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이이와] merman
http://youtu.be/ai7dqAGh4Z8
[oiiwa]
merman
written by MARU
따스하게 내려쬐는 햇빛을 맞으며 이와이즈미는 이불에 폭 쌓여 뒹굴거렸다. 어머니는 이리저리 햇빛내음이 가득 나는 이불에 뒹굴거리는 이와이즈미를 품으로 폭 가득 껴안아주었다. 어머니에게선 부드러운 물내음이 났다. 엄마~ 하고 어리광을 부리듯 부르자 응, 하고 다정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게 너무나도 좋아서 이와이즈미는 몇번이고 엄마, 엄마 하고 노래하듯 어머니를 불렀다. 병아리마냥 삐약대는 아들이 사랑스러워 그녀는 품에 또 한번 가득 안았다. 이와이미에게서도 그의 어머니와 똑닮은 물내음이 났다. 저와 닮은 그 내음이 한번 더 제 핏줄인것을 알리는 것 같아 그녀는 슬쩍 미소 지었다. 애정을 그득 담은 눈을 바라보다 이와이즈미는 어머니의 옷깃을 슬쩍 잡아당겼다. 저들만 아는 이야기를 해달라는 작은 신호였다. 옷깃을 꼭 잡은 고사리손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천천히 예전에도 몇번이고 했던 얘기를 천천히 꺼냈다. 그 이야기는 아주 동화같이 사랑스럽고도 어여쁜 비밀이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늘 같았다.
이건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되는 비밀이야. 알겠지?
이와이즈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어머니는 비밀에 대해 얘기해주곤 했다. 이와이즈미가 말을 알아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어머니는 제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다락방에서 조근조근 저희만의 비밀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얘기했을 지도 모른다. 마치 하나의 동화같은 비밀을 어머니는 몇번이고 몇번이고 제게 해주었다.
인어공주님 이야기를 아니? 우리는 그 공주님의 후손이란다.
허무맹랑한 말이었지만 거짓이라 의심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머니의 목소리와 눈빛은 진지했다. 멋지지? 하고 빙그레 웃는 어머니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워서 이와이즈미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몇번이고 눈을 가늘게 떠야만 했다. 응. 하고 어리광을 부리듯 대답하면 어머니는 품에 그를 고쳐 안으며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그 얘기를 다시 한번 더 해주었다. 우린 인어 공주님의 후손이야.
"공주님이 사랑하는 왕자님을 위해 물거품이 된 것처럼 우리도 소중한 사람을 위해 물거품이 될 수 있단다."
"아무때나?"
"아무때나."
"그냥 물거품이 되버리는거야?"
"응."
"물거품이 되면 사라져버리잖아. 무서워."
"대신 소중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데? 엄마는 하지메를 위해서라면 물거품이 될거야."
"그럼 나도 엄마를 위해 물거품이 될게!"
"정말? 엄마 편 들어줄거야? 근데 아들,어떡하지? 아들이 엄마 편만 들어서 아빠 서운하겠다."
슬쩍 장난을 치자 이와이즈미는 입을 턱하고 막으며 당황하였다. 소원 두 번은 안돼? 안돼. 그럼 아빠는 어떡하지..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고민하는 아들을 보며 그녀는 밝게 웃었다. 엄마랑 아빠를 위해 물거품이 되지 않아도 돼. 나중에 더 소중한 사람을 위해 물거품이 되어주렴.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비밀이니까 절대 토오루한테도 말하면 안돼. 알았지? 비밀을 말하는 순간 물거품이 되어서 사라져버릴거야.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소원을 빌어야해. 알았지? 단 하나뿐인 소원이니까. 어머니의 말에 이와이즈미는 다시 한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귓가에 장난스럽게 하지메쨩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안돼. 라고 속삭이듯 입밖으로 뱉었다. 오이카와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비밀은 저와 어머니만의 것이었다.
"응 아무한테도 얘기안할게."
