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딘가 가난하고 어딘가 찌질한 세죠 삼넨세 히어로 얘기입니다. 그만큼 가볍게 가볍게 캐붕가득한 이야기.
-
[하이큐]
정의의 사도들
by. MARU
-
사람이 우주로도 넘어가는 판국에 외계인이라고 지구로 넘어오지 말라는 법도 없고, 유전자 조작으로 멋들어진 생물을 만들어내는 만큼 괴물이라고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요즘 시대에서 별의 별일은 다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한 별의 별일중 이번에는 영화에서나 볼법한 괴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심지어 집 뒤 골목에서 등등 어디서든 튀어나와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들에 대항하기 위해 정부는 커다란 프로젝트를 세웠다. 우선 체력, 지력 두 가지를 기준으로 사람들을 뽑고 과학의 힘을 빌려 그들의 힘을 극대화 시킨다. 각 특징에 맞게 합격자들을 나누고 배치하여 알맞은 훈련을 시켜 능력을 기른다. 훈련의 강도는 죽음의 문턱에 상반신을 걸칠 수 있을 정도로. 그 훈련을 이겨낸 자들은 국가에서 특수직 공무원으로 뽑아 일반인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위험한 존재들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한다.
쉽게 말해서 영웅님 지구를 구해주세요! 프로젝트 정도가 되겠다.
처음에는 인체 실험, 인권 유린 등 지탄을 받았으나 피해가 늘어감에 따라 반대하는 무리들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밥을 먹고 상사를 욕하던 옆 자리 직원이 죽는다. 안녕, 내일 봐! 하고 헤어진 친구 자리에 등교해보니 국화가 놓여있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죽음들에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히어로를 부르짖었다. 법과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훈련을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방에 갇혀 뒹굴거리던 영웅들은 그 부름에 달려 나갔다. 여러분을 위해 저희가 왔습니다! 모두 안심하세요! 멋들어진 대사와 함께 그들은 하나하나 적들을 물리쳐나갔다. 영화에서나 만화에서나 보던 모습이 실제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며 살았다는 안도감의 환호를 질렀다. 총을 갈겨대도 꿋꿋하게 살아남던 존재들이 발차기 한번에 나가떨어지는 그 모습이란 유쾌, 통쾌, 상쾌 그 자체였다. 일주일 간 묵은 똥이 쑥 내려오는 기분! 막힌 변기가 내려가는 시원함! 숙제 안한 날 선생님이 까먹고 검사 안해서 초조함에서 해방된 기분! 개처럼 짖어대던 상사가 갑자기 배탈이 나 오늘 하루는 못오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행복함! 그 모든 것을 합치면 지금 생존자들이 느낀 기분과 같으리라.
다음 날 신문에는 '기적' 이라는 타이틀로 정부 공식 영웅들의 사진이 떡하니 올라왔다. 바야흐로 영웅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많은 돈을 투자하고도 통째로 말아먹다 못해 욕까지 덤으로 얻게 된 쓰레기 전략이 싸움 한 번에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다. 영웅이라는 직업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영웅 전담 부서가 따로 생겼다. 야산에 몰래 지어진 실험실은 당당하게 도시 한복판으로 내려왔다. 정부의 프로젝트에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숨어 지내던 영웅들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녔다. 연예인들처럼 팬클럽도 생겼다. 월급도 올랐다. 회색빛 미래가 핑크빛으로 변한 영웅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원한 만큼 영웅들의 능력도 다양했다. 힘만 무식하게 센 능력, 물을 지배하는 능력, 공기를 지배하는 능력, 미래를 읽는 능력, 천재적으로 검을 다루는 능력 등 일반인이라면 가질 수 없는 능력들을 지닌 이들은 인류계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존재들이 바로 아오바죠사이 되시겠다.
봄고가 끝나고 후배들에게 배구부를 넘긴 후 넘치는 시간을 주체못한 주장께서 손수 나머지 잉여들을 이끌고 실험실에 찾아갔었다. 재밌어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그 넘쳐나는 체력으로 집에서 놀지만 말고 저거라도 한번 해보라며 반 농담으로 툭 던진 어머니의 말이 기폭제였다. 체력도 시간도 남아도는 3학년들은 다같이 우르르 몰려갔고 다같이 우르르 1차시험을 통과했다. 볼일을 보고 돌아온 가족들에게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집안과 '영웅이 되겠습니다.' 라고 멋들어지게 적은 아들들의 쪽지 하나가 덜렁 남아있었다. 물론 가족들은 농담인 줄 알았다. 어디 졸업여행이라도 간 거 겠지.하고 태평하게 생각하며 겨울을 보내던 가족들은 화사하게 피는 벚꽃잎과 함께 티비로 괴물을 때려잡는 집안 아들내미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민트색 쫄쫄이를 입은 4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카메라 앞에서 괴물들을 잡아 족치고 있었다. 카메라에 크게 잡힌 아들들의 고간을 보며 어머니는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조상님. 이 년이 뭔 죄를 많이 지었길래 남들 다 보는 뉴스에 아들 고간이 나오는 모습을 봐야 한답니까. 그중 오이카와네 막내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인터뷰를 하며 웃었다.
