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타모니] 너랑 나만 모르는
후타모니
너랑 나만 모르는
by. MARU
-
대학을 졸업하고 딱히 하고픈 것을 찾지 못해 자취방에서 하루 종일 딩굴 거리는 것도 지쳐 모니와는 이런저런 알바를 찾아다녔다. 카페, 편의점, 막노동 등등 이런저런 것을 하다보면 제 길이 그 중 하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허나 그 수많은 일 중 자신이 하고픈 일은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통장에는 딱 한 달만큼의 월세가 들어있었다.
이러단 굶어 죽겠구나 하는 마음에 이런저런 일을 알아보던 모니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고등학교 동창 카마사키 였다. 자신과 달리 대학을 가지 않고 카마사키는 졸업 후 삼촌 회사로 들어가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운 게 하나도 쓸모가 없다니까? 껄껄 웃으며 말하는 친구에게는 어렴풋한 여유와 어른의 향기까지 나는 것 같았다.
[요즘 맡은 놈 하나가 갑자기 잘나가기 시작해서 말이야. 일손이 부족해져 알바를 찾던 중인데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지!]
"카맛치_ 칭찬이 너무 과한 거 아냐? 일은 어떤 거야? 뭘 하면 돼?"
[아~ 별거 아냐. 그냥 따라다니면서 음료수 갖다 주고 비위나 좀 맞춰주면 돼. 간단하지? 어차피 나도 같이 있을 거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카마사키의 말에 모니와는 자신만만하게 그 정도면 간단하지 뭐! 하는 마음으로 방송국을 찾아왔다. 이래 뵈도 각종 알바를 통해 산전수전 다 겪어본 몸이다. 비위 맞추는 정도야 자존심 조금 죽이면 되는 거다. 어차피 연예인들은 별세계 사람들이라 지구인들과는 다른 예의를 가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카마사키가 알려준 곳을 찾아다니며 모니와는 촬영장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맡을 사람이 누군지 알면 바로 그곳으로 갈 텐데 직접 와서 보고 놀라보라는 카마사키의 의견에 의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카마사키를 찾아 헤맬 뿐이었다.
많은 인파들에 조금 지쳐갈 때쯤 카마사키가 알려준 방을 발견했다. 찾았다! 기쁜 마음에 문을 벌컥 열고 카맛치! 하고 외치는 순간 모니와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거울 앞 이제 막 메이크업이 끝났는지 평소보다 더 화려하고 눈부신 자태의 그와 눈이 정통으로 딱 마주쳤다. 바로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정말 짧은 시간동안 본 것뿐이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떻게 모를 수 있는가. 7년 짝사랑 대상인데.
'엄청 쉽다니까? 하하하하'
귓가에 카마사키의 호탕한 목소리가 도돌이표라도 붙은 것 마냥 반복재생 된다. 카맛치 전혀 안 쉽잖아! 차라리 배구하면 안 돼? 우리 배구하자! 응? 시라토리자와든 아오바죠사이든 내가 상대할 테니까! 배구하자 배구!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현실 도피를 하던 모니와는 조금씩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속이 울렁거리고 식은땀이 난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배도 살살 아파오는 것 같았다. 이대로 조용하게 도망칠 예정이었던 모니와는 뒤를 턱 하니 막는 카마사키의 손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야, 암만 싫어도 얼굴은 봐라. 고개 팍 숙이고 뭐냐 이게."
싫어하는 거 아니거든? 오히려 그 반대라서 곤란하거든? 카맛치이_ 예상치 못한 현실에 울먹울먹한 눈을 보고 후타쿠치가 싫어서 도망가는 걸로 착각했는지 카마사키는 억지로 모니와를 돌려세우며 달래기 시작했다. 야, 저놈이 배구할 때도 너한테는 순응적이었던 거 알잖냐. 왜 겁을 먹고 그래. 당황했는지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는 카마사키의 모습에 미안함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절대 고개를 들 순 없었다.
