들만의 관례였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면.
철컥, 하고 총이 장전되는 소리가 예민하게 남자의 귀를 깨웠다.
"쉬잇."
남자의 작은 손짓 하나에 주위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검지를 가볍게 위로 올렸다 내리자 다들 장전한 총을 내려놓았다. 왜 지금 처리하지 않냐는 의문의 눈길들을 싸그리 무시한 채 남자는 가볍게 이와이즈미를 들쳐 업었다.
"이건 내가 처리하지."
궁금한 게 좀 있어서 말야.
*
실종됐다 들었었다. 6년 전 국가 대표로 뽑힌 오이카와는 함께 뽑힌 동료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고 그 후로 영영 자신들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환히 웃으며 티비로 잘생긴 내 얼굴 잘 보라고, 이와쨩. 하며 장난스럽게 말하던 게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유니폼을 받던 그날 어릴 적처럼 새벽바람과 함께 창문을 타고 들어와 4라고 적힌 유니폼을 자신의 어깨에 둘러줬었다.
'1번이 아니네.'
'나랑 함께한 그동안은 이와쨩이 4번이었으니까 이번엔 내가 4번 할게. 우리 둘이 함께니까 천하무적!'
'....헛소리.'
'앗! 이와쨩 지금 감동했지 그치? 오이카와씨는 이와쨩 얼굴만 봐도 다 알아요.'
재수 없다고 얼굴을 밀어내자 실실 웃으며 오이카와는 앞으로의 꿈에 대해 얘기했다. 언젠가는 1번을 달고 멋지게 팀을 지휘하는 주장이 될 거라고. 남들이 들으면 거창하다 허황됐다 말할지 몰라도 이와이즈미는 그것이 언젠가 꼭 이뤄질 미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경박하긴 해도 자신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남자였다. 이제부터 세계를 향해 날개를 펼칠 오이카와의 모습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네가 왜 여기에.
가볍게 뺨을 톡톡 치는 손길에 눈을 뜨자 희미하게 보이는 인영이 손을 흔들고 있다. 보여? 아직 잘 안보이나? 캄캄했던 시야에 갑자기 들어오는 환한 빛에 적응하려 몇 번 눈을 깜빡이자 조금씩 흐린 모습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빛을 등진 채 서 있는 남자가 자리에 앉아서야 역광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던 그의 모습이 그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꿈은 아니었구나. 기절하기 직전 봤던 오이카와는 변함없이 제 앞에 있었다. 현재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오이카와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사람이었다. 사라졌던 그 6년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왼쪽 얼굴, 눈썹부터 광대까지 쭈욱 그어진 흉터와 장난감처럼 가볍게 손으로 돌리고 있는 총이 그동안의 그의 삶을 미약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결코 평탄한 삶은 아니었겠지.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자신을 뚫어져라 보던 이와이즈미를 마주 보던 오이카와는 심드렁하게 돌리고 있던 총을 그의 미간에 겨누었다. 미간에 닿는 서늘한 감촉에 깜짝 놀라 피하려 몸을 움직이는데 몸이 제 의지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오히려 몸을 움직인 탓인지 균형이 잡히지 않은 듯 휘청거리다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고 나서야 이와이즈미는 제가 의자에 묶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닥에 얼굴을 긁혔는지 뺨 주변이 따끔거린다. 손과 발이 저린 것도 이제야 슬슬 느껴지기 시작했다. 실험용 개구리마냥 무기력하게 제 밑에 엎어져 있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대로 지켜보기만 하였다. 감정이 철저하게 배제된 채 그저 관찰하기만 하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가만히 숨만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저런 오이카와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20여년간 자신에게 숨기고 있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그 실종된 6년간 갖추게 된 모습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낯설었다. 색색 밭은 숨을 내뱉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는 그대로 총구를 목에 갖다 대었다. 흡, 하는 소리와 함께 목덜미가 크게 일렁였다.
"날 알아?"
어딘가 이상한 오이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는 시선을 조금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계속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는지 단번에 눈이 마주친다. 빨리 대답하라는 듯 목에 닿은 총구를 조금 더 꾹 누른다. 차가운 금속이 펄떡펄떡 뛰는 혈관을 금방이라도 터쳐 버릴 것 같이 묵직하게 압박한다. 조금이라도 숨을 크게 쉬었다간 총알이 뛰쳐나와 목덜미를 관통할 것 같았다.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총을 치운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자신을 보며 천천히 제 옆에 누운 오이카와는 어딘가 이상했다.
"널 죽여야 해."
"...살려줘."
"목격자는 전부 죽이는 게 우리의 룰이야. 근데 이상하지. 날 아는 놈이 목격자라니."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게. 그냥 얌전히 돌아갈게. 오이카와 제발."
"우리 자기소개부터 다시 할까?"
가뿐하게 몸을 일으킨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묶은 끈을 풀어주었다. 밧줄을 풀어준 상태에서도 여전히 바닥에 엎어져 있는 이와이즈미를 일으킨 후 친절하게 의자까지 세워준다. 어정쩡하게 선 채로 긴장과 공포심으로 덜덜 떨리는 몸을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혀주고는 오이카와는 다시 이와이즈미를 향해 총을 겨눴다. 혹시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너무 무서워 하지마. 다정한 목소리와 부드럽게 휘인 눈을 보면서도 이와이즈미는 아이러니하게 더욱 더 몸을 굳혔다. 다정함으로 위장한 압박감이 제 솜털 하나하나까지 지배하는 것 같았다. 장난스럽게 철컥거리는 소리에도 몸을 흠칫 떨어야 했다.
"안녕, 나는 브라이트라고 해. 나이는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초반으로 추측 중. 직업은 갱단에서 소소한 자리를 하나 맡고 있어. 취미는 사진 찍기. 그리고 요 몇 년을 제외한 기억이 전혀 없어. 자, 이제 네 차례야."
