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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츠키] 커피를 마시고
[쿠로츠키]
커피를 마시고
by. 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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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그나저나 이런 곳에서 만날 수 있을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야."
"저도 마찬가지에요."
화창하고 바람도 선선한 애인이랑 놀러가기 딱 좋은 날씨. 달콤한 사랑노래가 울려 퍼지는 작고 귀여운 카페 안, 테이블에 놓인 딸기 쇼트케이크와 커피의 조합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삼삼오오 앉은 커플들은 제 연인이 마냥 사랑스러운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귓가에 까르륵 하고 옆 테이블의 여성의 웃는 소리가 옥구슬 굴러오듯 들어온다. 뒤를 따라 그녀의 애인인 남자의 사근사근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분위기 속 카페 구석에서는 멀대 같이 큰 장정 둘이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연인들 사이에 있어서 인지 아니면 사내 둘만 멀뚱하니 있어서 인지 달큰하기 그지없는 분위기 속 둘이 앉은 테이블만 칙칙하다. 누구 먼저라 할 것 없이 둘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아, 애인 사귀고 싶다.
둘이 만난 것은 우연 중에 우연이었다. 이 먼 타지까지 와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 건가. 그것도 같은 대학에서 말이다. 먼저 알아본 것은 쿠로오 였다. 그래도 유학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겠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해서 간 미국은 별천지였고, 제 생각보다 좋았으며, 제 생각보다 힘들었고, 제 생각보다 외로웠다. 사교성이 좋은 탓에 친구는 여럿 사귀었지만, 확연히 다른 생김새의 그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고국에 대한 외로움은 깊어져 갔다. 그리고 우연찮게 같은 대학으로 온 츠키시마를 만났다. 저 멀리서도 보이는 커다란 키에 여전히 무심하면서도 뚱한 얼굴. 한 몸 마냥 붙어있는 안경.
그때의 합숙과 배구 경기 때 몇 번 본 것이 다였지만 정말 반가웠다. 안경군! 하고 소리치자마자 저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영어가 아닌 일본어로 인사를 하는데 그 순간 쿠로오는 울 뻔했다는 것은 영원히 비밀로 하기로 했다. 물론 촉촉한 눈동자를 숨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츠키시마도 꽤나 반가웠는지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대화를 나누던 둘은 커피라도 한 잔 할래? 라는 쿠로오의 말에 대학 근처 카페로 가 또 기나긴 얘기를 나누었고, 어느 새 그것은 둘만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머나먼 타지에서 제 나라 말로 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3학년들의 졸업 후의 카라스노 얘기도 듣고, 자신이 졸업한 후의 제 2, 3의 쓰레기장 결투도 듣는 등 얘기는 해도 해도 넘쳐 흘렀고 그렇게 둘은 자주 만났다.
츠키시마를 자주 만나면서 깨달은 것은 그 키와 성격에 어울리지도 않게 아이처럼 입에 무언가를 묻히면서 먹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든 케이크를 먹든 입가에 달큰한 크림이 꼭 입가에 묻어났다. 음료도 의외로 단 것을 좋아해 커피 위에는 늘 휘핑크림이 올라가 있었고 그것은 늘 하얀 수염 마냥 츠키시마의 입가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여기서 막내 티가 나는 건가.
켄마를 챙기던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어서인지 쿠로오는 자연스럽게 손이 뻗었다. 입가를 조심스럽게 닦아주는 손길에 놀라 츠키시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평소와 달리 순하게 쳐다보는 모습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역시 이럴 때 보면 애는 애라니까. 고작 두 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인생 선배마냥, 나이차 많이 나는 형 마냥 쿠로오는 너그러운 표정을 지었다.
"쿠로오씨가 친절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랍니다."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뻣뻣해지며 정색하는 츠키시마의 표정에 쿠로오가 어색하게 웃었다. 어라, 이거 데자뷰?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않아? 입을 삐죽 내밀며 툴툴거리는 쿠로오의 모습에 츠키시마는 한껏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네? 무슨 말인지? 하고 대답했다. 안경군 성격 진짜 안 변했네. 그쪽이야 말로요.
