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츠이와] come with me
섹시하게 이와이즈미를 잡아먹는 마츠카와가 보고싶다고 했는데...저로서는 무리였나 봅니다...또르르....나름 꿈은 창대하고 상상은 넘쳐 흘렀으나 글솜씨가 미약했던....ㅠㅠㅠㅠㅠㅠ
혁명군 옷입고 육체적으로 거래하는 둘이 보고싶었을 뿐인데 정작 그 부분은 짧고 앞의 설명 부분이 엄청 기네요.
이제서야 보상을 드려서 죄송해요ㅠㅠㅠㅠ
아무쪼록 히야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8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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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SUKAWA X IWAIZUMI]
Come with me
written by MARU
"부대장님 복귀하셨습니다! 2번 문 오픈!"
부대장이 왔다는 보초병의 말이 중앙홀을 쩌렁쩌렁 울렸다.편하게 드러누워 뻑뻑 담배를 피거나 허리를 긁으며 추하게 하품을 하는 등 제각각으로 흩어져있던 사내들이 일사분란하게 대열정리를 하였다. 같은 부대임이 의심될만큼 제각각으로 차려입은 옷들만 보면 오합지졸이었다. 허나, 거대한 철문이 열림과 동시에 허리를 꼿꼿히 핀 이들이 일동 경례를 외치며 그들의 상사를 맞는 모습은 어느 군대 못지 않게 엄숙했고 존경과 경외심이 빛났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게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것이 마치 주인을 맞는 강아지 같았다. 무기력의 산 증인인 쿠니미까지 바짝 군기가 들어 부대장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그들이 부대장을 좋아하는 지 말은 다 한 셈이었다. 하지만 온 몸으로 사내들의 존경한다는 시선을 받는 부대장은 자랑스럽거나 당당하기는 커녕 오히려 머쓱하다는 듯 문을 나섰다.
"이런거 하지 말라니까."
벌써 몇 년째 받는 경례임에도 불구하고 이와이즈미는 어색하다는 듯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부대장이라는 높은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수염자국 하나 없이 풋풋했다. 많이 쳐줘봐야 고작 스물 중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이제야 갓 스물을 넘긴 것 같은 애송이들로 이루어진 군대였다. 앳된 얼굴과는 달리 총이나 칼 등 다양한 무기류를 능숙하게 손질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에 대한 노련함만이 가득 차있었다. 무기보다는 책이나 가방 등이 어울릴 법한 손들임에도 불구하고 총이 더 익숙한 손들이었다. 그런 부하들이 안타깝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가 이와이즈미는 어기적 어기적 아직까지도 거수경례를 한 손을 거두지 않은 부하들의 사이를 지나갔다. 걸음을 옮기는 이와이즈미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씩 웃는 표정들이 제법 제 나이대로 보였다.
"오이카와는?"
"네! 대장님께서는 지금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머지도?"
"네!"
자신만 빼고 다 모여있다는 사실에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 옮겼다. 분명 자신을 보자마다 왜이리 늦었냐고 다다다 쏘아부칠 오이카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잘생긴 얼굴로 깐족깐족 제 성질을 긁으며 놀릴 것이 분명하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오늘 갑자기 자신들을 소집한 오이카와의 행동이 이상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선에서 처리하거나 확실하게 약속을 잡고 만나는 녀석인데 오늘 급하게 자신들을 불러모은 것을 보면 분명 무슨일이 터진것이다.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한 머리속에서는 다양한 상상들이 들쑥날쑥 자라났다. 그 가설들 중 하나라도 맞는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생각에 잠겨서 걷다보니 어느새 눈앞에 간부 회의실이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커다란 갈색 문을 활짝 열었다. 회의실 정면에 서있던 오이카와와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고 이와이즈미의 상상을 사실로 만들어주려는 듯 오이카와는 벌써부터 잘난 얼굴을 씰룩였다. 못생긴 이와쨩 늦었네? 못생기면 늦어도 되나봐? 잘생긴 대장은 일찍 도착했는데 못생긴 부대장은 지각이나 하고. 아주 못생긴게 면죄부야 면죄부. 이와이즈미는 못생겼다 하면서 슬쩍 오이카와 자신은 잘생겼다고 칭찬하는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어쨌든 지각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이와이즈미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 숙였다. 그제서야 오이카와는 됐다는 듯 수려한 입가를 씨익하고 서슴없이 끌어올렸다. 평소와 같이 헤실헤실 웃는 모습이었으나 곱게 휘어진 눈가에는 불편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이카와의 의중을 잡으려 이와이즈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자리에 서서 그를 관찰했다. 몇년을 함께 했지만 아직까지 속을 완전히 짚어내기에는 너무나도 감추는데 익숙한 놈이었다. 그나마 이와이즈미니까 불편함을 미약하게나마 잡아낸 것이었다.