어딘가 이상하다 했더니 기억상실 이었나. 하룻밤 사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현실에 이와이즈미는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6년 전 실종된 친구는 지구 반대편에서 갱으로 활약 중이고 기억 상실증까지 걸렸댄다. 그리고 현재 제 목숨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뭐 이런 어이없는 일이 다 있을까. 3류 소설에서도 쓰지 않을 조잡한 설정에 기가 막혀 웃음조차 나오질 않는다.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너무나도 커다란 사건들 덕에 이와이즈미는 상황파악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벅차버렸다. 멍청하게 자신을 쳐다보며 가만히 있는 그를 보며 오이카와는 한 번 더 안녕? 하고 인사를 건냈다. 네 차례라니까? 턱을 툭툭 치는 총구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이와이즈미는 뻣뻣하게 굳은 혀를 겨우 움직여 인사를 건냈다.
"아,안녕. 내 이름은 이와이즈미 하지메. 나이는 스물여덟. 직업은 고등학교 배구부 코치."
그게 다야? 라고 묻는 듯 빙긋 웃는 오이카와의 눈썹이 한번 까딱였다. 그 의미를 알아챈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너의 잃어버린 과거를 알고 있어."
"응,응.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해. 축하해, 이와이즈미. 지금 이 순간 너의 생이 조금이나마 길어졌어."
과장스럽게 박수를 치며 축하의 말을 던지는 오이카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긴장을 하고 있던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몸 구석구석에서 피로감을 던지고 있었다. 누군가 흠씻 몸을 밟아놓은 것 같았다. 아, 쉬고 싶다. 멍하니 뿌옇게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지도 못한채 이와이즈미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지는 그의 몸을 오이카와는 팔을 뻗어 잡았다. 픽하고 꺾이는 고개가 이미 그가 정신을 잃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한 팔로 가만히 이와이즈미를 감싼 채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았다. 단단한 체구와 남자답게 생긴 얼굴, 뾰족하게 올라간 눈 꼬리 삐죽 튀어나온 입술. 어디 하나 기억에는 없는 것들이다.
"날 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길 바랄게, 이와이즈미."
그대로 팔을 거두며 오이카와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쿵하고 바닥에 이와이즈미의 몸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오이카와는 방을 나섰다. 이와이즈미 대신 사라질 누군가가 필요했다. 즐겁게 총을 빙글빙글 돌리다 카우보이 마냥 폼을 잡고 허공에 대고 쏘는 시늉을 하며 입으로 탕탕 소리를 내본다. 복도를 지나던 부하들이 상사의 그런 모습을 보고 피식거리며 지나간다. 워낙 장난스러운 남자라 오늘 또 신이 났구나. 하고 생각하며 장난스럽게 윽, 하고 맞아주는 시늉을 한다.
"브라이트, 어디가요?"
"목격자 죽이러?"
"아, 그 동양인 말이죠. 완벽하게 처리하고 와요."
킬킬 웃으며 목을 따는 시늉을 하는 부하들을 보며 오이카와는 근엄하게 손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제각기 방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들을 보며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발걸음을 옮겼다. 내 방에 있는 목격자 말고 다른 목격자 목 확실하게 따고 올게 얘들아. 아마 얼굴을 완전히 뭉개놔야겠지. 누군지도 모르게 말야. 동양인치고는 제법 덩치가 있던 그를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행선지를 골랐다.
우선 차이나타운부터 가볼까.
*
제 방안 깊숙이 이와이즈미를 꽁꽁 숨겨둔 채 오이카와는 그에게 많은 질문을 건냈다. 제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무얼 하고 자랐는지 등등. 이와이즈미가 하나하나 그에 대해 얘기해줄 때마다 오이카와는 생소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전혀 모른다는 듯 마치 제 3자의 삶에 대해 듣는 듯 한 오이카와의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그가 정말로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에 묻는 것은 극히 적었다. 단순히 날씨나, 날짜 아니면 저의 생사여부 정도였다. 저를 살려둬도 되냐는 물음에 오이카와는 네가 방에서 나오지만 않는다면. 이라는 말로 답했다. 방 밖의 부하들은 오이카와가 따로 처리한 시체를 보고 완전히 그 목격자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굴 전체에 구멍이 난 시체는 이와이즈미와 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체격을 한 동양인이었다고 한다. 어둠속이니까 온전히 널 본 놈은 없어. 그니까 안심해도 돼.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혹시나 자신이 아닌 것을 들켜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커 불안하게 눈을 굴리는 이와이즈미의 머리를 도닥이며 오이카와는 속삭였다.
"내가 널 뭐라 불렀었어? 이와이즈미는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이름?"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이와이즈미라 부르면 넌 3초정도 생각하다 내 눈을 보거든. 아, 날 불렀구나. 하는 식으로 말야."
보통 그렇지는 않잖아? 어깨를 으쓱이는 오이카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쓴 웃음을 지었다. 변함없이 눈치 하난 빠르다.
"이와쨩."
"이와쨩? 이와쨩, 이~와쨩. 이와아쨔아앙. 전혀 기억나질 않네. 어떻게 불러도 낯설어."
"굳이 그렇게 부를 필요는 없어."
"아냐, 안되지. 혹시 알아? 조금씩 예전의 내 삶대로 산다면 기억이 돌아올지 말야. 안 그래 '이와쨩'?"
오이카와가 부르는 이와쨩은 어설프고 서투르기 그지없었다. 그저 남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그렇게 부른다는 듯 감흥 없고 이질적인 부름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숙였다. 오이카와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마다 마음 한구석이 저며 온다. 같은 사람이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데 타인에 대해 기억하라는 것은 어딘가 이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이와이즈미는 더 이상 자신이 정말 기억나지 않냐고 묻는 상상조차 그만 두었다.
기억을 잃은 오이카와는 예민하고 날카로웠으며 그 어떠한 틈도 보이지 않았다. 한껏 느슨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두른 채 그 안에서 날카롭게 간 이를 빛내고 있다. 이와이즈미 앞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안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단 한 순간도 총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 그가 저를 헤칠지 모른다는 듯 총을 잡은 손에선 일순간도 힘이 빠져나지 않았다.
