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우시이와오이] 안녕보다 가볍고 안녕보다 무거운
피스틸버스 au. 우시이와오이
안녕보다 가볍고 안녕보다 무거운
by. 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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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어난다. 향기가 코끝에 머무르다 사라진다. 외로움을 가득 품은 향이 폐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이내 곧 연기처럼 스러진다. 향은 사라져도 외로움은 남는다. 사람은 떠나도 꽃은 남는다. 오늘 이와이즈미의 등에는 또 하나의 엉겅퀴가 피었다.
둔부의 익숙한 고통과 함께 일어나자 척추 끝부터 짜르르한 통증이 올라왔다. 버릇처럼 제 옆자리를 쓸어보자 변함없이 차갑다. 알몸 위로 덮여진 이불에는 희미한 다정함이 남아있어 이와이즈미는 한참 이불을 껴안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푹신한 감촉이 품을 가득 채운다. 어젯밤 내내 급히 껴안았던 딱딱한 몸과는 사뭇 다른 감촉이다. 물론 자신은 딱딱한 그 감촉이 더 좋다. 손끝에 일렁이던 근육의 느낌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또 다시 발끝부터 움찔 거리는 감각을 애써 억누르며 뻐근한 몸을 일으켜 겨우겨우 화장실까지 발걸음을 옮기자 어젯밤의 흔적이 그대로 엉덩이서 타고 내려와 허벅지 사이를 타고 흐른다. 찝찝한 그 감촉에 미간이 자동으로 찌푸려진다. 이와이즈미는 커다란 화장실 거울에 슬쩍 제 등을 비추어보았다. 보라빛 꽃이 가시처럼 바짝 꽃잎을 세우고 피어있다.
"꼭 제 주인을 닮았네."
어느새 욕조 가득히 차오른 물을 보고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몸을 담갔다. 따뜻한 온도에 노곤하게 몸이 풀린다. 하아. 저도 모르게 만족스런 한숨이 입 밖으로 나온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수정기를 따라 시야가 아득해진다. 멍한 머릿속은 우시지마를 떠올리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꽃 또는 나무의 꽃말과 같은 삶을 살아가곤 했다. 자신의 등을 덮은 우시지마의 꽃은 엉겅퀴였다. 꽃말은 염세주의. 인간에 대한 불신. 그것이 우시지마의 또 다른 이름이자 삶이었다. 그렇기에 몇 번이나 자신이 좋아한다고 말해도 믿지 못하는 거겠지. 개새끼. 알면서도 욕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서자 때마침 오이카와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울한 자신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목소리는 평소보다 통통 발랄하게 뛰어다닌다. 피곤하다 안 된다 말을 해도 칭얼칭얼 만나자고 떼를 쓰는 목소리에 어쩔 수없이 알았다고 얘기하자 더욱 더 목소리가 방방 뛰어다닌다. 저보다 덩치도 크면서 막내 동생 마냥 어리광을 부리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제법 귀엽기도 했다. 만나면 밥 사라고 해야지. 오이카와의 두둑한 지갑을 얇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와이즈미는 집을 나섰다.
*
"얏호 이와쨩!"
신이 난 듯 이리저리 손을 흔드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평온하게 발을 옮겼다. 방향은 오이카와가 있는 곳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저렇게 여자들이 득실거리는 틈을 뚫고 가기는 무리였다. 특히 오늘같은 날은 더욱 더. 가뜩이나 온 몸이 쑤시는데 가방에 허리라도 맞았다가는 큰일 난다. 저런 사람 모른다는 듯 일정하고도 평온하게 도망가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는 짙게 미소를 지었다. 안되지 안 돼. 도망가는 건.
이리저리 미안하다고 손을 모아 사과하면서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금세 시야를 꽉 채우는 뾰족뾰족한 뒷모습에 깃털로 누가 장난을 치는 것 마냥 심장 한쪽이 간질간질 거린다.
"이와쨩!"
덥썩 목에 매달리자 휘청거리면서도 용케 넘어지지는 않는다. 퍽하고 날라 오는 주먹에 오이카와가 옆구리를 비틀자 쌤통이라는 듯 이와이즈미가 코웃음을 친다.
"우시와카쨩 만나고 왔나봐?"
"어떻게 알았냐?"