하나마키가 앉으라는 듯 톡톡 책상을 치는 소리에 이와이즈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간부들 전부가 모이기를 기다렸는지 하나마키는 아직 오이카와에게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고 이와이즈미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이카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며 차례대로 이와이즈미와 하나마키, 마츠카와를 둘러봤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혁명군임을 암시하는 붉은 리본과 아오바죠사이의 대원임을 알리는 민트색의 리본이 달려있었다.
오이카와가 이끄는 아오바죠사이는 젊은 피들로 이루어진 능력이 매우 탁월한 혁명군 부대였다. 대장인 오이카와, 부대장 이와이즈미, 행동 대장 하나마키, 책략가 마츠카와. 이 넷은 혁명군 사이에서도 실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였다. 특히 오이카와의 계략은 귀신과도 같아 위에서 내려온 웬만한 명령은 수월하게 소화해내고는 했다. 그만큼 위 측에서는 아오바죠사이에 거는 기대가 많았고 그들을 미래의 혁명군 최상층의 간부로서 키우려고 하였다.
자신의 믿음직스러운 동료이자 부하들을 보다가 오이카와가 장난스럽게 이와이즈미와 눈을 마주쳤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나고 자라서인지 둘 사이에는 통하는 것이 많았다. 가령, 좋아하는 음식이라던가, 색깔 또는 추억, 그리고 적까지도. 그만큼 의지하고 믿는 사람이었다.
"이와쨩 그거 알아?"
콕 찝어서 자신을 부르는 오이카와의 부름에 이와이즈미는 미간을 구겼다. 소집한 것은 저면서 자신에게 아냐고 물으면 어쩌란 말인가. 그냥 속 시원하게 빨리 말이나 할 것이지 오이카와는 이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속을 떠보려 한다. 재수 없었다.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리며 욕이라도 씹어 삼키듯 움칫거리는 볼을 보며 오이카와는 미소지으려 노력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자신도 이렇게 충격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특히 저와 생각도 사상도 경험도 아주 흡사한 이와이즈미는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긴장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한번 축이며 오이카와는 입을 떼었다.
"위대한 지도자 M은 허구의 인물이야."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세 명을 보며 허탈한 듯 오이카와가 웃었다. 그 허구의 인물 하나 때문에 몇 백명이 죽고 몇 천명이 다쳤다. 이 나라가 이념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삶을 통째로 거부당한 기분이었다. 자신들의 나라는 다양한 이념들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부패한 대통령의 목이 분노한 누군가에 의해 잘려 회의실에 걸린 이후부터 그 하나 뿐인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해 수많은 무리들이 움직였다. 반역, 쿠데타, 혁명 등 다른 이름이었으나 같은 행위였다. 위대한 지도자 M은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무리들 중 하나의 리더였다. 그가 이끄는 무리는 정부에 대놓고 반기를 든 자들이었다. 그가 외치는 자유와 평화의 이념에 사람들은 빠르게 흔들렸고 그에게 동화되었으며 그의 이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고 신뢰하며 죽어갔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정신은 살아있었고 그것은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작은 불씨처럼 살아있었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 부터 들어왔던 M이라는 자의 사상에 물들었고 그의 위대한 정신을 이어받아 혁명군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가 허상이었다니. 이보다 더 허탈할 수는 없었다.
커다란 회의용 책상을 둘라싸고 앉은 네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이젠 어떡하면 좋을지. 이 사실을 부하들에게 말해도 좋을지 등등 여러가지의 생각에 휩쌓여 아무도 섣불리 말을 내뱉을 수 가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았다. 대장인 그로서는 더욱 더 복잡할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자신들이 언제부터 M의 사상에 물들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와이즈미가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대통령이 암살 되었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모래성 같던 정권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고, 그 틈을 타 군부에서 정권을 잡았다고 동네 어른들께 들었다. 강압적인 정부에 사람들은 대항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거짓된 법으로 포장된 무합리한 탄압 뿐이었다. 무차별적인 폭력에 시민들은 반기를 들었고 그 대표자가 M이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외치며 효율적이고 탄탄한 집단을 만들어나갔다. 평화적이고 시민들의 편에 서서 군정을 물리치는 그는 그 시대의 영웅이었다. 모두가 그를 따랐고 지지했다. 하지만 M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저 M이 이렇게 지시하였다며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 아닌 명령을 지지자들은 따랐고, 그것은 좋은 결과를 내기도 몇십명의 희생자를 내기도 하였다. 어른들은 M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말단이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M의 모습을 볼 수 있는자는 그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말하며 자식들에게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 M의 옆에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되라 속삭였다.