고2 말부터 시작된 짝사랑은 결국 맘이 넘쳐흘렀는지 고3 겨울방학 때부터 꽃으로 변해 나오기 시작했다. 얼굴만 봐도 울컥울컥 올라오는 꽃들에 이제 곧 졸업이라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졸업 후 후타쿠치의 얼굴을 보지 않으니 꽃들도 나오질 않았다. 아, 내 짝사랑이 끝났구나. 하고 한편 가벼운 마음으로 다테에 찾아간 그날 후타쿠치와 눈을 마주친 그 때부터 온 뱃속을 뒤집어 놓으며 꽃들은 나오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짝사랑도 꽃도 끝난 게 아니었다. 그저 눈을 안 마주치니 안 나왔을 뿐이었다.
짝사랑 상대와 눈을 마주치면 꽃을 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니와는 그 후 다테에 발걸음을 아예 끊었고, 짝사랑을 죽이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허나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예계에 입성한 후타쿠치는 또 한 번 모니와의 맘을 흔들어 놓았고, 모니와는 티비든 잡지든 눈을 마주치면 꽃을 토한다는 알고 싶지도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티비도 강제로 끊고 살았는데, 현실로 만나는 후타쿠치라니. 자극이 너무 심하잖아! 마음속으로 카마사키와 운명에게 역정을 내도 도망 갈 수는 없었다. 겨우 몸을 후타쿠치 쪽으로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어, 그니까. 모니와상?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벌써 목 끝까지 꽃이 나오려고 움찔거리는 게 느껴진다. 아, 백프로 나온다 이건.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모니와는 심호흡을 했다.
후타쿠치 안녕? 하고 말하면 된다. 아니다 이것도 길다. 안녕, 으로 끝내자. 안녕 이렇게 두 글자만 뱉어내면 되는 거다. 정말 간단한 일이다. 손을 들고 방긋 웃으며 안녕? 이러면 되는 것이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겨우 들어 입 꼬리를 억지로 올린 모니와는 후타쿠치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향해 머쓱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는 후타쿠치가 보였다. 목구멍이 간질거리지 않았다. 좋아, 이때다!
"안!녀에..웨에에에엑"
장렬한 소리와 함께 입에서부터 꽃들의 행진이 이어졌다. 빨갛고 파란 꽃들이 좌르르륵 쏟아지는 것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봤지만 목구멍에서부터 넘어오는 꽃들은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입을 틀어막아도 그 틈으로 와르르 쏟아지는 작은 꽃들이 어느새 발치에 수북하게 쌓여갔다. 망했다. 이 세 글자가 모니와의 머릿속을 뱅글뱅글 맴돌았다. 분명 후타쿠치가 눈치 챘을 거야. 날 피할 거야. 이물질로 인해 고였던 눈물은 어느새 울컥울컥 넘어와 눈가를 뿌옇게 만들었다. 미안해 후타쿠치. 사실 내가 널 좋아해. 울적한 마음으로 겨우 고개를 들어 후타쿠치를 쳐다봤을 때,
"우웨에에엑."
그쪽에서도 화려한 꽃밭을 게워내는 중이었다. 쟨 또 왜 저래. 얼떨떨한 눈으로 카마사키를 쳐다보자 자신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 거린다. 조금 진정했는지 후타쿠치가 고개를 들어 모니와를 쳐다보는 순간, 그웨에엑 하는 소리와 함께 둘은 또 한 번 하얀 바닥에 꽃밭을 일구었다. 치우는 것은 물론 카마사키의 몫이었다.