"여기 여기."
오이카와는 가볍게 손끝으로 이와이즈미의 목 뒤를 눌렀다. 옷깃에 가려져 보일 듯 말듯 보라빛 꽃잎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전에는 없던 꽃이었다. 씁쓸하게 그것을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보는 기색이 느껴지자 금새 표정을 바꾸곤 저기 가보자! 하고 팔을 잡아끌었다. 지금은 자신의 기분을 살피기 보다는 이와이즈미의 기분을 띄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시지마를 만난 날이면 한없이 이불속에 파고 들어가 우울해지는 그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우울한 것은 싫지만 이와이즈미가 우울한 것은 더 싫은 오이카와였다. 그렇기에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우울할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울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얇게 겨우 버티던 둑이 무너지는 일은 금방이었다.
일주일 뒤 우시지마와 데이트가 있다던 이와이즈미의 둑은 그렇게 터지고 말았다.
"개새끼."
주륵주륵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이와이즈미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두 시간의 기다림의 결과였다. 비참하다. 아니 한심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이 자리까지 와서 기다린 자신이나, 자신을 이렇게 만드는 우시지마나. 둘 다 한심하긴 매한가지였다. 이와이즈미는 그 자리에서 단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그동안 억누르고 또 억눌렀던 것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색색의 우산을 든 사람들이 제 곁을 스쳐지나간다. 그중에는 이상하다는 듯 힐끗 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뭘 보냐고 소리 지를 기운도 없었다. 볼 테면 보고 비웃을 테면 맘껏 비웃으라지. 자신이 봐도 비웃을 만 했다.
우시지마는 몇 번이고 이와이즈미를 시험했다. 이래도 너는 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너의 사랑이 진실인지. 몇 번이고 물어보는 듯 한 그 태도에 이와이즈미는 진저리 치면서도 결국 그 시험에 들고는 했다.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더 이상 우시지마는 자신을 믿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어차피 하고 있지도 않지만. 어쩌면 자신의 헛된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날 믿어줄 거야. 지금이라면 시도정도는 하지 않을까. 하는 그 생각들은 불빛을 보고 타오르는 날벌레보다도 덧없는 것이었다.
"여기서 뭐해 이와쨩."
조금 타박하는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비가 그친다. 젖은 얼굴을 들자 오이카와가 우산을 쓰고 걱정으로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제 앞에 서있었다. 오이카와. 날숨과 함께 흩어지는 그의 이름이 춥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팔을 잡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곳과는 꽤 가까운 거리였기에 금방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다면 감기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이즈미의 팔목을 조금 더 단단히 잡고 그가 넘어지지 않게 느리게 걸음을 떼었다. 원인은 분명 우시지마겠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런 건.
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물에 이와이즈미를 푹 담그고 젖은 그의 옷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두툼한 이불을 꺼냈다. 대충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고 있자 이와이즈미가 화장실에서 나온다. 우울함에 잠기기 시작한 듯 눈은 깊게 가라앉아있다.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드라이기로 완전히 말리고 침대 안으로 밀어 넣자 꾸물거리며 일어난다.
"이와쨩, 감기 걸려. 그냥 누워있어."
"나 핸드폰 어디 있어?"
"응? 아, 여기."
침대 맡 테이블에 놔둔 그의 소지품 중 핸드폰을 찾아 건네자 무미건조한 얼굴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아마 우시지마겠지. 몇 마디 나누고 더 깊은 우울함에 빠지고. 후회하고 다시 또 그를 사랑할 이와이즈미를 알기에 오이카와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여보세요. 하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긴장한 듯 살짝 숨을 들이 킨 이와이즈미는 이윽고 한숨고도 같은 고백을 토해냈다.
"좋아해."
'....'
"좋아해 우시지마. 좋아한다고 개자식아."
'.....이와이즈미.'
"좋아해! 뭐라고 말 좀 해봐 이 개새끼야! 넌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내가 니 장난감으로 보여? 우시지마 이 개 같은 새끼야 말 좀 해보라고!"
'그런 말 할 거면 끊겠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 어떠한 대답도 주지 않는 우시지마였다. 결국 이와이즈미는 포기하고 말았다. 지쳤다. 아무리 애정을 퍼부어줘도 상대는 믿지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이건 아니다. 벽을 보고 사랑 한다 외쳐도 이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적어도 그건 상상이라도 맘껏 하게 해주니까.