투닥 거리면서도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서로가 웃겼다. 진짜 고향이 그립기는 했나봐, 라는 여유로운 생각을 하며 쿠로오는 얼음을 동동 띄운 아이스티를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시원하게 넘어가는 인공적인 복숭아 향에 웃음이 나온다. 이거 티백 겁나 싸구려잖아? 가격 바가지 아냐? 라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적인 생각을 하며 말이다.
남자 둘이 카페에 온 것이 이상했는지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을 모른 척 하며 쿠로오는 패기 있게 아이스티를 한 잔 더 시켰다. 인공적인 그 맛이 은근히 중독이 있다. 그리고 아직 할 얘기도 많이 남아있고. 츠키시마를 위한 딸기 케이크를 하나 더 시키며 쿠로오는 흥흥 콧노래를 불렀다.
*
오늘도 츠키시마와 약속을 잡고 하도 많이 들어 외워버린 사랑노래를 흥얼거리며 카페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뒤쪽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같은 과 동기인 안나였다. 걸음이 빠른 쿠로오를 따라잡느라 뛰어왔는지 볼에 발그레한 홍조를 띄운 채 숨을 고르고 있다. 그녀가 호흡을 고를 수 있도록 기다리며 쿠로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가만히 서서 후하 후하 흐트러진 숨을 정리한 안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뭔데?"
"...너 게이야?"
전혀 예상치도 못한 질문에 웃는 표정 그대로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고작 해봐야, 시험 범위나 과제 아니면 길 묻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 사실 조금 기대해서 핸드폰 번호라도 가져가려나 싶었는데 게이냐니.
"게, 게이?"
"그, 안경 쓰고 키 큰 남자랑 자주 붙어 다니는 거 같아서...데이트도 자주 하는 편 아냐...?"
이제야 어느 정도 사건이 파악된 쿠로오는 허허 웃음을 지었다.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츠키시마랑 하루가 멀다 하고 뺀질나게 붙어 다녔더니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라도 돌았나 보다. 역시 아메리카. 동성애에 제 나라보다 너그러운 만큼 그거에 관련해서 헛소문도 잘 도나 보다.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해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은 끝도 없이 나왔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하고 말을 고르던 찰나 앞의 동기는 뜬금없이 커밍아웃을 당해 놀란 나머지 넋이 나가 웃는 줄 알았는지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해! 응원할게! 라는 말을 남긴 채 저 멀리 뛰어가 버렸다. 변명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 일을 시작으로 쿠로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 게이야? 라는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진짜 내가 안경군이랑 많이 붙어 다니긴 했나봐? 아니라고 말하는 것조차 지겨워져서 웃으며 넘겼더니 소문은 더욱 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러 사람에게 시달리느라 진이 쏙 빠진 쿠로오와는 달리 츠키시마는 전혀 그런 말을 듣지 않았는지 변함없이 덤덤하게 쿠로오를 만나고 같이 맛난 것을 먹었다. 혹시 사람들이 이 꼴을 보고 또 호모냐고 질문 하는 거 아닐까 하고 전전긍긍하는 쿠로오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며칠을 가만히 관찰하던 쿠로오는 츠키시마는 나랑 커플이냐는 질문을 받아보지 않았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은근 예민하고 속 좁은 츠키시마가 이렇게까지 무덤덤한 것을 보면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대학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나중에 알고 충격 먹기 전에 내가 미리 알려줘야겠다. 라는 연장자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까마귀군 그러고 보니까 말이야,"
"호칭 좀 통일해 주시죠."
"그럼 츳키?"
짜증난다는 듯 안경 너머로 노려보는 눈빛을 모른 척 하고 쿠로오는 천천히 케이크를 자르면서 말을 골랐다. 어떻게 해야 가장 충격이 가지 않게 말을 전할 수 있을까. 최대한 돌려서 그러니까,
"우리보고 호모라고 하더라."
망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소문을 어떻게 간접적으로 전해야 할 지 감도 안 잡힌다. 마시던 커피를 그대로 내려놓은 채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츠키시마가 보인다. 분명 충격 받았겠지. 그래, 저 나이 때는 귀여운 여자 친구도 사귀고 싶을 텐데 멀리 이국까지 와서 칙칙한 남자랑 연애한다는 소문이라니. 충격 받고도 남았을 거야. 안타깝다는 듯 츠키시마를 바라보며 쿠로오는 준비한 다음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이 소문이 가라앉을 수 있게, 안경군이 귀여운 여자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한껏 배려하는 그런 말 말이다.