동화 속에나 나올만한 꽃길을 만들어 내던 둘이 인사를 하게 된 것은 그 후로 30분후의 일이었다. 더 이상 나올 꽃도 기력도 없이 의자에 널부러진 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겨우 인사를 하고 후타쿠치는 도망치듯 바로 촬영장으로 도망갔다. 소파에 빨래마냥 걸려있는 모니와의 얼굴에는 아직도 꽃잎 나부랭이가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카마사키가 뭐라 뭐라 설명을 해줬지만 그건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모니와와 후타쿠치. 둘은 토하는 것만 빼면 나름 괜찮은 콤비였다. 예전에 배구부에서 그래도 몇 년 함께했던 탓인지 손발도 잘 맞고 그렇게 까칠하게 가시를 세워대던 후타쿠치도 모니와 앞에서는 순둥순둥한 면을 보이곤 했다. 모니와도 후타쿠치가 필요한 것을 알아서 척척 가져다주곤 했고 스케줄 관리도 건강관리도 척척이었다. 모니와의 말이라면 네. 하고 얌전하게 굴고 슬쩍슬쩍 뭘 챙겨다 오는 후타쿠치의 모습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보기 좋은 형제 같네. 모니와씨가 여기서 쭉 일해 줬음 좋겠어요. 얼마나 편하고 좋아. 하며 하하호호 웃곤 했다. 둘의 콤비는 환상이었다.
그러니까 꽃만 빼면 말이다.
"모니와상, 이거에웨에엑."
"응? 후타쿠치에에엑"
"...더러운 새끼들"
익숙한 손길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낸 카마사키는 능숙하게 치우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둘 다 꽃집에 취직하지 그랬냐 엉? 아주 그냥 매일매일 싱싱한 꽃들을 뱉어내는데 돈도 안 들고. 꽃집에서 두 팔 벌려 환영 하겠다? 빈정거리는 카마사키의 말에 대꾸조차 못하고 둘은 누가 누가 더 꽃을 많이 뱉어내나 대결이라도 하듯 맹렬하게 색색 꽃길을 만들었다.
"젠장, 너네 빨리 고백해라. 치우는 사람 입장도 좀 생각해보라고!"
"누,누,누, 누가 누,누,누굴 좋아한다고 고,고,고,고,곡백을 하래!"
"니 짝사랑 상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토하는 꼴도 이젠 지겨우니까 빨리 어떻게 좀 해봐."
후타쿠치 너도 확 고백하고 꽃 좀 작작 뱉어. 쌍으로 드러워 죽겠네. 아무 생각 없는 카마사키의 말에 도둑이 제 발 저린 다고, 모니와는 겨우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고,고,고 백은 알아서 할 거야! 하지만 말을 뱉은 본인도 듣는 사람들도 절대 고백을 못할 거를 알기에 자연스럽게 패스했다. 후타쿠치 넌 안하냐? 뭘요. 고백. 언젠가 하겠죠.
심드렁하게 입가며 옷에 묻은 꽃들을 털며 말하는 후타쿠치의 모습에 모니와의 얼굴이 울적해졌다. 부러웠다. 그 자존심 높은 후타쿠치가 저렇게까지 남들 앞에서 꽃을 토해낼만큼 절절하게 짝사랑하는 그 사람이 말이다. 분명 누가 봐도 반할 수밖에 없는 예쁘고 똑똑하고 당찬 사람이겠지. 후타쿠치의 짝사랑 상대를 조심스레 상상해보던 모니와는 거울을 흘낏 바라보았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심해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서있다. 옆에 서있는 후타쿠치를 흘낏 보고 다시 한 번 거울을 본다.
진짜 안 어울린다.
아무리 봐도 자신 같은 남자보다는 상상 속의 그녀가 훨씬 잘 어울린다. 분명 후타쿠치가 고백하면 바로 받아줄 텐데 왜 후타쿠치는 고백하지 않는 걸까. 고등학교 때도 생각해보면 후타쿠치는 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잘생기고 키 크고 운동 잘하고 성격이 좀 모나긴 했지만 그걸 커버할 만큼의 책임감이라던가. 주장일도 걱정했지만 후타쿠치에게 줄 수밖에 없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책임감이 뛰어나고 제법 다정한 성격을 아니까. 그래서 좋아했다, 지금까지 말이다.