"안녕하세요 작년 세죠 주장이자 현 세죠전사의 리더 오이카와씨입니다~ 엄마! 나 티비 나와!"
호탕하게 웃는 리더 뒤로는 세명이 아닌 척 하며 온갖 멋진 폼을 잡아대고 있었다. 이런거에 제일 관심없는것 같던 이와이즈미마저 쑥스럽다는 듯 코 밑을 훔치고 있었다. 그래, 쟤가 고질라를 좋아하긴 했지. 온 방안을 고질라로 장식해놓은 아들을 떠올리며 아버지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와이즈미네고 마츠카와네고 온 집안의 전화기가 울렸다. 아이고 애들 테레비에 나온 거 봤어? 라는 말들이 시끄럽게 문자로도 전화로도 울렸다. 일가 친척에게서 동네 사람들에게서 직장 동료들한테서 연락이 왔다. 이젠 다컸다고 듬직하기 그지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아들들이 민트빛 쫄쫄이를 입고 히어로에 취업에 공식 성공을 하던 날, 부모님들은 진심으로 부끄러워하며 진지하게 이사를 고민 했다.
뭐, 부모님의 이런 사정과는 상관없이 세죠전사들은 잘 나갔다. 리더 오이카와의 얼굴만으로도 시선을 끌기 충분한데, 나머지 멤버들도 만만찮게 매력이 상당하다. 심지어 다 다른 분야에서 정점을 찍기까지했다. 쟤보다 내가 꿀릴 수야 없지. 하는 오기와 독기가 체육계 특유의 승부욕이 이뤄낸 쾌거였다. 잘난 만큼 부르는 곳도 많았고, 한 건당 들어오는 돈의 액수가 컸기에 4명의 영웅들은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첫 월급을 받은 날 먹고싶은 만큼 먹고 쓰고싶은만큼 쓰고 기부하고픈데 다 기부를해도 돈이 남아돌았다. 한번 돈의 맛을 안 세죠전사들은 가리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 체력이라면 이미 학창시절 다져놓았기에 별 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돈 돈 돈. 돈이 최고였다.
*
오늘도 변함없이 마을에는 괴물이 출현했다.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툭 튀어나온 눈알을 데룩데룩 굴려대는 모습은 괴기스럽기 짝이 없었다. 울룩불룩 튀어나온 근육이 한번 움직일때마다 존재감을 극명하게 자랑했다. 고릴라를 연구하던 쪽에서 실수로 괴물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탈출해 민가를 습격하였고 사람들은 급히 히어로를 불렀다. 괴기하기 짝이없는 괴물은 몸집은 일반 고릴라의 세배였으며 지능은 사람 수준이었다. 영리하게도 인질을 잡을 줄 알았다. 얼굴과 허리부분을 커다란 손으로 꽉 잡은 채 자신을 공격했다간 이 사람의 머리통을 뽑아버리겠다는 의사를 맘껏 보이고 있었다. 붙잡힌 사람은 이미 기절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축 늘어져 있었다. 어떡해, 어떡해 하며 발만 동동 굴리는 절망적인 분위기에서 민트빛 망토를 휘날리며 저 멀리서 쫄쫄이가 날아왔다.
"아, 정말 너무 느린거 아니야?"
어딘가 발랄한 인질의 목소리에 다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면 어느새 민트 쫄쫄이를 입은 미남이 괴물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고 있었다. 인질이 아니었던 건가? 하고 그 쪽을 쳐다보면짜잔 오이카와씨의 등장입니다☆이 몸의 잠복실력이 이렇게나 뛰어나다구?하고 외치며 윙크를 날리고 있다. 쫄쫄이를 입어도 미남은 미남이다. 요정치고는 사람같은 미남을 바라보며 여성들은 도망치던 발걸음도 멈추고 저마다 손을 흔들며 환호를 보냈다. 그런 리더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 멀리서부터 뛰어온 이와이즈미는 힘을 가득 담아 주먹을 날렸다.
"죽어라!"
괴물에게 하는지 리더에게 하는지 모를 소리와 함께 괴물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아직 손에 잡혀있던 오이카와도 함께 날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으에에엑 하며 굴러가는 리더를 외면하며 멋들어지게 착륙한 부리더 쫄쫄이 옆으로 두 명의 쫄쫄이들이 척 하니 멋들어지게 포즈를 잡으며 섰다. 제 옆으로 온 동료들을 보며 부리더는 씩 웃었다. 때마침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준다. 공들여 빤 망토가 멋들어지게 휘날렸다. 가볍게 휘파람을 불고 사람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쳤다. 다들 무사해 보이네. 다쳐봤자 넘어져서 멍든 것뿐이겠구만. 무사한 사람들을 보며 미소와 함께 남은 세명의 영웅들이 크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