때때로 오이카와는 의자에 앉아있는 이와이즈미에게 얼굴을 바싹 가져가 숨을 쉬고는 했다. 제 영역에 들어온 생물을 탐색하는 맹수처럼 가만히 코를 가져다 목부터 뺨까지 천천히 타고 올라가며 그의 체취를 듬뿍 들이 마시는 오이카와의 나른한 숨결을 느끼며 이와이즈미는 박제된 인형마냥 미동도 없이 멈춘 채 조용히 숨만 쉴 뿐이었다. 이와쨩. 이와쨩. 그의 이름을 되뇌며 목가의 펄떡이는 혈관에 한참이나 얼굴을 박은 오이카와는 콧날을 가볍게 부비며 마음에 든다는 듯 어깨에 기나긴 숨을 토해내었다. 애완동물에게 표하는 친밀감인걸까. 뭐 어찌됐든 살아있단 것에 만족하자는 생각으로 이와이즈미는 어색하게 그의 등을 몇번 도닥여주었다. 그것은 오이카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기분 좋다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들으며 이와이즈미는 몇 번이고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이와쨩 엄마 같아."
"어?"
"기억도 안 나지만 말이야.
신기하네. 타인의 손에 이렇게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니.
만족스럽다는 듯 낮게 중얼거린 오이카와는 조금 더 이와이즈미의 품에 파고들더니 이내 곧 고요한 숨소리를 내쉬며 잠에 빠졌다. 숨소리가 일정해 지는 순간 이와이즈미는 아직까지도 총을 세게 쥐고 있는 그의 손에서 천천히 총을 꺼내어 침대 위에 두었다. 처음으로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 앞에서 총을 내려놓은 날이었다. 따뜻하고 커다란 게 온통 제 위를 감싼채 규칙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내쉬는 것을 듣자 저절로 눈이 감긴다. 이윽고 오이카와가 내쉬는 숨결에 맞추어 숨을 내쉬며 이와이즈미는 저도 모르게 오이카와를 껴안은 채로 잠이 들었다. 이와이즈미가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얕은 잠에서 깨어난 오이카와는 허전한 느낌에 재빨리 고개를 들고 귀를 세웠다. 묵직해야할 왼쪽손이 지나치게 가벼웠다.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던 와중 침대에 얌전히 놓인 총을 보고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툭 하고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떨어뜨렸다. 가벼운 손이 이상하다. 아무것도 잡지 않은 제 손을 몇 번 쥐었다 피던 오이카와는 그 상태에서 눈을 감은 채 목덜미 쪽으로 조금 더 머리를 움직였다. 이와이즈미의 목가에서는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쿵쿵 하고 일정한 심장 소리가 들렸다.
둘 만 있는 방에서는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자신과 이와이즈미의 냄새로 가득 찬 고요한 방은 갱단의 소굴 안에서 말도 안되게 평화로웠다. 분명 밖에서는 누군가는 고문을 당하고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을 텐데 이곳만큼은 비밀의 정원마냥 안락하고 평화롭기 그지 없다.
이상해.
혹여 소리라도 내면 이 평화가 깨질까 무섭다는 듯 입모양으로만 중얼거린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품안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의자 위에서 다 큰 장정 둘이 붙어 자는 거라 불편하기 그지없었지만 굳이 그를 깨워 침대로 가 다시 잠들고 싶진 않았다. 이 상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날 이후 오이카와는 방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총을 내려두게 되었다. 완전히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이 자는 자신을 헤치지 못할 거란 직감에서 나온 행동인지는 몰라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변화가 만족스러웠다. 나는 어렸을 때 어땠어? 잘 웃고, 말도 많고 겁도 많고. 지금이랑 똑같네. 그보다 조금 더 컸을 때는? 가식스럽고 경박한 게 추가 됐지. 자뻑도 좀 늘었고. 아, 그것도 지금이랑 똑같네. 별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무릎을 베고 과거의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밝고 다정하고 인기 많은. 아, 인기 많은 것은 지금도 똑같으니 이건 뺄까. 투박하긴 하지만 제법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이와이즈미의 행동에 오이카와는 고양이라도 된 것 마냥 가릉거렸다. 기억을 잃기 전이나 잃은 후나 잘만 애교부리고 저한테만은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작은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혹시 오이카와가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 자신과 함께 고국에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 말이다.
무슨 생각 하냐며 코를 꽉 꼬집는 손길에 놀라 악,하고 소리를 지르자 재밌다는 듯 오이카와는 입을 벌린 채, 크게 환히 웃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이와이즈미는 문득 생각했다. 누가 지은 지 모르겠지만 브라이트라는 가명은 오이카와에게 꽤 잘 어울린다고.
그런 일이 며칠이나 있은 후였다. 나름 평화로운 생활이 쭉 이어질 것 같았던 것이 급격하게 판도가 바뀌어버린 것은. 평소와 같이 가만히 앉아 오이카와에 대한 얘기를 해줄려는 찰나 그의 옷 한쪽이 완전히 피투성이 인 것을 보고 이와이즈미는 숨을 급히 삼켰다. 네 피야? 라는 물음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쥐새끼 하나가 돌아다니길래 잡았을 뿐이야. 내가 고양이. 한 쪽 손을 고양이처럼 말아 쥔 채 야옹~ 하고 가증스럽게 흉내를 내는 오이카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표정을 굳혔다. 요 몇 주간이 너무나 평온해서 잊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언제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자신도 언제든지 오이카와의 손에 죽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도 새삼스럽게 다가와서 제 자신에게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다. 옷 한쪽을 저만큼이나 적신 거라면 얼만큼 맞은 걸까. 아니, 맞은 게 아니라 칼에 찔렸다는 게 더 일리가 있다. 오이카와가 잡았다는 그 쥐는 아마도 과다출혈이나 쇼크사로 죽었겠지. 그 쥐가 자신일수도 있다는 생각 보다는 자신이 알던 오이카와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였다는게 더 무섭게 다가왔다.
이와이즈미가 알던 오이카와는 조그만 벌레 하나조차 무서워하던 아이였다. 그것은 커서도 변함이 없어서 부실 안에 나방 따위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곤 했다. 그랬는데, 이제는 사람을 죽인다. 그것도 아무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고 방에 들어온 것은 이번에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이 이 방에 들어온 이후로도 오이카와는 몇 번이고 사람을 죽이고 아무렇지 않게 들어왔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손을 잡고 시시덕거리며 별 웃기지도 않은 과거 얘기를 하며 그와 마주보고 웃었을 테지. 누군지도 모를 오이카와의 손에 죽어간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얼마나 많은 피가 묻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제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하던 제가 너무 한심스럽고 역겨웠다.