몇번이고 했던 다짐을 다시 한번 더 하자 어머니는 기특하다는 듯 이와이즈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물내음 만큼이나 부드럽게 웃던 어머니는 천천히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런 어머니를 붙잡으려 손을 허우적 거렸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막만한 손가락들이 물거품 사이를 헤집으며 애써 잡으려 웅크렸다.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급작스럽게 세계가 흔들리고 다시 눈을 세게 감았다 뜨면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손을 들어 눈앞에 펼쳐보았다. 남자답게 마디가 불거진 커다란 손이 눈 앞에서 어린애들마냥 잼잼 시늉을 한다. 익숙한 손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릴적의 꿈을 꿨다고 생각하며 이와이즈미는 기지개를 켰다.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핸드폰을 키자 몇십통의 부재중전화와 문자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대부분이 오이카와였다. '천재들 재수없어!' 같은 내용으로 도배되어있는 문자들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가볍게 삭제 버튼을 눌렀다. 어차피 만나면 또 칭얼칭얼 거리며 비슷한 불만을 쏟아낼테니 문자 정도는 보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오이카와라는 녀석은 그랬다. 제가 좋아하지만 짜증나는 녀석.
오이카와는 어렸을 적 부터 비밀이 생기면 곧장 자신에게 얘기를 하곤 했다. 저기 커다란 사슴벌레가 있는데 이와쨩한테만 말해주는거야! 사실 난 나나쨩이 싫어, 나보고 맨날 소꿉놀이하재. 난 이와쨩이랑 노는게 훨씬 좋아. 이와쨩만 알고 있어야 돼. 선배한테 고백받았어. 이와쨩한테만 얘기하는거야.
이와쨩이 제일 소중하니까 이와쨩한테만 말해주는거야! 하고 예쁘게 눈을 접으며 귀에 소근소근 말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좋아서 이와이즈미도 몇번이고 자신의 비밀을 말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혔었다. 허나 이건 저와 어머니만의 비밀이었었기에 조개처럼 꾹 입을 다문채 오이카와의 말에 응,응 하고 대답만 했었다. 사실 비밀을 말하고 싶은 충동보다는 속닥속닥 닿는 그 숨결이 간지러워서 오이카와를 저 멀리 밀어내고픈 충동이 더 강했다. 귀에 속삭이고는 씩 웃는 그 얼굴이 너무 간지러워서 이와이즈미는 종종 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했다.
모든 비밀을 이와이즈미에게 속닥속닥 말하고 다니던 오이카와가 입을 다문 것은 카케야마가 배구부에 들어온 이후 였다. 제 뒤를 바짝 쫓아오는 천재를 보며 오이카와는 또다른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우시지마로도 벅찼던 오이카와에게 카케야마의 존재는 발밑의 수렁과도 같았다. 오이카와는 파도에 부숴져버린 배처럼 침몰해갔다. 노력으로도 이길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은 오이카와라는 화려한 배를 산산조각 내고야 말았다.
배가 망가지면 고치면 된다. 더 화려하게 더 튼튼하게.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면 건져내면 된다. 그럼 침몰한 배도 사람도 다시 바다 위를 항해할 수 있다. 오이카와가 카케야마를 때리려는 손을 막으며 이와이즈미는 깨달아버렸다. 지금 자신이 오이카와를 막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바로 오이카와를 위한 거였다. 카케야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다치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다만 오이카와의 선수 생활에 흠집이 나서는 안된다. 그 짧은 순간에 든 생각들을 정리해보면 결국 그거였다. 제 안에서 오이카와가 매우 소중하다는 것. 이와이즈미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제 소중한 사람이 오이카와라는 게 분하고 오이카와가 아무것도 모른 채 가라앉는게 분해서 이와이즈미는 그대로 머리를 들이박았다. 붉게 달아오른 이마를 한 채로 씩씩거리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적이 된 거같아!"
이제서야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는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콧방귀를 풍 뀌었다. 그럼 이제까지 무적이 아니라고 생각한거야? 멍청한 놈. 코피자국이 길게 난 채로 헤실헤실 웃는 오이카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제 옷으로 그의 얼굴을 훔쳤다. 이런 놈 어디가 잘생겼다고 좋아하는거지.