M을 볼수는 없었지만 그의 사상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지자들은 행복하게 여겼다. 그의 사상이 옳다고 믿으며 그의 사상을 퍼트리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는 광신자들 같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저 무자비한 군정을 물리치고 언젠가 자신들을 구원해 줄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언젠가부터 어른들은 길에서 자주 울었다. 가장 위대한 지도자 M이 죽었다고 했다. M이 결국 군정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소식이 퍼져나갔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그에 따른 여러 말들이 오갔다. 다양한 추측들 사이에서 이념들은 여러 갈래로 나눠지고 군정이 좀 더 강압적으로 변하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다.어른들은 슬퍼했고 분노했으나 아직 어렸던 이와이즈미들은 그가 누군지 무엇을 했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그저 그가 위대하다는 사실 하나만을 겨우 알아차렸다.
점차 나이를 먹어갈수록 군정의 폭력은 심해졌고, 어른들은 M의 사상을 자식들의 맘속에 몇번이고 퍼뜨렸다. 자유, 평화, 민주주의. 이 세가지는 찬란한 보석이었고 그 빛은 어렸던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의 눈을 멀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 빛에 허우적 거리며 막연히 혁명군에 들어가 군정을 물리쳐야지 하고 맘을 먹었던 그들을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총을 들게 만든 것은 정부였다. 오이카와의 아버지는 장난삼아 총을 쏜 군인들에 의해 두 다리를 평생 못쓰게 되었다. 어머니는 돈이 없어 결국 병으로 돌아가셨다. 국가가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둬갔기 때문이다. 이와이즈미의 부모님은 지나가던 군 부대에 맞아죽었다. 제대로 존경심을 담아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국가에서는 그 어떠한 보상이 없었다. 오히려 너희들이 잘못한 게 아니냐며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마저 없애려 들었다.
가족들을 잃은 둘은 빠르게 혁명군에 들어갔다. 개같은 군정을 더 이상 보고싶지 않았다. 제가 죽더라도 저것만큼은 무너뜨리고 싶었다. 죽기 살기로 노력한 덕분인지 둘은 빠르게 신뢰를 얻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작은 부대하나를 통솔 하게 되었다. 그것이 아오바죠사이 이다. 가장 뛰어난 자들로만 구성된 소수정예부대. 그리고 누구보다 군정에 악감정을 품은 부대. 모두가 군인에 의해 가족을 잃은 청년들로만 구성되어 있었기에 가장 무모하였으며 죽음에 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더욱 더 무어라고 전해야 될지 감도 안잡혔다. 다들 M의 사상에 물들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뱉고 정부를 제 살과 피와 함께 씹어먹으려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너희가 믿는 사상은 허상이었다. M은 없다. 라고 전하라니. 삽시간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한참을 적당한 말을 찾아보던 이와이즈미는 열이 나는 것 같은 기분에 책상에 그대로 이마를 대었다. 서늘한 온도가 과부하로 뜨끈뜨끈한 머리를 식혀주었다. 오이카와의 말대로 돌머리라 굴릴수록 열만 나는 걸까. 하고 현실 도피를 하던 와중에 뺨쪽으로 뭉근한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눈동자만 굴려 쳐다보자 마츠카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미를 똑바로 쳐다보는 검은 눈동자에서 작은 열기가 일렁거렸다. 벌써 몇번 째 저런 눈을 마주치는 지 모르겠다. 피해야 한다고 직감이 알려왔다. 이와이즈미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으며 마츠카와의 시선을 차단했다. 열기는 한참을 그의 얼굴에서 머물다 사라졌다.
"일단 지금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게 나을 것 같다. 아무 대책 없이 밑으로 정보를 돌려봤자 좋을게 없어."
오이카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그 위에 또 커다란 짐을 얹은 것 같아서 어깨도 마음도 무거웠다. 오이카와는 애써 웃으며 친우들을 격려했다. 허나 불안하게 흔들리는 마음은 숨길 수 없었는지 작게 입꼬리가 떨려왔다. 이 일은 어쩌면 아오바죠사이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사실이었다. 한 부대를 책임지는 통솔자로서의 커다란 책임감에 눌려 죽을 것 같았다. 작게나마 숨통을 틔워준 것은 이와이즈미의 표현이었다.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어깨를 가볍게 주먹으로 툭 쳤다. 그게 이와이즈미의 위로이자 격려의 표현임을 아는 오이카와는 잘생긴 얼굴을 서슴없이 무너뜨리며 웃었다. 남자라니까 이와쨩. 시끄러 쿠소카와. 이와쨩, 욕은 남자다운게 아냐. 어쩌라고 망할카와. 투닥투닥 거리는 둘을 보며 하나미키는 그러려니 하고 회의실을 나섰고 마츠카와는 곤란한 듯 웃었다.
"..너무 오이카와만 보는거 아냐?"
자리를 뜨면서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이와이즈미의 귓가에만 살짝 속삭이고는 떠나는 넓직한 등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벙찐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뺨에 닿았던 열기가 이번에는 귓가에 머물렀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고막에 들어앉은 것 같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위험했다.