좁은 방안을 가득 채우는 피 비린내에 이와이즈미는 웩웩 거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감흥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이내 곧 붉게 물든 셔츠를 벗은 채 대충 수건으로 몸에 묻은 피들을 닦고 옷장 안에 있던 다른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몇 년간 이런 식으로 생활을 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깔끔해진 모습으로 있던 오이카와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피가 잔뜩 배인 셔츠를 주워들어 세게 쥐었다. 걸레를 쥐어짜듯 비트는 악력에 손을 타고 검붉은 피가 바닥으로 뚝뚝 흐른다. 손에 피를 잔뜩 묻히고 나서야 오이카와는 셔츠를 방구석으로 던져버리고 이와이즈미 쪽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피가 묻지 않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깨끗한 얼굴이 거슬린다. 얼굴을 들어 올린 손으로 턱을 단단히 잡고 오이카와는 피가 잔뜩 배인 손으로 한쪽 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 위로 제 손 자욱이 붉게 남는다. 코 안으로 진득한 피비린내가 흘러 들어오는 것에 진저리를 치며 이와이즈미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자 턱뼈를 으스러뜨리기라도 할 듯이 세게 잡아 고정시켰다. 핏자국들이 오이카와의 손을 따라 이와이즈미의 얼굴 이리저리 그림을 그려 낸다.
"내가 역겨워?"
"이,거 놔."
"니가 알던 오이카와는 어떨지 몰라도 브라이트는 이런 사람이야."
"이거 놓으라고, 미친놈아!"
"입 조심해 이와쨩."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어요. 내가 실수로 총이라도 잘못 머리에 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이와이즈미의 뺨을 가볍게 톡톡 치며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건 재미가 없다. 입술을 깨문 채 바들바들 떠는 이와이즈미를 차갑게 내려다보던 오이카와는 방을 나갔다. 복도에서는 마약 냄새와 담배 냄새 등으로 섞인 지독한 냄새가 났다. 중간 중간 핏자국이 담뱃재와 함께 벽에 까맣게 나있다. 여기는 다 이렇게 산다, 저런 반응이 이상한 거다. 그런데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그렇게 볼 때면 자꾸 자신이 이상한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워진다.
"역시 눈을 파버릴걸 그랬나."
주머니 속 작은 단도를 만지작거리며 오이카와는 자조했다. 제깟게 뭐라고 파버릴 수가 없다.
한편 오이카와가 떠난 후 적막만이 가득한 텅 빈 방에서 이와이즈미는 문득 자신들이 어렸을 적을 떠올렸다. 환하게 웃으며 배구공을 들고 있던 어린 그와 자신이 떠오른다. 오이카와는 그 어떤 재밌는 것을 발견하면 무조건 이와이즈미의 손을 잡았었다. 다정함을 듬뿍 담은 눈으로 이와쨩, 하고 불렀었지. 오이카와의 싸늘한 눈초리가 다시금 떠오르며 쿡 하고 가슴 한 가운데를 날카롭게 찌른다. 얼굴에서 점점 말라가는 피를 지울 생각조차 못한 채 그대로 침대에 엎어진 채 눈을 감았다. 왜 저렇게 돼버렸을까 하는 물음은 금세 공기 중에 거품마냥 흩어져 버린다.
당신의 상냥함의 흔적조차 썩어버려서 당신이 두고 간 적막 앞에는 분노하거나 울지도 못하는 생이 있다.
불 꺼진 방안으로 오이카와는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자는지 침대 위 돌아누운 이와이즈미에게서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부러 불을 키지 않고 조용히 들어온 그는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익숙하게 방안에서 의자를 가져와 침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얼굴에 여전히 핏자국이 묻은 채였다. 준비한 물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아 주면서도 몇 번이고 이와이즈미가 잠이 깨지 않았는지 확인을 했다. 고른 숨을 들이켰다 내쉬는 이와이즈미의 숨결을 들으며 가만 쳐다보던 오이카와는 이불이 말아 올라간 것을 보고 발끝까지 세심하게 덮어주었다. 물론 틈틈이 이와이즈미가 깨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완전히 그가 잔다고 판단한 후에야 오이카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왠지는 모른다. 그저 그냥 혼자만 간직하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그에게는 얘기하고 싶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스스로도 무척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근데도 전하고 싶어서 오이카와는 바싹 마른 입술을 몇 번이고 혀로 훔치며 입을 열었다.
"기억을 잃은 게 무서워."
겨우 떨어진 입에서는 달랑 한 마디만 튀어나왔을 뿐이다. 달싹거리는 입술을 다시 한 번 더 혀로 축인 오이카와는 마음을 다잡은 듯 조금씩 입을 열었다. 어렵사리 열린 입은 처음이 힘들었지, 그 후로부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줄줄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눈을 떠보니 낯선 곳이었어, 그들은 내가 원래 그 쪽 사람인데 큰 싸움이 있어서 기억을 잃었다고 하더군. 총을 잡는 법조차 몰라 허둥대던 나에게 정말 기억 안 나냐고 되물으면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었어. 2년 동안은 총을 쥐고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웠지. 칼, 총, 그 외의 살인 기술 등등 죽어라 배웠어. 살아남으려고 말이야. 모르는 사람들이 길을 걷는데 갑자기 총구를 들이대. 아무런 이유 없이 총을 갈기고 나는 심장이 터져라 달려서 겨우 살아남고. 그때는 정말 살고 싶었어. 그래서 죽어라 배우고 날 위협하는 것들은 전부 목을 따다 바다에 던져버렸지. 물고기 밥이 된 것들이 어떻게 날 찾아오겠어? 하는 마음으로 말야.