"이럴 거면 헤어지는 게 나을 거 같다. 끊는다."
이와이즈미는 결국 전화를 끊었다. 눈치를 보던 오이카와가 슬쩍 일어나며 나도 샤워해야겠다. 하고 방을 나선다.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소꿉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전에 우시지마에 대한 서러움이 먼저 밀려왔다. 이래 뵈도 5년 가까이 사귄 연인이었다. 그 긴 시간동안 좋아 한다 사랑 한다. 입이 닳도록 전했다. 그래도 믿지 않아서 꽃을 피웠다. 제 등 한가득 엉겅퀴를 피워냈다. 자신의 나무가 엉겅퀴 나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수많은 꽃을 피워냈다. 근데도 우시지마는 자신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 제 사랑을 거짓이라 치부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더 믿음을 애정을 쏟아 부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더 상처를 받아야 조그마한, 쌀알만한 믿음이 생겨날까. 이 짓거리를 더 반복하기엔 이미 이와이즈미는 너무 지쳐있었다.
"헤어질까."
"그거 진심이야 이와쨩?"
어느새 다 씼은 건지 오이카와가 머리를 털며 옆에 앉았다.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이와이즈미를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재차 물었다. 그 말 진심이냐고. 이와이즈미는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지고 싶다는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한 진심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상처받은 만큼 우시지마를 상처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방법 중 이별이 가장 크고 적합한 방법이라면 그걸 택할 뿐이었다. 한마디로 헤어지는 것이 우시지마를 상처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내뱉은 말이었다.
이와이즈미의 의중을 살펴보듯 가늘게 눈을 뜨고 살펴보던 오이카와는 방구석 저 멀리 수건을 던졌다. 그리고 조금 더 이와이즈미 겉으로 다가왔다.
"그럼 나랑 자."
툭하고 내뱉은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쳐다보자 정작 그 말을 한 장본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웃통을 벗고 있다. 우시와카쨩한테 상처주려고 싶은 거 아냐? 그럼 날 이용해도 좋아. 어차피 나 이와쨩 좋아하고. 어느새 상의를 다 벗은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쏘아붙였다. 채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듯 갈팡질팡 눈동자만을 굴리는 이와이즈미를 천천히 뒤로 밀어 침대에 눕혔다. 혼란스러워서인지 아니면 단단히 마음을 굳힌 건지 이와이즈미는 그 어떠한 반항도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제 밑에 누워있는 이와이즈미를 보다가 오이카와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검은 눈동자가 제 갈색에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 그대로 얼굴을 내려 입을 맞췄다. 우시지마가 아닌 타인의 입술에도 불구하고 이와이즈미는 가만히 있었다.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듯 한 번 두 번 스치듯 닿던 입술은 이윽고 포근하게 눌리며 맞닿는다. 음미하듯 몇 번 우물거리던 입안에서 혀가 느리게 빠져나와 이와이즈미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톡 톡 앞니를 가볍게 건들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혀를 맞붙였다. 움찔 하더니 달큰한 숨이 제 안으로 넘어온다.
첫 키스였다.
고개를 틀어가며 어루만지듯 위로하듯 키스는 이어졌다. 숨이 찬다고 느껴질 때쯤 입술이 떨어지고 그와 동시에 조금 높은 온도를 가진 손이 셔츠 안으로 들어와 등을 어루만진다. 그 순간 이와이즈미는 파드득 하고 몸을 움츠렸다. 애무를 오이카와의 손길을 느낀 순간 지금 자신이 무얼 하려는지 그제야 제대로 파악이 됐다. 뻣뻣하게 굳은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 상태로 상대방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방안에서 움직이는 거라곤 시계바늘 하나였다. 똑딱거리는 소리 외에는 숨소리조차 쉬이 나지 않았다. 방안 가득 내려앉은 적막을 깬 건 오이카와였다.
"겁나?"
"너 후회할거야. 분명. "
"그럴 리가 없잖아. 무려 이와쨩이 상대인데. 후회는 이와쨩이 하는 게 아니고?"
"....."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이와쨩.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의 생각인 냥 투영하지 말고."