그 뒤 오이카와는 천재의 재능에 짓눌리며 숨막혀 하지 않았다. 타고난 센스와 노력을 더욱 더 갈고 닦을 뿐이었다.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오이카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슬쩍 웃었다. 그래 저게 오이카와지. 천재마저 압도하는 존재감. 천재인 우시지마도 카케야마도 돌아보게 만드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마음의 짐을 벗어던진 그는 더 자유로웠고 빛이 났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라는 침몰한 배를 더 화려하게 수리해냈고 어지간한 파도로는 그 배를 흔들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재기한 오이카와는 다시 예전처럼 이와이즈미의 귀에 비밀을 하나 둘씩 속삭이기시작했다. 대부분은 쟤 싫어, 천재 싫어. 였지만.
이와이즈미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돌아가셨다. 멀리 떠난 아버지를 따라 가버렸다. 빗길 속 미끄러진 트럭은 조그마한 승용차를 세게 밀어냈고 가드레일에 크게 부딪히면서 승용차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운전석에 앉았던 아버지는 즉사였다. 죽기 직전에 어머니를 감싸 안았고 그 덕에 어머니는 그나마 괜찮았다. 뒤에 앉았던 이와이즈미는 생사를 헤매기 시작했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 모두 아버지를 따라가려한다고 수근거렸다. 어머니에게 마음 단단히 잡으라고 힘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생사를 헤매는 아들을 가만히 내려보던 그녀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조용히 웃었다.
죽기전에는 정신이 돌아온다고 하는 속설이 맞다는 듯 이와이즈미는 사고 후 처음으로 정신을 차렸다. 멍하니 고개를 돌리던 그는 어머니가 아끼던 원피스를 입고 곱게 화장을 한 채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직감적으로 자신이 곧 죽으리라고 느낀 이와이즈미는 어머니를 보며 미안하다 울었다. 끝까지 곁에 있지 못해서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이라 미안하다고 울었다. 그런 이와이즈미의 머리를 옛날 그 때 다락방에서처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던 어머니는 엄마가 더 미안해. 하고 소리죽여 울었다.
"엄마 아빠 없어도 잘 살수 있지? 우리 아들."
"...엄...마...?"
몸이 잠깐 흐릿해지더니 방울방울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그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눈을 크게 떴다.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데 성대가 찢어진 듯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환하게 웃으며 아들, 엄마가 미안해. 사랑해.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물거품이 된 채 사라져버렸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일생 단 한 번 뿐인 소원을 빈 것을 깨닫고 그는 소리죽여 울었다. 점점 나아가는 몸뚱아리가 느껴져서 더욱 더 서럽게 울었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린 이와이즈미를 보고 병원에서는 기적이라고 하였다. 점점 나아가는 몸을 보며 친척들은 모두 다행이라며 옷소매로 눈물을 찍어냈다. 몸이 나음과 동시에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뤄야만 했다. 팔다리에 기브스를 한 채 상복을 입고 멍하니 앉아있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불쌍하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두 개의 관이 나란히 놓였으나 하나는 텅 비어있었다. 물거품이 된 제 어머니의 관이었다.