그런데, 그렇게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버렸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고 참을 수없이 내가 더러워지고 우울함이 덮쳐오고. 그런 날이면 방 한구석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계속 누워있었어. 잠이라도 자면 괜찮아 질 것 같은데 마음이 계속 먹물처럼 흐려져 가. 죽고 싶은데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몰라 종일 골목을 돌아다녔어. 누군가 날 죽여 주겠지 죽여 주겠지 흥얼거리면서 말이야. 그런데 아무도 없더라고. 분한 마음에 일부러 총을 이곳저곳에 갈겨댔어. 경찰이라도 와주겠지, 누군가 신고라도 하겠지. 그래서 이 빌어먹을 생을 끊어주겠지. 하고.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날 발견한 건 제이크의 부하들이었어. 쓸데없는 짓을 한 나를 보면서 그대로 땅에 패대기치더군. 그 후론 몰라.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아. 길거리에서 두들겨 맞은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면 지하실에서 얼굴을 얻어맞고 있었고, 그 담은 멀쩡하게 치료된 채 방안에 누워있었어.
그리고 널 만난거야 이와쨩. 네가,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났어. 이상해. 이건 아니야. 거짓말까지 하면서 널 오래 둘 생각은 아니었는데, 근데. 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무의식적으로 내 잃어버린 기억이 막는 걸까. 아니면...내가, 내가 널.
번지르한 말솜씨는 어디가고 서툴게 띄엄띄엄 두서없이 말하는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결국 낮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누웠다. 그가 들어올 때부터 이미 잠은 깨어있었다. 다만 오이카와가 어떤 행동을 할 지 봐보자 하는 마음으로 자는 척 했을 뿐이다. 종극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절실하게 자신의 손을 잡아다 기도하듯 꼭 잡는 모습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이리와."
침대 한 편을 내주며 덮고 있던 이불을 슬쩍 들어 올려 그가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침대를 보면서도 오이카와는 눈치만 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엄마 잃은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여전히 잡고 있던 손을 조금 제 쪽으로 당겼다. 그 반동으로 조금 더 오이카와가 자신에게 가까워졌다.
"자자. 자면 다 괜찮아질 거야."
"정말?"
"정말."
"거짓말."
거짓이라 치부하면서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품에 파고들었다. 이제야 조금 숨을 쉬겠다는 듯 온 몸의 긴장을 푼 채 축 늘어진 그가 가여워 몇 번이고 등을 쓸어주었다. 괜찮아 하고 위로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다독여주던 와중 어린아이처럼 색색 숨을 내쉬던 오이카와가 팔을 뻗어 이번에는 그가 이와이즈미를 품에 가득 안았다. 깜짝 놀란 듯 흐트러지는 숨이 쇄골에 닿아 간지러웠다. 키득거리며 고슴도치 같은 머리에 입을 맞추자 이번에는 바싹 몸을 굳힌다. 역시 이런 건 싫은가, 라고 생각하면서도 손과 입은 멈추질 않는다. 막연히 그가 멈춰주기를 바라며 오이카와는 몇 번이고 이와이즈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친애의 표시라고 하기에는 진했고 애정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옅었다.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도 의문을 가진 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게 턱을 잡고 뻣뻣하게 굳은 몸을 조금 더 바싹 끌어안으며 킬킬 웃음을 흘리자 그제야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성을 낸다. 안 되지 안 돼. 그렇게 미간을 찌푸리면 주름 생긴다구요? 콧등으로 부드럽게 미간을 부비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오이카와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또 한 번 한숨을 쉬었다.
"너 때문에 한숨이 느는 거 같아."
"그래?"
"망할카와."
"그거 내 과거의 별명이잖아. 지금은 조금 더 멋진 걸로 하나 지어주지 그래?"
"젠장카와."
"이와쨩 이런 쪽으로는 센스가 없구나."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느슨해지는 분위기에 서서히 졸음이 밀려왔다. 졸음이 몰려와 눈을 끔뻑거리면서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부드럽게 미간 사이를 펴주고 뺨을 타고 내려와 턱을 살짝 들어 올린 채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조금씩 농밀해지는 손길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는다. 당연히 이래야했다는 것처럼 그 어떠한 의문도 들지 않았다. 턱을 쓰다듬던 엄지손가락이 입술로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이와이즈미는 눈을 감았다. 조심스럽게 입술 위를 살살 쓰다듬던 엄지손가락이 아래 입술을 지그시 누르자 자연스럽게 입술이 벌어진다. 턱을 조금 더 세게 누르고 더 크게 벌어진 입술 위로 말캉한 것이 눌러왔다. 음미하듯 몇 번 오물거리다가 부드럽게 살덩이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다. 제 입안을 꽉 채우는 오이카와의 혀를 조금 더 입을 크게 벌리고 받아들이자 잘했다는 듯 입술이 호선을 그리는 게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제 아래에 이와이즈미를 눕히고 오이카와는 적극적으로 혀를 섞었다. 질척하면서도 축축한 소리가 좁디 좁은 방안에서 외설적으로 흘러 넘쳤다. 서로가 남자라는 것도 오래된 친구였다는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오늘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죄수들 마냥 절박하게 서로의 입안을 탐할 뿐이었다. 그렇게 둘은 첫 입맞춤을 했다.
한 번 시작한 스킨쉽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킨쉽에 이게 잘못됐다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긴박감과 온전한 내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에 대한심리에서 나온 건지, 아니면 믿을 수 있는 게 둘 뿐이라 사랑에 빠진 건지. 상대방이 없는 곳에서 하루 종일 이게 사랑이 맞나 고민하다가도 얼굴만 보면 너무 좋아서 그가 애틋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상대방을 빈틈없이 세게 껴안은 채 좁디 좁은 방안에서 더운 숨결을 나누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무슨 스톡홀름 신드롬도 아니고..."
"나한테 푹 빠졌단 소리를 너무 간접적으로 하는 거 아냐? 솔직하게 네가 좋다고 말해도 괜찮아요 이와쨩."
어이없는 말에 빠르게 구겨지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이불까지 팡팡 내리치며 웃어대는 오이카와의 모습을 보자 혈압만 더욱 더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아, 이와쨩 진짜 못생겼어. 어쩜 이렇게 못생겼지? 웃음을 안으로 갈무리 하며 겨우 호흡을 진정한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 얼굴 곳곳에 뽀뽀세례를 날렸다. 이 못난이가 제 거라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살아갈 이유가 겨우 생겼다.