꾸짖는 목소리에 이와이즈미는 눈을 감았다. 오이카와에게 미안했다. 고작 제 분풀이 하나 때문에 이곳까지 휘말린 오이카와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차마 눈을 떠 그를 바라볼 수 없었다. 우시지마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너도 그렇게 개새끼 짓을 하는데 헤어진 마당에 나라고 못할거냐 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을 좋아하는 오이카와를 이용했다. 이건 그의 사랑을 기만한 것 과 동시에 그를 모욕하는 행위였다. 차라리 그의 말대로 한 번 자버리면 그랬다면. 자신의 등에 오이카와의 꽃을 피워냈다면 그걸 평생도록 지고 살았다면 그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겅퀴만 가득 피우고싶은게 제 마음이라 차마 오이카와를 껴안을 수도 먼저 입맞출 수도 없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이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입술만 세게 깨무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을 보며 오이카와는 그 입에 제 손가락 하나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흉져. 화를 내거나 아니면 적어도 싸늘하게 굳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오이카와의 목소리는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눈동자에 작은 마찰음과 함께 부드럽게 입술이 내려앉았다 떨어진다. 언제까지 감고 있을 거야 이와쨩. 놀리는 듯 하면서도 애정을 그득 담은 목소리에 용기를 얻어 천천히 눈을 뜨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오이카와의 얼굴이 보인다. 두 눈을 온전히 뜨자 잘했다는 듯 뺨에도 조심스레 입을 맞춘다. 겁먹지 말라는 듯 천천히 물러난 후에 이와이즈미도 일으켜 세웠다.
"차라리 내 꽃이 프리지아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 꽃말처럼 단지 우정으로만 널 바라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치 이와쨩? 그렇다면 너도 나도 아프지 않았을 텐데."
활짝 웃는 얼굴과는 달리 말의 내용은 안타까워서 이와이즈미는 또 한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목구멍을 무언가로 꽉 막은 듯 울렁거려서 제대로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웅얼거리는 그 목소리를 용케도 알아차린 오이카와는 괜찮다며 웃었다. 위로하듯 꼭 안아주는 그 품이 서러워서 이와이즈미는 계속해서 미안하다 중얼거렸다. 일정한 제 심장소리와는 달리 쿵쿵 하고 세게 뛰는 오이카와의 심장소리가 아팠다.
"입만 맞출게."
이와이즈미의 상의를 천천히 벗겨낸 오이카와가 허락을 구하듯 물었다. 작게 끄덕이는 고개 짓을 보고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몸을 돌렸다. 촘촘하고도 날렵하게 짜인 근육 사이 척추를 따라 나무 하나가 곧게 자라있었다. 진짜 주인을 꼭 닮았다니까. 아니 이와쨩이 이 나무를 닮은 건가. 푸스스하고 웃은 오이카와는 소중하다는 듯 나무에 입을 맞췄다. 나무에 붉은 꽃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쓸쓸한 보라 빛 꽃만이 온통 등에 피어나있다. 나뭇가지를 따라 빽빽하게 꽃을 피워낸 등은 언뜻 보면 멍이 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무나도 소중해 감히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나무다. 자신이 스테먼이 될 지 피스틸이 될지도 모르던 그때부터 그를 사랑했다.
입맞춤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자, 이젠 마음을 접고 다시 친구 오이카와로 돌아갈 시간이야.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입술을 가져갔던 오이카와는 다시 이와이즈미의 몸을 앞으로 돌렸다.
"이와쨩, 우시와카쨩한테 제대로 복수 한 번 해볼까?"
"됐어. 이제 와서 무슨."
"진짜 헤어질 거야?"
"....헤어질 거야."
거짓말쟁이.
그 말은 제 목뒤로 꿀꺽 삼킨 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얼굴 위로 셔츠를 씌웠다. 얼른 입어, 이와쨩! 오이카와씨에게 좋은 생각이 있다고! 자신도 냉큼 상의를 입으며 오이카와는 신이 난 듯 목소리를 높이 띄웠다. 축 처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오이카와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와이즈미는 멍청카와 말을 믿어야 하나. 하고 툭 뱉으며 장단을 맞췄다. 삐쭉 입술을 내밀며 툴툴 거리는 오이카와 덕에 조금은 기운이 났다.
*
"다 챙겼어?"
"어."