멍하니 어머니가 물거품이 되던 장면만 곱씹고 있는데 어색하게 고모가 큼큼 목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상투적인 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으려는데 눈치를 보던 고모가 이와이즈미를 살짝 불러내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자 너, 어머니가 있었던가..? 하는 어처구니 없는 물음이 들려왔다. 고모는 몇번이고 제 어머니를 보며, 예쁜데다가 요리도 잘한다며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둘이서만 여행을 간 적도 있었다. 그랬던 그녀는 전혀 제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 물음을 던졌다. 순간 스쳐가는 직감에 이와이즈미는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물거품이 된 저의 어머니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외가쪽을 쳐다보자 그들은 어머니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일족만이 그녀를 기억했고 그 외에는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다. 충격적인 그 사실에 이와이즈미는 겨우 수습해놓은 감저이 터지는 것을 느켰다. 둑이 터지듯 한 번 터진 감정을 울음으로 터져나왔다. 어머니는 늘 말했었다. 모두가 자신을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그럼 그 기억속에서라도 영원히 살아가며 저는 절 기억해주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겠노라고. 사라질 운명임을 알았기에 그런 소원같은 바람을 늘 속삭였던 걸까. 어머니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기억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제 탓이라 자책하며 우는 이와이즈미의 등을 누군가가 세게 감싸안았다. 이와쨩, 하고 부르는 저만큼이나 물기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지금 제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그 품에 안기어 이와이즈미는 눈물을 쏟아냈다. 괜찮다는, 힘내라는 말 한마디없이 등만 토닥이며 같이 울어주는 것이 너무나도 큰 위로가 되어 이와이즈미는 몇번이고 오이카와의 어깨를 적셔야만 했다.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라 했던가. 그 말에 공감을 하며 이와이즈미는 청소기를 돌렸다. 어느덧 혼자 산지도 삼 년이 넘어갔다. 외롭고 괴로운 감정은 점차 익숙해졌다. 성숙해지는 만큼 아픔은 가라앉았다. 아픔이 가라앉는 만큼 사랑은 깊어졌다.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짝사랑은 가을의 단풍처럼 깊어져만 가 이와이즈미의 가슴에 조그마한 보석처럼 박혀있었다. 더없이 반짝이지만 그만큼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움에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만난 날이면 몇번이고 가슴을 꾹 눌러야만 했다.
대학 입학 전 자신은 국가대표가 될거라고 세계인들의 앞에서 멋지게 지휘를 할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던 오이카와는 정체기가 왔다. 수많은 천재들 사이에서는 노력은 아무것도 아닌 재능이었다. 노력은 천재들도 했다. 타고난 재능을 갈무리하며 노력까지 하는 그들을 오이카와는 도무지 이길 수 가 없었다. 배구에 대한 집착은 오이카와를 일으켜세우기도 했지만 무너뜨리기도 했다. 더러는 그냥 배구보다는 얼굴로 먹고 사는게 낫지 않겠냐며 그의 노력을 비웃기도 했다. 그때마다 오이카와는 웃으며 넘겼지만 집에 와서 몇번이고 분을 삭이지 못해 눈가가 새빨개졌다. 일 년을 피토하게 노력했지만, 결과는 뛰어나긴 해도 천재들에 비하면 그저 그런 선수 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였다.
오이카와는 몇 번이고 이와이즈미의 귓가에 비밀을 속삭였다. 사람들은 내 노력을 보지않아, 내 얼굴만 볼 뿐이지. 나는 그런 사람들이 싫어. 근데 이렇게 말하면 날 미워할거야. 더 나를 욕할거야. 어쩌면 내게 기회를 주는 것조차 막아버릴지도 몰라. 그니까 이건 이와쨩만 알아야해? 천재들이 토나오게 싫어 역겨워. 신이 증오스러워. 배구에 대한 집착만 주고 재능은 주지않은 신이 원망스러워. 꾸역꾸역 참아온 말들을 이와이즈미의 귓가에 터뜨리며 오이카와는 울었다. 그 어떠한 위로도 격려도 그를 달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이와이즈미는 그저 등을 토닥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떠올리며 한 숨을 내쉬었다. 철없고 얄미운데 더없이 빛이 나서 반할 수 밖에 없는 놈에서 안타까움이라는 속성이 추가되었다. 안타까운 놈. 이와이즈미는 다시 한 번 더 제 손을 보았다. 잠깐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관두었다. 아직은 더 옆에 있고 싶었다. 적어도 오이카와가 결홀할 때 까지만이라도.
오이카와를 완전히 절망으로 몰아넣은 것은 무릎의 고장이었다. 예전 부터 말썽이던 무릎이 결국 무리한 연습을 견디지 못하고 망가져버렸다.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무리하게 훈련을 강행한 것이 원인이었다. 병원에서는 그가 배구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을 내렸고, 오이카와는 그의 망가진 무릎과 함께 무너져버렸다. 그가 무너져버리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며 이와이즈미도 함께 무너져버렸다. 배구를 할 때 가장 찬란했던 배가, 코트 위를 당당하게 돌아다니던 제 커다란 배가 완전히 가라앉고 말았다.