신은 사람에게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준다고 한다. 허나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겐 견딜수 없는 고통도 주나보다. 라고 이와이즈미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제이크가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온 날이었다. 제이크는 제법 큰 갱단을 다스리는 보스였다. 각 구역별로 장을 하나씩 두고 그 구역을 관리하게 두었다. 술을 하던, 마약을 하던 섹스를 질펀하게 하던 제 명령만 거스르지 않는다면 뭘 하던 내벼려 두는 제법 융통성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가장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제 지시를 거역하는 것 또는 배신이었는데, 그런 자들은 본보기로 혀, 두 번째 손가락, 발목 등이 잘린 채 산채로 바다에 던져졌다. 상처에 짠 바닷물이 닿아 고통스러워하며 겨우겨우 헤엄쳐 오다보면 비릿한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떼에 의해 갈가리 찢겨져 죽어가는 것을 보는게 제이크의 취미였다.
분명 그가 오면 자신은 죽을 테지. 룰을 무시하고 자신을 살려준 오이카와 또한 무사하지는 못할 거다. 오이카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어젯밤 그가 없을 때 방문 앞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 덕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다행이지 이렇게나마 먼저 알게 되어서. 오이카와는 제이크가 일주일 후 오는 걸로 알고 있었다. 면밀하게 일주일 안에 이와이즈미를 도주할 계획을 세우는 뒷모습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침대 옆을 툭툭 쳤다. 늦었다, 자자 망할카와.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벌써 자?"
"그냥 너랑 낮잠 자고 싶어서."
"잠깐만, 이와쨩. 이것만 하고,"
오이카와의 말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리는 방문 탓에 제대로 들리질 않았다. 방문을 세게 걷어찬 푸른 눈의 남자가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모자를 벗고 가볍게 둘에게 인사를 했다. 영국 신사를 떠올리게 하는 행동과 달리 문 앞을 꽉 채우는 덩치가 위협적이었다. 나빼고 무슨 작당을 하는 거지? 부드러운 용모와 달리 묵직한 목소리는 사람의 등골을 타고 올라와 손톱으로 척추 끝부터 긁어대는 듯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아마 그의 손에 죽어간 사람들의 원한이 달라붙어서 이겠지. 아직까지 방문앞에 서있는 브라이트를 보며 오이카와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오랜만이네 제이크.
"안녕 브라이트."
"제이크. 언제 온 거지? 분명 당신이 오는 건 일주일 뒤였을 텐데?"
"완벽하고도 철저한 배신의 소리가 자꾸만 귀를 간질여서 말이지."
저거, 죽이기로 한 거 아니었나?
턱 끝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빈정거리듯 묻는 말에 이와이즈미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는 존재만으로도 타인을 주눅 들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의 앞에서 이런 저런 변명을 하는 오이카와는 제가 봐도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이건 그때의 그 목격자가 아니라, 그냥 내가 아는 사람이야. 이제 곧 나갈 거였다고.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을 하며 제이크의 앞을 막아선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창문 쪽으로 밀었다. 제이크는 그 말을 믿기라도 하는 것 마냥 그런가? 하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 다급한 그의 표정에서 도망가라는 메세지가 보인다. 슬쩍 창문 밖을 본 이와이즈미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미 제이크의 사살대들이 이곳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창을 넘는 순간 총알들이 몸 곳곳에 박히는 게 눈 앞에 절로 그려졌다. 오이카와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 채 어떻게든 이와이즈미라도 도망치게 하려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제이크의 앞을 막고 있었다.
어쩐지 저딴 거지같은 변명에 제이크가 속아 넘어가는 게 이상하다 싶더니. 제대로 된 신파극 하나 제 손으로 찍고 싶었나 보네. 개 같은 새끼. 창밖에서 총구가 햇빛에 반사돼 번쩍 거렸다. 딱딱 마주치는 이를 겨우 앙다문 채 제이크를 보자 즐겁다는 듯 살짝 눈웃음을 짓는다. 빌어먹을 양키새끼. 조금 시선을 내리면 태연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어깨가 덜덜 떨리는 오이카와 있다. 제발 창문으로 빨리 도망쳐 제발.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들린다. 함께 한 날이 몇인데 내가 네 마음 하나 못 읽을까.
유난히도 밝은 햇살 아래 총구 여럿이 번쩍인다. 총에 맞는 건 처음이라 얼마나 아플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죽을 걸 알면서도 뛰어내리는 것은 많은 것을 필요로 했고 동시에 많은 것을 버리게 만들었다. 그 중 가장 큰 건 제 목숨이었다. 그래도, 네가 원한다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창문을 열고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자신을 향해 조준하는 총 머리가 보인다. 아마도 제이크는 오이카와까지 죽일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가 들어오고 사업은 크게 성장했고 그 능력을 높이 사 제이크는 오이카와를 편애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배신도 고작 해봐야 다리에 총알 하나 박아 넣고 끝나겠지. 다행이야, 넌 살아서. 이와이즈미는 조금 더 마음을 다 잡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허공에 붕 띄웠다. 탕, 하는 소리와 동시에 팔 한쪽이 크게 휘날린다. 불에 지진 듯 한 감촉에 고개를 멍하니 그쪽으로 돌리는 순간 총알 여러 개가 몸을 뚫고 지나간다. 공중에서 몇 번 튕겨진 몸은 힘없이 나무에 떨어졌다.
커다란 총성에 놀랐는지 오이카와가 다급하게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 보였다. 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은데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총이 관자놀이를 스친 탓인지 피가 자꾸만 시야를 가린다. 이와이즈미를 따라 뛰어내리려는 오이카와를 말리는 제이크가 보인다. 배신자임을 알면서도 그 누구 하나 오이카와를 향해 총을 겨누지 않는다. 죽기 직전에서야 고백하자면 너와 함께 살고 싶었다. 그게 내 꿈이었다. 그래도 만약 둘 중 하나 죽어야 한다면, 그게 내가 될게.