"진짜? 옷은, 지갑은, 충전기는? 여분 옷도 챙겼어?"
"니가 내 엄마냐?"
"엑, 그거 내 대사인데. 함부로 가져가지 말아줄래 이와쨩?"
커다란 캐리어와 배낭에 크로스백까지 단단히 챙긴 이와이즈미의 모습은 어디 여행이라도 멀리 떠나는 사람 같기도 하고 가출하는 사람의 모양새 같기도 하다. 사실, 둘 다였다. 우시지마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 저 멀리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모든 계획은 오이카와가 짰다. 이와쨩 바다 좋아하니까, 생각도 정리할 겸 짧게 바다로 여행 갔다오는 건 어때? 물론 우시와카쨩한테는 비밀로. 실실 웃으며 말하는 오이카와가 어이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솔깃했다. 어차피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우시지마였기에 짐을 싸는 것은 수월했다. 이와쨩은 짐만 싸고 몇 시까지 어디로 나오면 돼. 라는 말을 믿고 나오자 버스표를 팔랑팔랑 흔드는 오이카와가 있었다.
"잘 갔다 와 이와쨩! 사진도 많이 찍고 좋은 것도 많이 보고, 맛난 것도 많이 먹고."
"어어, 갈게."
버스가 오자 카메라를 목에 걸어주며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등을 떠밀었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그 카메라가 오이카와가 제일 아끼는 카메라라는 것을 깨달았다. 돌려주려 내리려 하자 이미 들어오는 사람들로 인해 입구가 꽉 막혀 움직이는 것 자체가 민폐일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이와이즈미는 다시 자리에 앉고 창밖에 보이는 오이카와에게 인상을 썼다.
[인상 쓰면 얼굴에 주름 생겨 이와쨩! 스마일~~ 스마일~ : ) ]
뭘 그리 툭툭 쓰나 했더니 이 문자를 보내려고 그렇게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렸나보다. 일부러 인상을 더 찌푸리자 오이카와도 따라 인상을 찌푸리다 이상한 표정을 만들어 보인다. 자칭 타칭 미남이라는 놈이 그런 표정해도 괜찮은거냐? 입밖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고 실실 내보이자 그제서야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을 멈추고 따라서 환히 웃는다. 버스가 출발하려는 기색이 보이자 저마다 가족이나 친구들을 향해 사람들이 창 밖으로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와이즈미도 그들을 따라 창 밖의 오이카와에게 손을 흔들었다. 열심히 손을 흔드는 자신과는 달리 오이카와는 팔짱을 낀 채 싱글벙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얄미워서 손을 거둘까 싶다가도 이렇게 떨어지는 것도 처음이라 오이카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건넸다. 분명 연락할 수 있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떠나고 오이카와는 남는 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딘가로 멀리 여행을 가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안녕 오이카와.
입모양으로 뻐끔뻐끔 인사를 건넨 후에야 이와이즈미는 손을 거두고 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었다. 목적지까지는 한참 남았으니 그동안 좀 자도 괜찮을 것이다.
이와이즈미를 태운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오이카와는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도로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이미 멀리 떠나버린 버스가 남긴 탁한 기름 냄새 뿐이었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또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하늘하늘 손은 좌우로 흔들렸다.
폐부 가득히 숨을 들이 키고 크게 소리를 지르려다가 잠시 머뭇거린 그는 이윽고 그 숨을 꿀꺽 삼켰다. 앞으로 이 숨은 계속해서 제 몸 속을 피와 함께 손끝부터 발끝 그리고 머릿속까지 돌아다니겠지. 이 마을에서 마지막으로 그와 나눈 숨이다. 쉽게 뱉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쩌렁쩌렁 소리치는 대신 입모양으로 크게 외쳤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이 와 쨩 .'
오이카와는 몇 번이고 소리 없이 이와쨩을 불렀다.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이와쨩. 이 세 글자가 온전히 제 사랑이었고 마음이었다. 그 세 글자에 제 모든 절절함을 설렘을 쏟아 부었다.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사람.
잘 가.
안녕.
이 안녕은 잘 가라는 의미가 아닌 다시 돌아오란 의미야. 네 여행의 끝은 여기였으면 좋겠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덧없이 빌어보는 소원이었다. 이와이즈미의 끝은 분명 자신이 아닐 것이다. 그러라고 그 편지를 우시지마에게 보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러니까. 만약 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몇 번이고 이와이즈미에게 손을 흔들 것이다.