멍하니 문을 쳐다보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오이카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한번 깜빡이더니 그대로 이와이즈미를 문까지 밀었다. 나는 여기서 좀 더 생각할테니 이와쨩은 이와쨩 방에서 생각하세요. 부드러운 말투와 달리 냉정하게 닫히는 문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헛웃음을 지었다. 오이카와는 확답이 나올 때까지 그의 생각을 그 누구와도 공유하려 하지 않았다. 나쁜 버릇이었다. 짜증이 나 오이카와가 있는 회의실을 노려보았다. 눈빛만 보면 이미 문을 뚫고 들어가 오이카와를 태우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런 눈빛을 삽시간에 꺼버린 건 왼쪽 귓가를 파고드는 낮은 목소리였다.
"그니까 너무 오이카와만 보는 것 같다니까."
제 귓가에 다시 한번 더 다가오는 열기에 급하게 한쪽 귀를 가렸다. 특유의 멍한 표정을 지으며 마츠카와가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는 듯 양손을 머리까지 올려 살랑 흔들었다. 그러나 눈동자 안쪽에는 노골적이면서도 은밀한 성욕의 열기가 차올라있었다. 저를 보고 발정이라도 한 듯 눈을 빛내는 마츠카와를 보면서 이와이즈미는 모른 척 발걸음을 옮겼다. 저런 건 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이즈미 자신을 잡아먹고도 남을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마츠카와를 스쳐 지나가려던 이와이즈미를 가만 쳐다보던 마츠카와가 그를 벽쪽으로 세게 밀었다. 커다란 덩치 속에 갇혀버린 이와이즈미가 뾰족한 눈을 더욱 더 날을 세워 쳐다보았다.
"무시는 좋지 않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 점은 오이카와랑 똑같네. 알면서도 모른 척."
"...."
"자꾸 그러면 나도 무슨 짓을 할 지 몰라. 이래뵈도 질투가 좀 심해서."
"뭐?"
이해가 되지 않는 마츠카와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자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라는 의미를 모르겠는 대답이 돌아온다. 볼일은 그게 다였다는 듯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를 훌쩍 떠나갔다. 어이가 없는 그의 태도에 이와이즈미는 다시 한번 더 깊게 미간을 찌푸렸다. 곰곰이 이것저것 생각하던 그도 훌쩍 자리를 떠났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
대대적인 정부의 혁명군 소탕 작전이 시작 되었다. 감히 국가에 반기를 드는 자들은 필요가 없다며 쥐새끼같은 혁명군을 모두 없애겠다고 선포를 했다. 기습은 물론이었고, 혁명군과 조금이라도 연이 닿았던 마을은 통째로 사라지기 일수였다. 혁명군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조금씩 없애며 그들을 압박해가는 행위에 혁명군 측은 몇번이고 각 대장들을 모아 긴급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열릴 때마다 오이카와의 얼굴은 수척해졌다. 회의에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것을 오이카와만 봐도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를 둘러싸던 부드럽고 다소 장난스럽던 분위기는 날카롭고 예민하게 바뀌었다. 딱딱한 표정으로 부대를 돌아다니는 그를 보며 부원들은 알아서 기를 죽이고 다녔다.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를 따라 예민해졌다. 워낙 어릴때부터 붙어다녀서 인지 서로의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고는 했다.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은 들쑥날쑥 날카로워졌다. 이와이즈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조금이나마 다스려보려 방안에 틀어박혔다. 책상에 기대어 이마를 꾹꾹 누르자 조금 두통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한결 편안한 숨을 쉬는데 조용히 방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이런 시기에 제 방문을 열만큼 겁대가리 없는 부하들은 없었다. 혹시 오이카와인가 하고 고개를 들자 예상 외의 인물이 서있었다.
"오이카와인 줄 알았어?"
"마츠카와."
"부대장님이 통 안보여서 내가 직접 찾으러 왔어."
굳이 찾으러 올 필요는 없는데.
이와이즈미는 말을 목구멍 뒤로 삼키며 경계하듯 책상쪽에 몸을 바짝 붙였다. 요 근래 자신에게 스킨쉽이 부쩍 잦아진 마츠카와였다. 사소한 손길 하나하나에도 끈적함이 묻어나 당혹스러웠다. 저번에도 제 옆을 스쳐지나가며 손등을 쓸어올리고 손 사이를 부드럽게 만지고 가는 손길에 놀라 힉, 하고 여자 마냥 소리를 낸 적도 있다. 정작 그 소리를 내게 만든 장본인은 아무런 짓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듯 뻔뻔하게 제 갈길을 갔지만.
마츠카와가 무슨 짓을 할 지 두고보겠다는 듯 이와이즈미는 마츠카와의 행동을 따라 눈동자만 굴렸다. 왠지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마츠카와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제가 자초한 일이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특유의 무덤덤함으로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침대에 털썩 앉았다. 정말 부대장이 보이지 않아 궁금해서 찾아왔다는 그 태도에 이와이즈미는 조금 긴장을 풀었다.