7년 짝사랑 부질없네. 그래도 이렇게 만날 수 있단 거에 감사라도 해야 하나... 속상한 마음에 거울 너머로 후타쿠치를 바라보자 그쪽도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 단숨에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이 고요하다. 오로지 상대의 눈에 자신만이 가득하다. 그 묘한 느낌에 몇 번 눈을 깜빡이던 둘은 이내 곧 질세라 동시에 꽃들을 우에에엑 하고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화장이 다 마무리 됐던 참이었는지 코디네이터가 짜증난 비명을 지르는 게 들린다.
그니까 꽃만 토하는 것을 빼면 참 좋을 텐데.
모니와의 짝사랑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던 어느 날 후타쿠치의 열애설이 터졌다. 대상은 저번에 함께 촬영을 했던 여자 배우였다. 신문이며 인터넷 등 둘의 사진이 가득 화면을 메웠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늘씬하고 아름답고 빛이 나는 것 같은 사람들. 그에 비하면 자신은.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에 모니와는 저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고 목에 메어왔다. 눈가가 시큰거리는 것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멈추려 해도 생각은 부정적인 쪽으로만 뻗어 나갔다. 이런 자신이 후타쿠치를 좋아한다는 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또 아직도 좋아하고 있단 사실이 비참해서 결국 모니와는 침대에 머리를 박고 엉엉 울어댔다.
밤새 운 얼굴이 멀쩡하진 않았다. 퉁퉁 불어터진 얼굴에 마찬가지로 부운 눈 빨갛게 튼 뺨이 어딜 봐도 나 어제 엄청 울었어요. 라고 광고를 하는 듯 했다. 이 몰골로 일을 나갈 수 는 없었다. 사람들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순간 또 한 번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죽어도 그 꼴을 후타쿠치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늘만 쉬자 하는 생각에 카마사키에게 문자를 보내고 모니와는 다시 한 번 더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밤새 다 쏟아낸 줄 알았던 눈물은 또 한 번 왈칵 터져 나온다. 생각보다 더 많이 그를 좋아하고 있었나보다.
하루만 쉬자 라는 다짐은 몇 번을 반복해 벌써 결근 일주일 째였다.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 일주일 내내 울어서 얼굴의 붓기가 전혀 빠지지 않았다는 것과 이대로 서서히 멀어지면 지독한 짝사랑도 만나지 않았던 그 때처럼 조금은 가라앉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좋아, 이대로 사표를 쓰자. 카마사키에겐 미안하지만. 조금 더 진정되면 편의점이나 문방구에 가서 봉투랑 펜이랑 사고, 맞다 그때 간단히 먹을 것도 사자. 그리고 술도 사고...
생각이 다시 우울한 곳으로 퍼져나가는 찰나 누군가 문을 거세게 쾅쾅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강도인가 싶어 핸드폰을 꽉 쥐고 바짝 귀를 세워 경계를 하는데 문 건너편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가 익숙하다. 이젠 발로 걷어차는지 소리가 더 세졌다. 동시에 핸드폰에서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발신인은 후타쿠치. 전화를 받을까말까 문을 열까말까 고민하던 찰나 모니와상 이거 안 열면 부시고 들어갈 거예요! 망치 들고 왔거든요?! 좋은 말 할 때 열어요! 하고 패악을 부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난 왜 쟤를 좋아하게 된 걸까.
미적미적 거리며 문 앞으로 다가갔지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후타쿠치는 왜 여기까지 와서 성질을 부리는 걸까. 후타쿠치의 얼굴을 보자마자 토하는 건 아닐까. 아 혹시 멋대로 일을 안 나와서 욕하러 찾아온 걸까. 쟤라면 그러고도 남지. 등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뱅글뱅글 돈다. 그 와중에 쾅쾅 두들기는 소리는 멎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혹시 안에 있는 사람이 무슨 일이라도 난걸까 걱정이 되어 미치겠다는 듯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이 상태로 가다간 소음공해로 내쫓길 것 같단 생각에 황급히 문을 열자 급히 뛰어왔는지 머리며 옷이 다 헝클어진 상태로 씩씩 거리는 후타쿠치가 서있었다. 모니와를 급히 살펴보던 눈이 안도의 기색을 띈 것도 찰나 바로 험상궂게 올라가는 눈이 나 제대로 야마 돌았어요. 하고 표현한다.