오이카와는 감금 되듯이 독실에 자리잡았다. 병문안을 왔던 사람들은 텅빈 눈을 한 채로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는 오이카와를 보고 그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도망치듯 병실을 나섰다. 유일하게 겉에 있어준 사람은 이와이즈미 뿐이었다. 오이카와의 보호대로 감싸져 있어야 할 무릎은 기브스로 감싸져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볼 때마다 무너져 내렸다. 어쩌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빨리 헤어질지 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이카와는 제 안의 화를 삭이지 못하고 울며 악을 쓰는 일이 허다했다. 병실안의 물건을 집어던지는 것은 일상이었다. 저번에는 꽃병의 깨진 조각을 그대로 다리 위로 내려 찍으려고 해 겨우 막았었다. 이와이즈미의 손바닥에는 그날의 상처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는 오이카와를 보던 이와이즈미는 병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이곳에 있어봤자 자신도 오이카와도 득이 될 게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오이카와가 제 풀에 지치면 그때 와서 병실을 치우고 옆에 있어줘도 될 것이다.
"....가지마..."
저 세 글자만 아니었다면 이미 병실문을 나섰을거다. 이십여간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거짓이었다는 듯 훅 불면 꺼질것 같은 연약한 목소리가 사슬이 되어 이와이즈미의 발목을 감쌌다. 저를 두고 가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안가."
조용히 침대 곁에 다가와 앉는 이와이즈미를 절박하게 끌어안으며 오이카와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울음을 쏟아냈다. 나 배구 하고 싶어. 이제와서 어떻게 포기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거야. 배구, 배구하고싶어 이와쨩. 두서없이 쏟아져나오는 말들은 불안한 오이카와의 마음을 대변했다. 떨리는 손끝과 일렁이는 호흡이 그거 얼마나 지금 불안정한 상태인지 알려주었다. 그게 마음이 아파서 이와이즈미는 코 끝이 발갛게 아려왔다.
"오이카와'
"응. 이와쨩."
"....배구 계속 하고 싶어?"
"하고 싶어. 하고 싶어서 죽을 거 같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오는 대답에 이와이즈미는 설풋 웃었다. 제 일생일대의 소원을 쓸 때가 온거 같았다.
"한숨 자."
그럼 네 소원이 이루어져 있을거야. 천천히 침대위에 눕혀주며 이불위로 몇 번 가슴을 도닥여주자 악을 쓰느라 지쳤는지 오이카와는 금새 잠이 들었다. 퉁퉁 부운 눈가와 발갛게 달아오른 콧등이 안쓰러웠다. 뺨은 이미 눈물로 인해 튼지 오래였다. 부드러운 갈색 머릿결을 쓰다듬어주자 어리광을 부리듯 그 손에 부비적거린다. 잠투정인것을 알면서도 떨리는 마음이었다.
색색 숨을 쉬는 그를 바라보며 이와이즈미는 마음이 가벼워지면서도 무거워지는 모순을 느꼈다. 이제 두 번 다시 못볼 얼굴이었다. 자신을 까맣게 잊고 살아갈 사람이었다. 제가 참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잘 살아라 멍청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뺨에 입술을 갖다대었다. 조금씩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발언저리부터 물거품이 되어 병실 사이를 두둥실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소원이 이루어졌구나. 이와이즈미는 사라지기전 마지막으로 오이카와의 고장난 무릎에 소중하게 입을 맞추었다. 간지러운듯 움찔 떨리는 몸에 가볍게 웃으며 이와이즈미는 물거품이 되었다. 배구 다시 하게 된 거 축하해.
병실안을 한동안 떠돌아다니던 물거품들은 누군가의 손짓에 의해 몽실몽실 뭉치더니 이윽고 다시 이와이즈미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어리둥절한 듯 눈을 깜빡이던 이와이즈미는 투명하게 사물을 비투는 제 손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것도 죽음이라고 영혼만 떠다니나 보다. 자연스럽게 사물을 통과하는 제 손을 신기하게 보던 이와이즈미는 누군가의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병실 문 앞에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오이카와가 서있었다. 이상한 마음에 가만히 그를 쳐다보다 침대로 눈을 돌리자 오이카와가 환자복을 입은 채 평온하게 잠들어있었다. 다시 앞을 보면 정장을 입은 오이카와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안녕, 이와쨩."