그와 동시에 주인 허락도 없이 멋대로 침대를 차지하는 행위에 가라앉았던 편두통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무슨 쉰소리를 해볼려고 여기까지 행차를 했나 하는 이리저리 배배 꼬인 생각이 들었다. 짜증난다는 듯 눈을 감고 이마 양 옆을 꾹꾹 누르던 모습을 보던 마츠카와가 소리 없이 일어나 천천히 이와이즈미의 앞으로 다가갔다. 마치 거대한 육식 동물이 사냥을 위해 부드럽게 몸을 일으키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마츠카와가 다가온 줄도 모른 채 이와이즈미는 무방비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잡아먹어달라는 것 같은데. 이와이즈미가 들으면 기겁할 만한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마츠카와는 입술을 겹쳤다.
깜짝 놀라 번쩍 뜨인 두 눈동자를 그대로 마주하며 입술 사이를 비집고 혀를 집어 넣었다. 까끌한 입술 표면과는 달리 입안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뻣뻣하게 굳어있는 혀를 어루만지며 습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볼안쪽을 뭉근하게 문지르다가도 입술로 장난을 치듯 이와이즈미의 아랫입술을 물기도 하였다. 살살 색욕을 자극하듯 혀로 이곳저곳 쓸어올리는 몸짓에 어깨가 몇번 움찔 거렸다. 연인들이나 나눌 법한 다정한 키스에 이와이즈미는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돌처럼 굳어 그대로 키스를 받아들였다. 감을 생각조차 못한 채 멍청하게 굳어있는 눈을 마주 보던 마츠카와의 눈가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아, 섹시하게 생기긴 했구나하고 멍하니 생각하던 와중에 입가에서 아픔이 밀려올라왔다.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감싸고 마츠카와를 보는데 그의 입술에 피가 묻어있었다. 천천히 자신의 손을 떼고 보자 피가 묻어나왔다. 맹렬하게 뜯긴 듯 입술 주변이 얼얼했다. 부드럽게 키스를 하다가 입술을 물어뜯는 것은 또 무슨 행위인가. 기가 차 말은 커녕 허, 하고 바람빠진 웃음소리만 나왔다.
"똑똑히 기억하라고."
"이게 무슨 짓이야. 너, 지금."
"니가 방금 키스한게 누군지 절대 잊지마. 모른 척도 하지마. 그러라고 한 짓이니까."
한 번만 더 두리뭉실하게 모른 척 하면 그땐 더 심한 짓을 할거야.
피가 묻은 이와이즈미의 입술을 엄지 손가락을 살살 쓰다듬더니 그대로 제 입술을 다시 가져대는 마츠카와의 행위에 이와이즈미는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무릎위에 얌전히 올린 손만 움칫 거렸다. 깨문것이 미안하다는 듯 방금 전 보다 다정하게 다가오는 숨결에 기분이 좋았다. 이미 이런 저런 일로 터질것 같은 머리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둥둥 몸이 떠다닐 것 같은 부드러운 키스를 하며 이와이즈미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여자가 부족해 남색이 워낙 판을 치는 곳이라 거부감은 없었다. 다만 그 상대가 마츠카와라는 것이 좀 껄끄러웠을 뿐. 이젠 될대로 되라는 생각에 이와이즈미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입을 벌렸다. 잘했다는 듯 척추를 따라 쓸어올리는 손길에 목뒤가 뻐근했다.
그 날의 키스 이후 마츠카와의 행위는 좀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똑똑히 기억하라는 말을 혹시나 이와이즈미가 잊기라도 했을 까봐 몇 번이고 그에게 입술을 부딫혔다. 둘만 남으면 자연스럽게 제 입가를 파고드는 열기에 이와이즈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을 벌렸다. 적을 소탕하고 살상하는 법은 알아도 열기를 누르거나 피하는 방법은 전혀 알지 못했다. 낯선 경험에 그저 끙끙거리며 그대로 마츠카와의 혀를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였다.
키스 외에도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다양한 스킨쉽을 행했다. 복도에서 서로 지나가다 귓가에 입김을 불어넣기도 하고 손등을 잡은 채 천천히 깍지를 낀 채로 손가락 사이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쓸어올리기도 했다. 아니면 허리깨를 가볍게 쓰다듬기도 했다. 혁명, 승리, 생존 이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이와이즈미라 사소한 스킨쉽 하나하나에 면역이 없어서 당할 때 마다 작은 짐승 모냥새로 몸을 움칫 거리렸다. 그런 이와이즈미가 재밌다는 듯 멍한 표정에 담긴 웃음기가 재수 없어서 이와이즈미는 몇 번이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마츠카와가 한참 이와이즈미에게 성적 어필을 하는 동안 혁명군은 점점 입지가 좁아졌다. 지난 밤에는 부대 하나가 박살이 났다고 했다. 오이카와는 아오바죠사이를 위해 이리저리 발품을 팔았으나, 아직 어린 그의 사회적 위치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정부의 풍부한 무기와는 달리 혁명은 말 그대로 없는 자들이 일으킨거라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이만큼 일궈낸 것이 기적이라 할 정도 였다.