안녕, 이와쨩.
*
집 앞 우편함에는 발신인이 적혀있지 않은 편지 하나가 들어있었다. 단지 우시지마 와카토시님에게. 라고 정갈하게 적힌 글씨가 다였다. 우시지마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집 안으로 편지를 들고 왔다. 편한 소파위에 앉자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사람들은 징그럽다. 끔찍하다. 모두 웃으며 거짓을 말하고 속에선 칼을 갈고 있다. 구밀복검. 이 얼마나 역겹고도 이 사회를 잘 표현한 말인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떠올리다가 우시지마는 구역질이 밀려와 입을 손으로 막고 숨을 고르게 쉬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어째서 넌 나를.
잠시 이와이즈미의 생각을 하던 우시지마는 손에 들려있던 편지의 존재를 깨닫고 열어보았다. 편지 안에는 낯익은 나무의 사진과 그 위에 작은 글씨로 무언가 써져있었다. 푸른 이파리들이 가득 돋은 나무는 생생한 활기를 띄고 있었지만 어딘가 애처로워 보이는 모양새였다. 식물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우시지마였지만 왠지 모르게 이 사진 속 나무에는 자꾸만 눈길이 갔다. 처음 보는 나무였지만 눈에 익은 모양새였다. 이와이즈미의 나무였다. 제 밑에서 이리저리 흔들릴 때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마냥 떨리는 것이 꼭 이 나무와 같았다. 그러고 보니 활기를 띄는 것도 어딘가 애처로워 보이는 것도 꼭 이와이즈미와 닮아있었다. 아, 네 나무인가 이게.
조금 더 깊이 눈에 담아두곤 천천히 나무의 밑에 적힌 글귀를 읽었다. 나무의 꽃말 같았다. 나무의 꽃말이라는 것은 이와이즈미의 삶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당신을 사랑했지만 당신은 알지 못했어요.'
사진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와이즈미가 좋아해. 좀 믿어봐 개자식아. 라고 말했던 것이 불현듯 생각났다. 그때 자신은 뭐라 했더라. 분명 좋아한다고 돌려주진 않았다. 자신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를 모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말이다. 아, 생각났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덤덤하게 하지만 어딘가 애절하게 좋아 한다 고백하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자신은 믿지 않는다고 했었다. 어차피 너도 밖에 그 사람들과 똑같지 않냐고. 너도 겉과 속이 다른 게 분명한데 왜 거짓말을 하냐고 그를 비난했었다.
실은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참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그게 본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만약 그도 다른 사람들과 같다면 자신에게 보여준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야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떠날 때 어차피 너도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하고 조금이라도 덜 실망하고 덜 무너져 내릴테니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결국 이런 사람이었다. 끝없이 사람들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고 혼자 가시를 세우는. 그게 엉겅퀴의 삶이었다.
근데, 이와이즈미도 그의 꽃말대로의 삶을 살고 있다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그의 삶이라면. 그리고 그 사랑하는 자에게 절대 믿음을 받지 못한데도 끝없이 사랑하는 것이 그의 삶이라면 자신에 대한 이와이즈미의 사랑도 온전한 진심이지 않을까. 절대 배신하지 않고 믿음을 깨트리지도 않는 불신 투성이의 제 삶에 온전한 믿음이 되지 않을까.
급히 이와이즈미를 찾았지만 집은 텅 빈지 오래였다. '지쳤어.' 언젠가 이와이즈미가 속삭이듯 중얼거린 말이 귓가를 스치듯 지나간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영원히 자신의 곁에 있어주겠다는 말은 아니다. 이와이즈미도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 마음만 간직한 채 자신의 곁을 떠나버렸을 수 도 있다.