"죽을 때는 가장 보고싶은 사람이 데려온다더니. 그게 헛소리가 아니었구만."
"응."
오이카와는 눈만 깜빡이며 저를 빤히 보는 이와이즈미에게 설풋 웃어주었다. 이윽고 아직 다 합춰지지 않은채 몽실몽실 떠다니는 동그란 물방울을 잡아 이와이즈미의 뺨에 갖다대자 자연스레 스며들며 이와이즈미의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신기한 듯 남은 물방울들을 하나 하나 제 몸에 가져다 대는 이와이즈미를 쳐다보다가 이윽고 오이카와는 잠들어 있는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얼굴이 죽일만큼 원망스러워서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넌 뭘 잊은지도 모를거야. 뭘 잃어버리지도 모를거야. 몇 년뒤에나 후회하겠지. 다 잃은 채 그제서야 후회할거야 넌.
지금 당장이라도 깨워서 얼굴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나약한 제 꼴이 역겨워서 오이카와는 숨을 불안정하게 내뱉었다. 그런 그를 달래듯 이와이즈미가 어깨를 툭 쳤다. 뭘 새삼스럽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너 소원은 다 들어주던거 알면서. 같이 배구하고 같은 학교 가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 들어보이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는 우는 듯 웃었다.
"이와쨩."
"응."
"고마워."
"응."
"...후회해?"
"후회하지 않아."
"난 니가 후회하길 바랐어."
그럼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널 살려낼텐데. 입안을 가득 채우는 쓴 말을 혀 뒤로 집어 삼킨 채 오이카와는 다시 한번 더 웃어보었다. 이제 갈 시간이었다. 구겨진 옷을 탁탁 털고 이와이즈미의 어깨를 잡은 채 창가로 다가갔다.
"잘가."
"응."
미련이 없다는 듯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가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한참을 그의 등뒤를 바라보았다. 변함없는 제 에이스였다. 제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한 사람이었다. 저때문에 사라진 사람이었고 사랑이었다. 이와이즈미를 바라보던 오이카와도 그의 뒤를 천천히 따르기 시작했다. 어느 새 오이카와의 모습도 사라지고 병실에는 몸의 어디도 고장나지 않은 오이카와가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한 숨 푹 자고 일어난 오이카와는 몸이 가뿐해진 것이 의아함을 느꼈다. 푹 자서가 아니었다 무언가 달라져있었다. 기시감에 오이카와는 담당의를 불러 다시 재검사를 부탁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평생 치료가 불가능 할 것 같던 무릎이 호전증세를 보이고 있던 것이다. 바로 재활훈련에 들어간 오이카와는 한 달 만에 훈련에 복귀할 수 있었다. 오이카와의 몸은 날아갈 것이 가벼워졌다. 인생에서 무언가 사라진 만큼 가벼워진 몸은 코트 위를 날아다녔다. 그는 사라진 것이 자신의 열등감이라 생각했다. 과거를 극복한 배구선수. 재능을 압도하는 노력. 모두 오이카와의 이름 뒤에 붙는 수식어들이었다. 가볍게 오이카와가 보낸 토스위로 우시지마가 점수를 얻었다. 천재들을 지휘하는 세터. 그게 오이카와였다.
빠르게 승승장구를 하는 오이카와는 일본을 넘어서 세계로의 진출을 앞두고 있었다. 그 첫 시작이 이탈리아였다. 앞으로 몇 년간 돌아오지 못 할 집을 정리하며 오이카와는 콧노래를 불렀다. 운명의 여신은 자신의 편이 틀림 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잘 나갈 수가.