"어, 음. 안경군 우리 그만 만날까?"
헤어지냐? 지금 연인한테 헤어지자고 하는 거냐? 나름 언변은 좋다고 생각했는데 호모라는 두 글자에 와장창 무너져 버린다. 제가 뱉어놓고도 어이가 없어서 쿠로오는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츠키시마가 무어라 말을 할 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한 가지는 확실했다. 빈정거리겠지. 분명 빈정거릴 거야. 그리고 그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는 별 상관없는데요."
"엉?"
"신경 안쓰면 그런 소문 쯤 그냥 가라앉잖아요."
"에?"
"저번부터 쿠로오씨랑 사귀냐 뭐냐 하는데 그런 거 변명해봤자 어차피 자기들 좋을 대로 믿을 테고."
아, 이미 알고 있었어? 왠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에 쿠로오는 머쓱하게 제 머리를 매만졌다. 괜히 이런 저런 걱정을 한 자신이 민망해진다. 쿨하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입가에 크림을 묻히는 츠키시마의 모습에 쿠로오는 씨익 웃으며 손을 올려 입가를 닦아주었다. 엄지손가락에 묻는 크림이 부드럽다. 츠키시마의 말대로 어차피 사실이 아니니까 이대로 그냥 넘어간다면 괜찮을 것이다. 덤덤하게 케이크를 입 안에 넣는 츠키시마를 보며 쿠로오는 씩 웃었다.
일주일이나 더 갈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한 호모라는 소문은 오히려 커지면 커졌지 가라앉을 생각을 안했다. 둘 다 딱히 변명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해 그냥 니 편할 대로 생각 하세요~ 하고 놔둔 탓이었다. 이젠 아예 대학 공식 호모커플이 되어서 동성애 동아리에서 홍보모델을 할 생각이 없냐는 제의까지 받는 판이었다. 우리 이러다 미국 공식 호모 커플 되는 거 아냐? 신나게 웃으면서 장난 가득 섞인 말을 하면 츠키시마는 그저 덤덤하게 큰일이네요. 하고 맞장구 쳐주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너네 정말 사귀냐는 말에 내가 어떨 거 같냐고 물으니까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
"와아, 그것 참 재밌네요."
하나도 재밌지 않다는 표정으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츠키시마는 여전히 입에 생크림을 묻힌 상태였다. 변함없는 그 모습에 쿠로오는 익숙하게 손을 들어 크림을 닦아주었다.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기들이 그런 둘을 보며 잘 어울린다고 응원해준다. 능글맞게 웃으면서 땡큐 땡큐 거리는 쿠로오의 모습에 츠키시마가 한숨을 쉬었다. 둘이서 나란히 대학 명물 호모가 되었다. 감사타령이 끝났는지 그제야 휴지로 크림을 닦아내던 쿠로오는 갑자기 장난기가 도졌는지 츠키시마를 향해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가끔 보면 말이야, 안경군이 일부러 묻히고 먹는 게 아닌가 싶어."
"예?"
"이 친절한 쿠로오씨의 손길을 받고 싶어서 말야."
능글능글하게 검지로 츠키시마의 뺨을 문질거린 쿠로오는 이제 곧 날라올 빈정거림에 대해 방어할 준비를 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 엉아가 다 들어 줄게요_ 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능글능글 웃으며 츠키시마를 바라보던 쿠로오는 지금 이 순간까지만 해도 요 작은 까마귀에게 자신이 한 방 세게 맞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일부러 맞는데요."
입에 묻힌 거. 입가를 톡톡 치며 무덤덤하게 말하는 모습에 입가가 떡하니 벌어진다. 예상치 못한 말에 멍청하게 굳어있는 쿠로오를 보며 츠키시마는 가볍게 그의 손에 얼굴을 기댔다. 가만히 닿아오는 온기에 파드득 놀라 손을 떨어뜨리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케이크를 입에 넣는다. 설마 제가 히나타도 아니고 입에 묻히고 다니겠어요.
"어? 너? 어?"