위에서는 터무니 없는 작전들이 내려오곤 했다. 그 작전들을 수행하는 순간 절반 이상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닐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오이카와가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작전을 수정하고 뜯어 고쳐 생존율을 올린게 절반이었다. 있을때나 곱다 이쁘다 했지, 군 물품이 떨어지자 마자 바로 자신들을 버린것을 보고 오이카와는 이를 갈았다.
'자네들이 젊은 만큼 강한 육체와 뛰어난 머리를 가졌으니 이 작전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을거라 믿고 있네. 무엇보다 혁명을 위한 길이 아닌가.'
우린 죽기 싫으니 입지도 뭣도 없는 니들이 방패막이 되어라. 라는 개소리를 멋들어지게 포장 한것을 보고 오이카와는 그대로 편지를 찢어버렸다. 왜? 걍 뒈지라고 하지. 저절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윗대가리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장기말의 하나일지 몰라도 자신들에게는 소중한 부하이자 친우였다. 쉽게 버리고 말 목숨들이 아니었다.
초조해하는 오이카와와 그를 바라보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마츠카와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짐이든 함께 이고 가려 했으며 오이카와에게 무슨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달려갔다. 둘에게는 어떠한 사랑도 없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신뢰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쳐다보는것이 서로의 눈동자였다. 이와이즈미에게 연심을 품은 마츠카와의 입장에서는 돌아버릴 일이었다. 차라리 내가 그 어릴 적 부터 너의 곁에 있었다면 나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보았을까. 어린 자신과 그 옆에 있는 이와이즈미. 그리고 오이카와.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을 하면서도 여전히 붙어있는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려져 마츠카와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를 소유할 수 없는건 괴로운 일이다.
"일단 무기 자체가 너무 부족해."
"젠장. 위에서는 뭐 내려오는 거 없어?"
"그냥 훌륭한 방패막이 되라던데? 혁명을 위해서 말이지."
빈정거리는 오이카와의 말에 하나마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지금 당장 기관총 하나 들고 혁명군 본부로 쳐들어가 무기를 내놓으라고 협박이라도 하고 싶었다. 행동대장인 만큼 다른 간부들보다 동고동락한 시간이 더 많은 하나카미에게 지금 윗대가리들은 머리통에 구멍을 내도 시원찮을 사람들이었다. 혁명은 무슨 엿이나 먹으라지.
최대한 나은 작전을 세우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이와이즈미는 기시감에 문득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온갖 욕과 저주를 씹어 삼키며 대책들을 세우는 오이카와와 하나마키와는 달리 마츠카와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나름 동조를 하는 것 같았지만 그 혼자 또 다른 고민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이것 말고 더 큰 고민할 게 있나. 몇 번 책상을 톡톡 치던 이와이즈미는 결론을 내렸다. 없다.
그 순간 이와이즈미는 바로 마츠카와를 경계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믿을 건 나하나 뿐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온 사이라 하더라도 그게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는 되지 않았다. 마츠카와가 정부나 아니면 혁명군 윗대가리의 끄나풀일 수도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촉을 좀 더 높게 세웠다.
바짝 제게 다가오는 살기를 느끼며 마츠카와는 슬쩍 이와이즈미 쪽을 쳐다보았다. 작전을 세우느라 바쁜 줄 알았더니 그 와중에도 저를 관찰했나 보다. 어차피 마음속으로는 이미 결론을 내린지 오래였다. 제게 이를 드러내는 이와이즈미를 무시하며 마츠카와는 아무렇지 않게 이와이즈미가 보고 있던 작전을 가져갔다. 펜을 휙휙 돌리며 대충 읽고는 무어라 끄적이더니 다시 이와이즈미에게 돌려주었다.
종이 귀퉁이에는 AM. 03, 마그리드의 문. 이라 적혀있었다.
마그리드의 문은 위대한 혁명군 M을 도와 무기 반입을 담당했던 자의 이름이다. 그 이름을 따 혁명군들은 무기창고를 마그리드의 방이라고 불렀다. 길 고양이마저 잠든 새벽 이와이즈미는 무기창고 앞에 서있었다. 약속 시간 보다 30분 일찍 와 몇 번이고 왔던 무기창고를 또 한 번 꼼꼼하게 둘러보았던 이와이즈미는 저절로 폐부 깊숙이서부터 밀려나오는 좌절감에 한숨을 쉬었다. 진짜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최식식으로 싹 재정비한 군부대를 상대하기에는 말도 안 될만큼 낡아빠지고 녹이 슨 무기들이었고 그마저도 수가 부족했다.