변명해 오이카와. 저 동양인이 네 눈을 가렸다고 잠깐 현혹된 거뿐이라고. 그렇게 널 아끼는 제이크가 널 죽일 리 없잖아.
"빌어먹을!"
"개 같은 동양인 새끼!"
이와이즈미가 총에 맞았다. 총성이 몇 번이나 귀를 울렸다. 이와이즈미가 떨어진 나무에서는 본래 푸른 나뭇잎이 벌써 가을이라도 온 것 마냥 빨갛게 물을 들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제정신일리가 없잖아, 이와쨩. 제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제이크의 얼굴에 소매 한쪽에 숨겨두었던 칼을 박아 넣고 오이카와는 다급하게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짐승마냥 으르렁 거리는 신음 소리가 등 뒤로 들린다. 얼굴 한쪽이 시뻘겋게 피 칠갑을 한 제이크가 귀신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오이카와를 한 번 가리킨 후 엄지를 아래로 내렸다. 이와이즈미의 쪽으로 뛰어내리는 그를 향해 모두가 총을 겨누었다. 오이카와가 창문에서 몸을 던지는 순간 건물 안에서 여러 개의 총알이 미사일처럼 튀어나와 오이카와의 몸을 뚫었다. 열 몇 개의 총알들이 몸 곳곳에 박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다는 듯 오이카와는 정확히 이와이즈미의 쪽으로 착지를 하고 그를 껴안았다. 맥박이 희미했다.
"젠장, 젠장, 젠장! 눈 좀 떠봐! 이와쨩!"
"...으...시..끄,러워.. 망할 카와..."
"이와쨩, 이와쨩."
어미 잃은 새끼 모양새로 제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르는 오이카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평소처럼 등어리를 쓸어주었다. 괜찮아. 라는 그만의 표현에 오이카와는 겨우겨우 참던 눈물을 터뜨렸다. 이제야 만났는데,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은데, 어디서부터 전해야 할지 몰라 조가비처럼 입을 다문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 줄 몰랐다. 너 때문에 살았다고, 끝없이 미뤄둔 말이 있었다고. 너와 함께한 수많은 시간 동안 그거 하나 전하지 못한 바보 같은 제 모습에 분노로 눈앞이 돌아버리는 것 같다.
"나, 사실, 나., 그러니까 이와쨩, 나."
"알아....후...아, 말하기 진짜 힘드네. 이거... 영화로 볼 때랑 어엄청 다르잖아. 더럽게 아프네..."
"말, 말하지 마. 응? 피, 이와쨩 피나와. 어떡하지."
이정도 상처라면 당연히 죽는다. 분명 그 손에 죽어간 사람들도 저만큼 피를 흘렸을 텐데 오이카와는 그런 것들은 다 잊어버렸다는 듯 그가 죽을까 겁이 난다는 듯이 피가 울컥울컥 나오는 상처를 손으로 눌렀다. 그 바보 같고도 순진한 모습에 웃음만 나온다. 어차피 죽을 텐데 지금만이라도 솔직해지자 우리.
"오이카와 너 기억 돌아온 거 알아."
단호하게 말하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눈을 크게 떴다. 단 한 번도 그에게 기억이 돌아왔다는 티를 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눈치 챈 걸까. 다급하게 기억을 더듬고 올라가 보았지만 그가 눈치 챌 만한 행동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냐 묻자 너랑 나랑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걸 모르겠냐. 하고 핀잔이 돌아온다. 네가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거 같아서 말하지 않았어. 서로 다 알면서도 시작한 시소놀음이었다. 오이카와는 기억이 돌아왔지만 그동안 제가 한 일에 대한 죄책감과 이와이즈미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 사실을 숨겼고, 이와이즈미는 다 알면서도 혹시나 오이카와가 죄책감에 눌려 또 한번 훌쩍 제 곁을 떠날까봐 모른 척 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서로가 떠날까 두려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기에 바빴다.
이제야 깨달은 사실에 오이카와는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내어 울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투박하고 남자다웠지만 상냥하고 배려심 많은 너라서 참 좋았다. 기억이 돌아와도 섣불리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혹시 네가 나 때문에 발목 잡힐까봐, 그래서 돌아가지 못할까봐 말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솔직히 말을 할 것을 그랬다. 행복했던 그때를 추억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전할 것을 그랬다.
오이카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와이즈미의 뺨을 감쌌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피부가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다. 그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고 닦아도 끝도 없이 흘러내린다. 비가 왔다. 투둑 투둑 조금씩 내리는 비에 혹시나 그의 몸이 젖을까봐 더 차가워져버릴까 그래서 지금 생을 겨우겨우 잡은 손이 그 비에 미끄러져 버릴까봐 오이카와는 온 몸으로 그를 품었다. 그 비가 자신의 눈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 반도 채 못 뜬 눈으로 이와이즈미가 웃으며 자신의 뺨을 닦아줄 때였다. 울보카와. 하여튼 어릴 때랑 변한 게 없어요.
차가운 몸과는 달리 이와이즈미의 몸 곳곳에서 흐르는 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뜨거웠다. 피가 새어나오는 구멍을 막아도 막아도 손에 넘친다. 흐려지는 눈앞을 억지로 부릅뜨고 이와이즈미를 살리려 발버둥을 쳤다. 허나 그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와이즈미의 숨결은 점점 옅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자신 또한 이제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아, 나는 당신과 함께 하는 미래를 얼마나 바랐던가.
"넌 나의 새로운 꿈이었어."
"나 또한 그래."
너와 함께 돌아가고 싶었어.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둘의 마음이 생과 함께 저물어간다. 직접 전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겨우 눈가를 접어 서로에게 웃어보였다. 맞닿은 심장이 서서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게 느껴져 간다. 첫 숨결은 아니지만 마지막 숨결을 당신과 공유할 수 있다는 현실에 웃어본다. 잘 가, 이별 아닌 이별 속에서 널 보낸다.