그러면 어쩌지? 이제야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는데 그 사람이 곁에 없다면 어떡하지? 절망이 삽시간에 발끝에서부터 차올라 머리끝까지 덮었다. 턱하고 숨이 막혀온다. 숨을 쉬려 크게 입을 벌려보아도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절망뿐이다. 더듬더듬 움직이는 손에 걸렸는지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커다란 젤리 같던 절망이 목 아래까지 쑥하고 내려간다. 핸드폰을 키는 손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적은 목록 중 이와이즈미를 찾아낸 우시지마는 목을 가다듬었다. 무어라 전해야 될지 아직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빠르게 달리는 차창 밖으로 거리가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이윽고 바다의 짠 내가 콧속을 덮친다. 짭쪼름 하면서도 습한 공기가 넘실댄다. 오랜만에 와보는 바다였다. 이제 곧 종점입니다! 내리실 분들은 미리미리 짐 챙기세요! 마이크를 잡고 쩌렁쩌렁 큰 목소리로 알려주는 버스 기사의 목소리에 따라 사람들이 저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이윽고 버스 문이 열리고 아까 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습한 공기와 짠 내음이 확 하고 다가온다. 그 묘한 공기를 들이키며 이와이즈미도 커다란 캐리어와 배낭을 챙기고 사람들을 따라 내렸다.
오이카와가 미리 숙소를 다 잡아주었기에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는 그림이나 사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무심코 카메라를 들어 찬란히 빛나는 그 광경을 담았다. 렌즈를 타고 자신의 눈동자에도 그 눈부심이 스며들었는지 길바닥이며 건물들이며 온통 세상이 반짝반짝 눈이 부셔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려야 했다.
핸드폰으로도 몇 장 찍어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두었다. 핸드폰을 키는 순간 푸르면서도 어딘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예쁘다. 해당화로 태어났음 좋았을텐데. 제가 품은 나무나 꽃의 영향을 많이 받는 몸이라 바다 쪽에서 자라는 식물이 아닌 이상 그 근처에 사는 것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왔다. 결국 바다 근처에 사는 자들은 대부분이 해당화나 목련이었다. 오죽하면 해당화 마을이 바닷가 근처 마다 있을 정도였으니 말은 다 한 셈이었다. 만약 자신이 해당화나 목련 같은 꽃이었다면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습하고도 짠 공기를 가득 들이키며 아침 햇살을 가득 받은 바다 위를 산책할 것이다.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 위를 걷자 버석거리는 하얀 모래들이 발아래를 간지럽힌다. 어릴 때 이후에는 바다에 온 게 처음이라 발 밑 감촉이 이상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워서 그럴지도 모른다. 바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파도가 철썩 거리며 발등을 덮는다.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휙 몰려왔던 파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물러간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자 마음이 잔잔해진다. 이래서 사람이 바다를 찾나보다 싶었다.
한참을 파도가 철썩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모래사장 위를 걷다가 돌아온 것은 저 끝에 놔둔 짐을 도둑맞을 지도 모fms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이 짐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가방 밑과 발바닥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어내고 신발을 발에 꿰어 신은 채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를 좋아하는 이와이즈미를 배려해서인지 숙소는 바다가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이와이즈미님 예약 확인 되셨습니다. 방 키 여기 있고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이쪽으로 전화주시면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방은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커튼을 열어두면 시시각각 다른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직원의 설명 말대로 정말 모든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마침 노을이 지며 본래의 푸른색에서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해가 지는 방향은 주황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것과 달리 그 반대쪽은 벌써 어둠이 제 치마 자락을 드리웠는지 검푸른 빛이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오묘한 모습에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하던 이와이즈미를 부른 것은 조그만 알람 소리였다. 생각보다 짧은 일몰에 아쉬워하며 어둡게 반짝거리는 바다에서 눈을 돌리자 어느새 제 방에도 어둠이 들어앉아 있었다.
쯧, 가볍게 혀를 차고 불을 키자 방안이 환해진다. 크로스백에 넣어둔 핸드폰을 찾으려 뒤적거리다 아까 방안에 들어오면서 침대에 던져둔 것이 생각났다. 어차피 오이카와일텐데 나중에 확인할까. 그래도 이렇게 숙소며 교통이며 여행을 준비해준 녀석인데 고맙다는 말이라도 제대로 전해야 될 것 같았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손끝에 딱딱한 것이 툭하고 닿는 게 느껴진다. 조금 더 손을 길게 뻗자 핸드폰이 잡힌다.