"왜 안 나왔어요?"
"모,몸이 아파서 좀 쉰 거 뿐이야."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요? 지금 병든 닭 새끼 마냥 비쩍 마른 것도 아파서예요?"
그냥 안색도 안 좋고 입술도 파리하고 몸 안 좋아 보여요. 많이 아픈거예요? 라고 물어보면 될 것을 이놈의 입은 거침없이 내뱉는다. 자신의 말을 듣고 더 안색이 안 좋아지는 모니와의 모습에 후회가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입을 멈출 수는 없었다. 걱정으로 바싹 마른 입술에 침 한번 바르고 후타쿠치는 입을 열었다. 입술에 침도 발랐겠다 입에서 나오는 건 거짓말이 대부분이니까 대충 알아서 걸러들어요. 모니와상.
"미친 거 아니에요? 일이 장난이에요? 모니와상 고등학교 때보다 더 책임감 없어진 거 아니에요?"
"그, 미안해. 근데,나는,"
"아프면 곱게 잠이나 자든가 왜 그 꼴을 하고 여기까지 기어 나왔대? 안 아파요? 꾀병 아냐?"
니가 문을 미친놈마냥 두드렸잖아! 라는 항의의 소리는 입안으로 쑥 들어갔다. 다년간의 경험 상 왈왈 제 할 말을 짖을 때의 후타쿠치는 조금이라도 태클이 들어오면 비꼬고 짓밟고 욕하는 둥 공고 일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탓이다. 억울한 맘에 입술만 꾹 깨물고 눈에는 글썽글썽 눈물이 차오른다.
"왜 울어요? 뭘 잘했다고? 지금 모니와상 안 나와서 일이 얼마나 개판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몰라요?"
뻥이다.
임시 매니저 하나 없다고 안 돌아갈리가 없다. 원래도 카마사키 혼자서 잘 했었다. 개판인건 후타쿠치 자신 혼자뿐이었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이럴 거면 일 때려치는 게 낫지 않아요? "
그래그래. 매니저 같은 건 때려 치고 자신의 아내로 취집이나 했음 좋겠다. 자신의 생각에 자화자찬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후타쿠치는 이제 곧 미안하다며 일 나올 거라고 얘기하는 모니와의 모습을 예상했다. 카마사키한테 들은 바로는 취직할 때까진 여기 다닐 예정이라 했으니 그만둘 리가 없었다. 제법 강수를 둔 후타쿠치는 모니와가 기를 죽이고 자신에게 올 걸 생각하며 근질거리는 입 꼬리를 꾹 눌렀다. 모니와의 말을 듣기 전까진 말이다.
"미,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 일 그만 둘거야."
"...네?"
"그만둔다고, 일."
모니와로서는 나름의 심사숙고 끝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후타쿠치한테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그만둔다니? 이제 만났는데? 우리 다시 만난 지 두 달밖에 안됐는데요?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줄이나 알고 그러는 거예요? 난 어떡하라고? 내가 웩웩 토하면서도 매일 밤 모니와상 사진 보다가 잠든 거 아는거예요? 어찌할 줄 모르는 속마음과는 달리 입은 또 멋대로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왜요? 왜 그만두는데요? 진짜 책임감 개판이네. 모니와상 장난해요?"
"그만두게 된 건 미안해. 매니저는 또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동안 고마웠어."
"아니, 왜 그만두는데요. 지쳐요? 바빠서? 카마사키 선배가 막 부려먹어요?"
"그,그런거 아냐. 그냥 내 탓이야."