갑갑한 마음에 발로 이리저리 땅을 헤집는데 저 쪽에서 마츠카와가 나타났다. 발걸음을 죽인 채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이와이즈미 곁으로 온 그는 쉬잇 하고 이와이즈미의 입을 막더니 마그리드의 방 옆 조그마하게 있는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비상 탈출용으로 임시로 만든 곳이라 아무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내가 제 정체를 눈치채서 몰래 암살이라도 하려나. 허리춤에 매고 온 총과 칼이 잘 매달려있는지 슬쩍 확인하고는 이와이즈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척 조용히 마츠카와의 뒤를 따라나섰다.
마츠카와가 데려온 곳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정부가 국민들 살가죽까지 벗겨먹는 다는 소문이 여기에만 해당되지 앟다는 듯 대문부터 으리으리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이새끼 부자집 아들이라더니. 사실이었구나. 촌놈 마냥 이리저리 구경하는 이와이즈미와는 달리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꼈다. 길다랗게 뻗은 복도를 걸으며 이와이즈미는 쭉 걸린 초상화들을 감상했다. 멍한 표정도 억울하게 내려앉은 눈썹들도 마츠카와와 판박이었다. 진짜 있는 집 자식이라는게 다시 한번 더 와닿아서 새삼 제 앞에서 걸어가는 마츠카와를 쓱 흩어보았다. 저랑 똑같이 헤진 복장에 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로코코 풍으로 화려하고 섬세하게 꾸며진 문앞에 서서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를 기다렸다. 커다란 열쇠꾸러미중 푸른 빛의 보석이 커다랗게 박힌 열쇠 하나를 꺼내 굳게 닫혀진 방문을 열었다. 나머지 열쇠들도 저마다의 보석이 박혀있었다. 아마 그걸로 구별하는 듯 싶었다. 이와이즈미는 죽게 되더라도 꼭 저 열쇠 꾸러미를 훔쳐 군비에 보태자고 다짐했다. 그런 이와이즈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츠카와는 성큼 방안으로 들어가 이와이즈미를 불렀다.
"여기야."
"...뭐하는 곳이야 여긴."
"침실."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의아하게 대답하는 마츠카와를 밀치며 이와이즈미는 떡하니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구경했다. 제 방의 세배는 충분히 됨직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침실이란다. 주변을 살펴보다 번쩍번쩍 빛나는 다양한 장식품들과 고풍스러운 가구들 사이로 커다란 침대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성인 남자 서넛이 충분히 자고도 남을 크기였다.
"와.."
혁명군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살던 이와이즈미라 이런 장면은 생소하기 그지 없었다. 온 사방이 화려해서 쉽게 눈을 뗄 수 가 없었다. 자신이 침대 위로 던져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푹신한 침대 위는 부드러운 비단 이불들로 감싸져 있었기에 아프지는 않았다. 부드럽게 자신을 감싸안았다가 통 하고 위로 떠올리는 탄력성에 순간적으로 제 방에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편안함에 여기서 한 숨 자고 싶다는 충동이 자라났다. 허나 자신의 위로 타고 올라오는 마츠카와를 보면 그런 생각이고 뭐고 싹 사라지고 도망쳐야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재빠르게 옆으로 굴러 탈출하려는 이와이즈미를 턱하고 붙잡에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으며 마츠카와는 입을 열었다.
"M이 정말 허상이라고 생각해?"
"만약 M이 실존하는 인물이었고..."
"...."
"내가 M의 아들이라면?"
"허."
어처구니 없는 말에 헛웃음부터 튀어나왔다.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맞장구를 쳐주든 욕을 하든 할텐데 저건 너무나도 터무니 없는 말이었다. 허상이었던 M이 알고보니 살아있었고 가족까지 꾸렸었다라. 심지어 제 눈앞에 있는 남자가 그 위대한 지도자의 아들이라니. 농담이면 재미가 없었고 진담이면 쉽게 넘기지 못할 말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가늘게 떴다. 헛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진지해서 거짓인지 참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의심하는 그의 태도에 마츠카와는 유쾌하게 웃었다.
"M이 마츠카와의 약자라는 건 생각 못해봤어?"
"뭔 헛소리를 하는거야 지금."
"헛소리라니. M은 실존하는 인물이고 내가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말할 뿐이지."
도망칠 생각조차 접었는지 가만히 제 아래에 누워 오롯히 저만을 쳐다보는 눈빛에 마츠카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가. 저 눈에 그 누구도, 오이카와마저 없이 자신만을 담는 그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사랑스럽다는 듯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조금씩 풀었다.
아버지는 썩어 문드러진 나라를 바꾸고 싶어했지. 충분한 재력도 지식도 열망도 있었고,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어. 유일한 짐덩이가 바로 나였지. 아, 어머니는 나를 낳고는 바로 돌아가셨어. 군부쪽에서 청부살인 업자를 보냈거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고 군부에서는 어머니를 없앤거에 희희낙락했고. 어머니를 잃은 아버지는 자식인 나를 보여줬다간 군부에 의해 암살될 것이 분명했기에 할머니께 보냈어. 응, 지금 이 집. 할머니의 집안은 정부의 높은 나리중 한 명이랑 연이 닿아있는 곳이라 이곳을 건들진 않았거든. 내 아버지가 할머니의 자식인 줄도 몰랐고 말야. 사생아였거든.