"그 표정 진짜 멍청하네요. 아니 원래 멍청하게 생겼던가."
입을 헤 벌린 채 당황한 티를 잔뜩 내며 두 손을 이리 저리 허공에 휘젓는 꼴을 퍽 안타깝다는 듯 츠키시마가 바라보았다. 정말 놀랐는지 빨개졌다 하얘졌다 파랗게 질렸다가, 사람 얼굴색이 원래 이렇게 다채로웠다고 카페 곳곳에 알려주기로 마음이라도 먹었는지 쿠로오의 얼굴은 바쁘게 색을 바꾸었다.
"너, 그 호모 소문, 싫다고,"
"싫다고 한 적 없는데."
가볍게 커피를 마시며 중얼거리는 츠키시마의 말에 쿠로오는 숨을 빠르게 들이켰다.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보면 츠키시마는 단 한 번도 부정의 말을 내뱉은 적이 없었다. 그저 소문인데요, 신경 쓰지 마요 등 등 그 정도의 말이었을 뿐이다. 싫어요, 별로네요, 마음에 안 드네요. 등 그 소문을 싫다고도 부정한 적도 없다. 그것을 이제야 깨달은 쿠로오는 이번에는 아주 새빨갛게 얼굴색을 변신시켰다.
"그럼 먼저 실례할게요."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의 모습을 가만히 정면에서 지켜보던 츠키시마는 생긋, 예의상의 미소를 잔뜩 얼굴에 띠우며 일어났다. 주변에서는 이 둘의 대화가 영어가 아니라 못 알아들어서 그저 사랑의 속삭임이라도 나눴나보지 하고 억측을 하며 축복의 말을 날리고 있다. 이번에는 츠키시마가 땡큐라고 감사의 말을 날린다. 안경군, 그러면 진짜 우리 사귀는 거 같잖아. 왜 고마워 그게, 왜? 저 가요. 라는 츠키시마의 말에 쿠로오가 멍하니 얼굴을 들어 쳐다보았다. 인사할 힘조차 없었다. 겨우겨우 든 시야에는 눈까지 접어 생긋 생긋 웃고 있는 츠키시마가 가득 찼다. 저거 완전 예의상 웃는 표정 아냐.
"바보 고양이."
쿠로오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방금 전의 모습과 달리 금세 빈정거리는 표정으로 싹 바꾼 츠키시마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하는 말에 쿠로오는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눈치가 없어도 어느 정도껏이여야지. 혀를 쯧, 차고 아무렇지 않게 나가는 뒷모습 뒤로는 얼굴을 두 손에 폭 묻은 채 귀 끝까지 빨개진 쿠로오가 있었다. 켄마 나 어떡해 안경 까마귀가 진짜 나 좋아하나봐. 호모가 헛소문이 아니었어. 근데 나는 왜 두근거리고 있대? 케엔마아_ 엉아 큰일 났다. 멀리 미국까지 와서 호모가 되어버릴 것 같아.
차가운 테이블에 얼굴을 묻자 그나마 열기가 좀 가라앉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어 가만히 있던 쿠로오의 고개를 들게 만든 것은 문자 알람이었다. 겨우겨우 표정을 수습한 쿠로오는 핸드폰 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여전히 빨간 상태였다.
발신자는 안경 까마귀. 내용은 내일 만날래요?
보낸 본인을 닮아 덤덤한 그 문자에 또 한 번 심장이 저 밑까지 쿵 떨어졌다, 올라온다. 그니까 습관처럼 입에 묻혀 먹는 것도, 소문을 놔둔 것도 다 일부러였다 이거지? 쿠로오는 한 쪽 손으로는 여전히 잘 익은 사과마냥 붉은 얼굴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는 츠키시마의 저장명을 바꾸었다.
[잔망스러운 안경 까마귀]
내일 어떻게 보지, 고백하는 거 아냐? 내일 뭐 입지? 아니 나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화면에 둥둥 떠다니는 저장명을 보자 또 한 번 심장이 쿵쾅 쿵광 뛴다. 놀라서 일까, 설레서 일까. 그 둘 중 어떤 이유 때문일까 고민하며 쿠로오는 얼굴을 식히기 위해 다시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좀처럼 화끈 거리는 기색은 식을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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