*
힘이 다 빠져나간 몸이 나무에서 서서히 미끄러져 떨어졌다. 툭, 툭 떨어지는 두 동양인의 시체에 남자들은 재수 없다는 듯 침을 카악 퉤 뱉고는 차에 실었다. 바다까지 가는 동안 피가 차 시트에 그리 많이 묻지 않도록 대충 비닐을 깔고 턱턱 실었다. 드라이브하기 좋은 화창한 날씨에 남자에게선 콧노래가 절로 흥얼흥얼 나왔다.
-
보쓰에게.
ㅎㅎㅎ..........보쓰! 일단 나를 매우 치고 시작하는 건 어때?!
생일 선물인데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해ㅠㅠㅠㅠㅠㅠㅠ 쓰다보니 마음에 안드는 부분들이 있어서 막 수정하는데, 그러다보니 더 늦어져 버렸다.....ㅠㅠㅠㅠ 미안해요 진짜 정말로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나도 이렇게까지 늦어질줄은 몰라서ㅠㅠㅠㅠ 으아으어ㅜㅠㅠㅜㅜ더군나 너무 쓸데없이 길어진것 같아서 당황스럽다...ㅎ 공백 뺴고도 만칠천자....ㅎㅎㅎ공백 포함하면 2만 3천자...ㅎㅎㅎㅎ보쓰ㅠㅠㅠㅠㅠ 읽느라 고생했어ㅠㅠㅠㅠ 부둥부둥 토닥토닥ㅠㅠㅠㅠㅠ재밌게 잘 봤으면 좋겠다ㅠㅠㅠ
사실 썰로는 별로 안나와서 앗 뭐야 이거,,, 만자는 넘기고 주고 싶은데ㅠ 하고 걱정했는데, 지금은 너무 길어져서 걱정이다ㅋㅋㅋㅋ 어떡하지?! 썰은 이거야.
[이와이즈미가 우연히 살인사건 목격. 그리고 그걸 들키고 도망다니던 와중에 잡힘. 눈을 뜨니 몸은 묶여있고 앞에선 오이카와가 심드렁하게 총을 겨누고 있음. 눈썹부터 광대아래까지 커다랑 흉터. 실종됐다 들었던 놈이 왜 여기있는지 모르겠음. 기억상실증ㅇㅇ 납치되서 기억을 잃고 갱으로 활동중. 원래라면 죽여야 마땅할 이와이즈미지만 오이카와는 자신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살려둠. 다른이를 죽이고 이와쨩을 제 방에 숨긴 오이카와. 오이카와? 이 한마디에 살려두길 시작. 오이카와 가명 : 브라이트. 이와쨩의 체취를 맡기도 하고 조용하 관찰하기도 함. 제가 아는 오이카와랑 달라서 어색해하는 이와이즈미.
내가 널 뭐라 불렀어? ..이와쨩. 이와쨩? 흠 이와쨩. 이와쨩. 전혀 기억나질 않네.
조용히 코를 가져다 목부터 뺨까지 천천히 숨을내쉬며 콧날을 부비었다.
점점 친해지고 오이카와의 기억은 돌아오질 않지만 오이카와는 이와쨩을 맘에 들어하기 시작함. 죽여야하는데 죽이질 못하고 어찌할까 고민만 가득. 마음은 점점 깊어져가는데 갈피는 잡지 못함. 보스가 돌아오기 전까진 죽여야함. 보스에게 걸렸다간 둘다 죽을 위기. 결국 걸리고 이와이즈미를 창밖으로 도망치게 함. 그리고 밑에서는 이미 사살대가 대기중 3층 창밖으로 떨어지는 이와이즈미를 향해 총을 난사하고 이와이즈미는 밑에 사살대가 있는것을 알면서도 불안해하는 오이카와를 위해 뛰어내림. 연속으로 울리는 총성에 오이카와가 밑을 내려다보면 나무에 걸쳐진채 숨만 겨우 쉬는 이와쨩이 있음. 그 순간 이와쨩!!! 하고 저도 모르게 제가 기억을 되찾았다는것을 숨기는 것도 잊고 모든 감정을 와르르 쏟아냄. 그 모습을 보며 피투성이인 얼굴로 쿠소카와.. 하고 겨우 웃어주는 이와이즈미. 오이카와가 기억을 되찾은 것은 이미 알고 있었음. 다만 오이카와가 숨기길 원했기에 말하지 않은것. 알면서도 속이는 줄다리기.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향해 떨어질때 창에서부터 총이 난사되고 총알이 온 몸에 박힌채로 이와이즈미를 향해 떨어지고 겨우겨우 손을 움직여 얼굴이며 가슴이며 만져댐. 숨결이 가늘어지고 심장박동이 느려지는게 느껴짐. 그리고 마지막 숨결을 공유하는 둘. ]
근데 저 살인사건 목격, 잡힘! 이 부분이 그렇게까지 길어질 줄 몰랐고...쓰다보니 다른 부분은 왜 겉잡을 수없이 흘러가는 지도 모르겠고ㅎ 미안해...내가 설명충인건 알고 있었지만 쓰면서 또 한번 깨달았다고 해야하나...ㅎㅎㅎㅎㅎ 심지어 브금빨인 연성인데, 각 부분마다 어울리는 노래가 달라서 정말.....ㅂㄷㅂㄷ..그나마 어울리는 것으로 넣었는데 부디 마지막까지 보쓰를 현혹시켜주면 좋겠다...☆★
보쓰 늦었지만 생일 정말 정말 축하하고ㅠㅠㅠㅠ 사랑해요 존잘님 엉엉ㅠㅠㅠㅠ 수능끝나고 나 11월 중순이나 말쯤에 서울 올라가는데 그때 볼수 있음 보쟈ㅠㅠㅠㅠㅠ 조금만 더 고생하고 힘내구ㅠㅠㅠㅠ 부둥부둥 토닥토닥!
p.s 이거 폰으로 보니까 왜이렇게 글씨가 작게 나오지ㅠㅠㅠㅠㅠ 지금 보쓰한테 쓰는 건 11포인트고, 연성은 10포인트인데 왜 폰은 왜 이렇게 작게 나오는건데ㅠㅠㅠㅠㅠ엉엉ㅠㅠㅠㅠㅠㅠ 억울하다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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