울먹울먹 하면서도 다테 전 주장답게 일을 그만두겠다며 강단 있게 말을 하는 모니와의 모습에 후타쿠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모니와상 탓이 뭔데요? 실수라도 했어요? 그건 그냥 카마사키 선배가 다 뒤집어쓰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와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요, 왜 그만두는데요. 근무환경 때문에? 모니와씨 이거 계약위반인거 알아요? 위약금이 얼만지는 알고 이러는 거예요?"
이제야 돌아가기 시작하는 제 머리를 칭찬하며 후타쿠치는 온갖 과장된 얘기로 모니와를 겁주기 시작했다. 위약금 같은 건 없다. 알바 식으로 잠깐 하는 거라 계약서도 간단했다. 다만 제가 쓴 계약서 내용도 까먹었는지 모니와의 얼굴은 점점 새파래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후타쿠치는 열심히 모니와를 압박했다. 모니와상 이럼 안 돼요 위약금이 2억이니 뭐니 등등 새빨간 거짓말인 줄도 모르고 모니와는 어찌할 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만두면 모든 게 끝인 줄 알았는데 현실적 문제가 거대한 장벽처럼 제 앞을 막는다. 2억 이랜다. 카맛치한테는 그런 말 못 들었는데. 사기일게 농후한데 후타쿠치의 뻔뻔한 얼굴은 사실이라 말하는 거 같아 혼란스럽다.
정말 위약금이 2억이라면 계약이 끝날 때까지 일하는 게 맞다. 근데 그 사람과 연애하는 후타쿠치는 차마 못 볼 것 같아서 정말 매일 볼 때마다 울 것 같아서 차라리 그만두고 싶었다. 머리가 팽글팽글 도는 와중에도 후타쿠치는 열심히 모니와를 공격했다. 왜 그만둬요 왜?왜?왜? 2억이라니까요? 모니와상 부자 아니잖아요. 등등.
결국 과부하 된 머리를 어찌할 줄 모르고 모니와는 될 대로 되란 마음으로 고백을 했다. 이 말이면 왜 그만두는지 후타쿠치도 이해하겠지. 더 이상 모르겠다 라는 식의 자포자기의 고백이었다.
"좋,히끅, 좋아, 좋아해에에엑"
빨갛고 파란 작은 안개꽃 같은 꽃들이 고백과 함께 좌르르륵 넘어온다. 이제까지의 생애중 가장 중요한 고백이지만 이놈의 꽃들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올 거면 차라리 연약한 코스프레라도 하게 병약한 소녀처럼 콜록콜록 하고 간간히 꽃이 하나 둘 떨어지면 좋을 텐데 술을 진탕 먹고 온 것 마냥 와르르 쏟아진다.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꽃은 그 며칠간 나오지 못한 것을 이제야 탈출한다는 듯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어느새 발밑 수북이 쌓인 걸 보고 모니와는 절망했다. 분명 실망할거야. 밉겠지 내가. 욕도 하고.. 어쩌면 더럽다고 한 대 칠 수도 있겠다. 그냥 내가 되게 싫겠다.
엉망진창 우울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모니와와는 달리 후타쿠치의 머릿속은 핑크빛 그 자체였다. 그동안 짝사랑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같은 마음이라니. 아싸! 신이시여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티내지 않았다. 남자의 가오가 있지. 대신 목소리를 조금 더 다듬고 허리를 꼿꼿이 피고 한껏 얼굴에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정도면 모니와상이 더 반하고도 남겠지.
나도 좋아해요.