어떤 문자를 보냈나 보자. 하고 킨 핸드폰은 뜻밖의 인물의 이름이 떠있었다. 환한 액정 한 가운데 우시지마 와카토시라는 글자가 둥둥 떠다닌다. 우시지마가 자신에게 문자를 보낸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괜히 심장이 떨리고 초조해진다. 확인하고 싶으면서도 확인하기 싫은 모순적인 마음이 생긴다.
어떻게 할까. 이걸 봐야할까 말아야할까. 헤어지자는 문자면 어떡하지. 진짜 헤어져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차라리 보지 말고 모른 척 그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리저리 흔들리던 마음을 이긴 것은 결국 궁금증이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하필 자신이 그의 곁을 떠났을 때. 그것도 음성 메시지를.
떨리는 손길로 최대한 음량을 낮춘 채 이와이즈미는 문자를 열었다. 정말 헤어지자는 말이면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근데 그의 목소리는 듣고 싶다. 차라리 아무 말도 녹음되지 않아있음 좋겠다. 실수로 잘못 눌러 보내진 그런 거면 좋겠다. 이불 안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환한 방과는 달리 캄캄한 제 동굴 안에서 이와이즈미는 음성 메시지를 켰다. 녹음된 음성메시지에는 단 한 문장만이 들어있었다.
'기다리겠다.'
몇 번을 들어도 헤어지자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딱 저 다섯 글자가 전부였다. 그 무심하고도 덤덤한 한 마디가 꼭 제 주인을 닮아서, 또 그 안에 숨겨진 감정이, 사랑이 와 닿아서 이와이즈미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나 사랑을 주던 법을 모르던 그가 서투르게나마 이와이즈미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었다. 엉겅퀴의 삶을 고스란히 살아가던 우시지마가 드디어 믿음을 표했다. 그게 너무나도 기쁘고 또 기뻐서 이와이즈미는 웃었다. 눈물이 뺨을 흠뻑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우시지마, 네 목소리에서 따뜻한 꽃 내음이 나.
소람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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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와쨩이 죽는게 결말이었습니다. 나무를 꽉 채울 정도로 스테먼의 꽃이 피면 피스틸이 죽어버린다고 해요.
우시지마의 엉겅퀴가 이와이즈미의 정향나무를 가득 채우고, 이와쨩은 여행을 간 후 바다 위에서 쓸쓸히 하나의 나무가 되어 말라죽어 버립니다. 우시지마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결국 이와이즈미도 제 곁을 떠난다고 그럴줄 알았다며 인간에 대한 불신만 더 깊어져요. 이와이즈미의 꽃말처럼 '당신을 사랑했지만 당신은 결국 알지 못했어' 가 되는 거죠. 모래사장위 말라 비틀어진 작은 나무는 오이카와가 가져와 푸른 산에 잘 묻어줍니다. 오이카와는 끝까지 이와이즈미를 사랑하고, 그 누구와도 연애를 하지 않아요. 그리고 우시지마에게는 이와이즈미에 대해 절대 알리지 않습니다. 그게 이와이즈미가 바란 거니까요.
이게 본 결말 이었습니다만, 너무 셋이 불쌍해서 오이카와 혼자만 불쌍해지는걸로....8ㅅ8....(오이카와: ??
둘은 꽃말대로 살아가는 삶이었지만, 그 꽃말을 이겨내고 해피엔딩을 맞이 했으면 좋겠어요! 원래의 결말과 고친 해피엔딩, 두 결말 중 어떤것이 소람님 맘에 들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쁘게 봐주세요 엉엉.
그리고 제목이 안녕보다 가볍고 안녕보다 무거운 인데, 안녕이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하는 인사잖아요. 그래서 저마다 다른 오이카와의 안녕, 우시지마의 안녕, 이와이즈미의 안녕. 이 세 가지를 전부 표현하고 싶었는데, 미숙한 솜씨라 잘 드러나지 않은듯 해서 걱정되네요. 헤어짐의 인사가 아닌 다시 돌아오라는, 그리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그 안녕을 제대로 표현한건 오이카와씨 뿐이야 8ㅅ8
마지막으로 늦어져서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 결말 다 뜯어고치는건 둘째치고 손이 느린, 귀차니즘인 저를 매우 혼내세여 8ㅁ8 문체 바꾸는 중이라 막 띄엄띄엄 읽어졌을 텐데 끝까지 봐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사랑해요 소람쨔마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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