버릴것과 가져갈 것들을 정리하던 중 조그마한 동화책이 선반 위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아마 고등학교 때의 자신이 부모님이 동화책을 버린다고 정리할 때 몰래 숨겨둔 것이 틀림없었다. 어릴때부터 제 것에 대한 욕심이 커서 보지도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 주기가 싫어서 종종 제 물건을 숨겨두곤 했었다. 지금 이것도 몰래 숨겨두고 그 다음 날 바로 잊어버렸겠지. 새삼스럽게 차오르는 추억에 오이카와는 실실 웃으며 동화책을 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_ 입밖으로 천천히 문장을 내뱉으며 오이카와는 빠르게 동화에 빠져들었다.
어느덧 손은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다음 장면은 분명 인어공주가 사랑하는 왕자를 위해 물거품이 되는 부분이었지. 이야기의 끝을 알면서도 손은 페이지를 넘겼다. 그곳에는 물거품이 되는 인어공주의 삽화 대신 사진이 한 장 붙어있었다. 세터상을 들고 웃고 있는 중학교 때의 자신과 그 옆에는 고슴도치 같은 머리를 한 남자애가 한 명 있었다. 무어가 그리 신났는지 둘은 브이자를 한 채 크게 미소짓고 있었다. 누구더 라 얘가. 천천히 기억을 되집어보며 사진 속 그 아이를 건드는 순간 몽실 하고 사진 속에 물거품이 차올랐다. 그 아이가 있던 자리를 몽글몽글 채워가던 물거품들은 어느 새 사진 밖으로 까지 삐져나와 오이카와의 손가락을 타고 물거품들은 하늘하늘 공기중으로 사라져버렸다.기이한 그 현상에 오이카와는 손끝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한없이 넘쳐흐를 것 같았던 물거품들은 1분도 채 안되어 사진속의 그 아이를 지운 채 사라져버렸다. 남은 사진 속에는 자신 혼자 환하게 웃고있었다.
"이와쨩?"
물거품이 닿은 손끝부터 저려왔다. 가슴이 갑갑하고 미칠 것 같은 느낌에 목구멍에 걸렸던 말을 내뱉었다. 이와쨩. 그 세글자에 파도가 몰아치듯이 잃어버린 기억들이 밀려들어왔다. 순식간에 머리속을 점령하는 기억들에 질식할 것 같았다. 깊은 바다속에 잠긴 것 처럼 오이카와는 잃어버렸던 기억들 속으로 가라앉았다. 수없이 밀려오는 기억들 속에는 사진 속 남자아이가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꽤 최근까지. 온통 기억속에 그 애뿐이었다.
잃어버린 것이 생각났다. 몸이 가벼웠던 이유를 깨달았다. 열등감 따위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제 삶을 크게 차지하던 이와이즈미가 사라져 버려서 몸이 텅빈 새의 몸뚱아리 마냥 가벼워진 것 이었다. 병실에 있던 기억 이 후 이와이즈미는 보이지 않았다. 제 기억 속에 없었다. 문득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인어공주처럼 방금 전 사진처럼 물거품이 된 채 사라져 버린게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상상을 했다. 왕자를 위해 제 목숨을 버린 인어공주 마냥, 저의 배구 생활을 위해 저를 위해 이와이즈미 또한 목숨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한 번 시작 된 상상은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살린 대신 사라졌다는 생각에 덜덜 손등이 떨려왔다. 조심스럽게 아팠던 무릎을 감싸쥐었다. 이와이즈미의 목숨과 바꿔 얻은 무릎이라고 생각하지 끔찍하도록 무서워서 빠르게 손을 떼었다. 저는 잃어버리고야 만것이다. 철없는 제 대답하나에 자신보다 소중한 그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산 것이다. 그 날 무릎이 완쾌한 후 처음으로 오이카와는 소리내어 울었다. 이와이즈미를 떠나보낸게 미안해서 그에게 짐을 지어준 것이 미안해서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엉엉 울었다.