하고 말하려는 찰나 입에서 꽃들이 넘어왔다. 징글징글한 새끼들! 욕과 함께 치밀어 오르는 토기에 후타쿠치는 재빨리 입을 손으로 막았다. 멋있게 말해도 모자랄 판에 토라니. 그건 제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다. 수 천 명의 니로 팬들도 이런 모습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오빠가 저렇게 볼품없는 모습이라니! 하고 놀라겠지. 물론 그 모습마저 좋아해 줄건 뻔할 뻔자지만 말이다. 하지만 모니와는 달랐나보다. 푸다닥 놀란 닭처럼 몸을 크게 떨더니 도망갈 곳을 찾느라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을 보고 후타쿠치는 당황했다. 어? 그 정도로 더러워요? 도망갈 정도로? 어라?
한편 모니와는 입을 손으로 가린 채 새파랗게 질린 후타쿠치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제대로 실수 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더럽다고 생각할거야. 이제 얼굴조차 보지 못할 거야. 난 틀렸어.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현관은 후타쿠치가 떡하니 막고 있고 부엌으로 도망가면 잡히고 거실도 백 퍼 잡힐 것 같았다.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자신의 방이었다. 문을 꼭꼭 잠그고 숨어있으면 후타쿠치가 갈 거야. 그럼 방에서 더 울다가 카마사키한테 미안하다고 일은 더 못할 것 같다고 얘기해야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방 쪽으로 몸을 트는 순간 세게 어깨가 잡혔다. 토끼같이 눈을 동그랗게 뜬 모니와가 뒤를 바라보자 아직도 입을 막은 채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후타쿠치가 눈에 들어온다.
"아, 진짜! 모니와상은 왜 그렇게 성격이 급해요!"
"후,후,후,후,후타쿠치?"
"좋아한다고! 나도 좋아한다고요! 어디 가는데!"
고백을 듣자마자 멍하니 굳어 있다가 얼굴이 목 끝에서부터 화르륵 빨개진다. 새빨개진 채 빠르게 도망가려는 팔을 꽉 붙잡자 운동을 안 해서 그런지 예전보다 확실히 살이 부드럽게 붙은 것이 느껴진다. 아 귀여워. 이대로 입에 넣은 채 사탕처럼 쪽쪽 빨아먹고 싶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소리를 기분 좋게 들으며 모니와의 두 볼을 잡고 확 들어 올리자 포동포동한 볼 살이 손에 가득 찬다. 모찌 같아, 귀여워. 혹여 꽃 토라도 할까봐 조가비마냥 꽉 닫힌 눈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눈 떠봐요. 싫어 토하면 어떡해애. 안 해요. 해. 안한다니까요? 한다니까? 나 믿고 하나 둘 셋 하면 눈 뜨는거예요. 안 뜨면 콧구멍에 확 손 넣어 버릴거야. 협박과도 같은 후타쿠치의 말에 모니와는 조금 더 인상을 구겼다. 하면 한다는 후타쿠치의 성격을 아니까 이러는 거다.
하나, 둘, 하고 숫자를 세는 목소리가 귀에 감미롭게 날아온다. 왜 목소리까지 잘생긴 건데_ 라고 원망을 내뱉어 봤자다.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지. 셋. 하는 소리와 함께 모니와는 감았던 눈을 심 봉사 마냥 번쩍 떴다. 초승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져있는 따뜻한 갈색 눈이 애정을 가득 머금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타쿠치의 말대로 꽃은 나오지 않았다. 눈만 마주쳐도 와르르 쏟아지던 것이 잠잠 하자 어색하고 이상하고 묘한 기분이다.
"거봐요. 내가 안 나온다고 했잖아."
웃음기 가득한 후타쿠치의 말에 목을 더듬더듬 만져보고 그,그러네. 하고 말을 흐렸다. 꽃이 나오질 않는데도 눈을 똑바로 마주칠 수가 없었다. 꽃이 나오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짝사랑이 끝나거나 아니면 짝사랑을 이루었거나. 자신이 그만둔 적은 없으니 분명 후자의 이유일테다. 그니까 자신과 후타쿠치의 마음이 같은 거다. 쌍방향. 서로 좋아함.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마음이 이리저리 폭주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또 한 번 멋대로 빨개지고 말은 더듬기 시작하고 눈동자는 갈피를 못잡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난리가 났다. 그런 모니와도 귀엽다는 듯 후타쿠치는 품에 꼭 안았다. 몇 년의 짝사랑 끝에 드디어 잡은 사람이다. 이제 절대 도망못가요. 나지막하게 경고하는 거 같지만 달콤하기 그지없는 주박에 모니와는 배싯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도망 못가.