밤새 울며 원망하고 사죄하던 오이카와는 퉁퉁 부은 눈으로 커다란 여행가방을 든 채 택시에 올라탔다. 한쪽 손에는 인어공주 동화책이 들려있었다. 이와이즈미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세계 최고가 되어야했다. 제 능력 만큼이 이와이즈미의 목숨의 가치일테니 자신은 세계 최고여야만했다. 아직까지도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문지르며 오이카와는 택시 안에서 한숨 처럼 이와이즈미의 이름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빗길을 달리던 택시는 속력을 줄이지 못한 채 그대로 가드레일을 박고 바닷가 쪽으로 쩔어졌다. 운전사와 탑승객 모두 즉사였다. 다짐이 무색하도록 순식간에 생명의 불은 꺼져버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은 제 모습을 보며 오이카와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차갑게 식은 제 손에는 배구공도 상도 아닌 작은 동화책 한 권이 꽉 쥐어져 있었다. 흘러나온 피가 인어공주의 주변을 붉게 물들었다. 그게 보기 싫어 오이카와는 닦으려 손을 내밀었으나 쑥 하고 통과해버리는 모습에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 여기까지 밖에 못왔는데, 아직 이와이즈미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리지도 못했는데. 너무나도 허무했다.
허무한 마음에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뱅뱅 도는데 저 멀리 빛이 반짝 하고 빛나더니 안내하듯 작은 빛무리로 길을 만들어내었다. 오이카와는 저 멀리 빛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사후는 여러 이야기들과 달리 어떠한 무서움도 없었다. 그저 이상할 정도로 평온하고 담담한 기분이었다. 빛의 끝에는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을 열면 물거품이 되었던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왜 벌써왔냐고 욕을 하려나. 거기도 배구공이 있을까. 이와쨩이라면 분명 배구공으로 제 머리를 맞출텐데. 오이카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구겨진 정장을 털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앞에서 추한 꼴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말쑥해진 모습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오이카와는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혀 위에서는 이와쨩이라는 단어가 언제든지 튀어나갈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다. 나름의 사후 세계의 모습을 그리며 오이카와는 문을 열었고 그 앞에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풍경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곳은 제가 입원했었던 병실이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광고라도 하듯 온 사방에 깨져있고 널려 있는 물건들을 보다 자신이 누워있는 자리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이와이즈미가 제 곁을 떠날 체비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제 볼과 무릎에 입을 맞추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어느 새 병실에는 이미 죽은 자신과, 무릎이 나아가는 자신이 있었다. 물거품들은 둥실 둥실 허공을 떠볼며 제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손이 닿으면 사라질 까 두려워 오이카와는 멀찍이 떨어졌다. 저 물방을들은 이와이즈미기에 만질 용기조차 나질 않았다. 사라지지마. 주문을 외우듯 맘속으로 몇번이고 되내이며 이와이즈미를 움켜잡듯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 손짓을 따라 물거품들이 모여들더니 이와이즈미를 제 앞에 데려다 놓았다.
몇번이고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오이카와는 숨을 골랐다.
"안녕, 이와쨩."
저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는 최대한 환하게 멋있게 웃어보였다. 안녕, 이와쨩.
"나 보고싶었어?"
"응?"
"난 보고싶었어."
정말 네가 많이 보고싶었어. 널 잊었던 만큼 네가 그리웠어.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창문으로 데려가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있는 제가 죽을만큼 미웠다. 아무것도 모른채 이제 잠에서 깨어나면 좋은일만 생겼다며 희희낙락하겠지. 뭘 잃은지도 모른 채.
먼저 창가 밖으로 걸어가는 이와이즈미를 가만히 보다가 이윽고 오이카와도 발걸음을 옮겼다. 타박타박 울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슬쩍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자 무슨 이상한 짓을 하냐는 듯 입이 불퉁 튀어나온다.
"너 아까 나보고 잘가라고 하지 않았냐?"
"내가 언제? 난 같이 잘 가자~라고 했는데?"
"...아, 짜증나. 변함없이 짜증나."
"아, 좋아. 변함없이 좋아."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못생겼는데 한결같이 좋을까. 놀리듯 말을 하자 냅다 머리통을 후려친다. 익숙한 손길에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어 눈물이 났다. 뭐야 울정도로 아파? 당황한듯 뒷머리를 쓱쓱 매만져주는 손길에 베싯 웃음이 새어나온다.
아아, 동화같았던 저희 둘만의 해피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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