*
암만 봐도 수상하다. 예전에는 눈을 피하느라 바쁘고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에 달려가던 둘이었는데 어느새 눈도 잘 마주치고 툭툭 장난도 치고 있다. 아니 그 정도는 괜찮다고 치자. 함께 한 세월이 몇인데 저렇게 친해질 수 있지. 자신도 후타쿠치와 (악의를 가득 담아) 툭툭 치며 장난치곤 한다. 문제는 왜 둘 사이에서 달달한 꽃분홍내가 나냐는 것이다. 눈만 마주쳐도 좋다고 (제 기준에서) 헤실헤실 풀어지는 후타쿠치의 표정이나 빨개진 채 손부채질을 하기 바쁜 모니와나 암만 봐도 이제 갓 사귄 연인들의 꼬라지와 똑같았다.
"야 니들 사귀냐?"
낄낄 웃으며 농담 삼아 한 말에 주위가 고요해졌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고는 했지만 그 돌이 다시 풀스윙으로 날아와 저를 칠 줄은 카마사키는 꿈에도 몰랐다.
"사귀는데요?"
"엉?"
"넘보지 마요. 제거니까."
"으어어엉?"
후, 후타쿠치! 하고 팔을 붙잡고 얼굴이 시퍼래진 채 울먹울먹 하는 자신의 동창이 보인다. 그 옆에는 악마가 의기양양하게 콧웃음을 치며 소중하게 제 친구를 껴안고 있다. 암만 봐도 햄스터 하나를 잡은 악마다. 남자끼리 사귀는 건 워낙 연예계에서 많이 본 모습이라 이제 와서 징그럽다거나 혐오스럽단 생각은 들지도 않는다. 사귀던 말든 지들끼리 알아서 살라지. 하지만 모니와는 안 된다. 다테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얘는 지켜줘야겠구나. 하고 형의 마음으로 얼마나 부둥부둥 키워왔는데 저 영악한 후배 손에 낼름 넘겨줄 수가 있겠는가.
곱게 키운 막내딸을 빼앗긴 느낌에 혈압이 올라 뒷목을 잡고 비틀거리자 모니와가 카맛치! 하고 달려온다. 그래, 모니와 형 좀 위로해주렴. 형이 헛소리를 들은 것 같구나. 활짝 팔을 벌리고 모니와! 하고 외치는데 후타쿠치가 쓱 손을 뻗어 모니와를 제 품에 가둔다. 그 와중에 카마사키 손을 탁하고 멀리 쳐내는 것도 있지 않았다. 과거 배구부답게 손이 맵기 그지없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과 후타쿠치를 번갈아 쳐다보는 모니와를 보며 생글생글 웃는 낯짝이 진심으로 마음에 안 들었다. 모니와상 어디가요. 카맛치가 아파 보여서.. 안 아파요, 원래 저래요 종종. 그나저나 오늘 뭐해요? 데이트 갈래요? 치근덕거리는 꼴이 동네 양아치랑 똑같다. 그 앞에 잡힌 건 순진한 아가씨.
카마사키는 생각했다. 오늘은 술이 참 달겠다고.
'하이큐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로츠키] 커피를 마시고 (4) | 2015.09.10 |
---|---|
[오이이와] 이별하지 못한 이별 속에서 (1) | 2015.08.31 |
[오이이와] 꿈에서 놀아줘 (1) | 2015.08.13 |
[우시이와오이] 안녕보다 가볍고 안녕보다 무거운 (0) | 2015.07.24 |
[오이이와] 어떤 날도 어떤말도 (0) | 2015.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