암튼 아버지는 존재했고, 현 정부에서는 아버지를 암살했어. 무리들은 뿔뿔히 흩어지거나 은닉중이지. 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몇 안돼. 어 맞아. 그중에 몇명은 지금 혁명군의 높은 자리에 앉아있지. 왜 아오바죠사이에 도움을 안주냐고? 글쎄. 내가 그의 아들로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리는 걸지도. 어쨌든 난 M의 아들이 맞고 지금 미약하게나마 아버지의 길을 따르는 중이야.
짧은 문장으로 요약된 얘기에 이와이즈미는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굳은 겉모습과는 달리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는 중이었다. M의 아들? 재력 혹은 무기, 그 증거는? 저 말을 믿어도 되는가? 고민 끝에 내려진 답은 아니오 였다. 즉시 허리춤에 매어둔 총을 꺼내 자신의 머리를 조준하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마츠카와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오이카와의 말이라면 철썩같이 믿더니.
"증거가 필요한거지?"
"....어."
"보여줄게."
침대 머리맡 화려하게 조각된 부분들 중 마츠카와는 정확히 디오니소스의 팔을 위로 올렸다. 디오니소스의 팔이 올라가며 한 쪽 벽이 갈라졌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벽 안은 무기 창고였다. 다양한 종류의 총과 수류탄, 작은 폭탄 등 온갖 무기들이 종류별로 수집되어 있었다. 대강 눈으로만 흩어봐도 그 수는 어마어마 했고, 군부의 최신무기와도 맞먹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디오니소스 옆에서 술을 마시며 흥청망청 노는 판의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이번에는 반대편의 벽이 열리며 작은 보석함과 금괴가 나타났다. 여기까지 광채가 흘러들어오는 듯 해서 이와이즈미는 눈을 깜빡거렸다.
살면서 지금까지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경우가 있을까. 그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천천히 총을 내렸다. 마츠카와를 믿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이게 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게 우선인거 같았다.
"이 정도면 현 정부와 붙어도 승산 있을 것 같지 않아?"
"...지금 당장 M이 내 눈앞에 나타나도 놀라지 않을 수 있을거 같아."
"M을 원해?"
"그만큼 강력한 지도자가 있으면 좋겠지. 그만한 재력도 머리도 되는, 이왕이면 누구나 따를 수 있는 명분도 있는 사람말야. 예를들면.."
그래. M의 아들이라던가. 턱끝으로 마츠카와를 슬쩍 가리키며 이와이즈미는 그를 노려보았다. 진작 정체를 들어냈으면 이렇게나 초조해하며 부대를 움직이지 않아도 됐을텐데. 의뭉스러운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정도 였을 줄이야. 기왕이면 대장인 오이카와가 M의 뒤를 잇는 지도자가 되었음 싶었지만 마츠카와도 나쁘지 않다. 그런 이와이즈미의 생각이 훤하다는 듯 마츠카와는 굵은 눈썹을 한번 위로 까딱거렸다. 분명 오이카와와 자신을 재고 있겠지. 하지만 난 그런거엔 관심없고. 굳이 뽑자면. 자신의 앞에서 뾰족하게 눈을 세우고 있는 이와이즈미를 보면서 마츠카와는 특유의 덤덤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되면 되겠네."
동그랗게 눈을 드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마츠카와는 덤덤하게 웃었다. 내가 너에게 줄게. 가장 영광스러운 그 자리를. 제 2의 위대한 지도자 M. 이와이즈미 하지메. 슬쩍 입 안으로 불러보았다. 어감이 꽤 괜찮았다. 경악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이와이즈의 뺨에 부드럽게 키스하며 마츠카와는 생각을 정리했다.
M을 부활시키는 것은 쉬웠다. 이와이즈미의 말대로 적절한 명분과 함께 예전 M이 살아있을 때 가졌던 그 모든 것을 새로운 M에게 넘기면 그만이었다. M은 죽었지만 그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사람들 마음 속에 깊게 남아있었다. 새로운 지도자 M이라는 이름은 또 한번 많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울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이와이즈미도 섣불리 자신을 건들지 못하는 거 겠지. 그의 성격이라면 주먹을 날리고도 남았을 턴데 혹시나 마츠카와가 엉뚱한 맘을 품을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리만 굴리는 것이 보였다. 마츠카와가 맘을 품은건 이와이즈미 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번 전쟁에 M은 꼭 필요하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넌 기왕이면 그게 오이카와이길 바라고 있을테고."
정곡을 찔린듯 슬며시 눈을 피하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마츠카와는 눈을 휘며 웃었다. 하여튼 거짓말은 못한다니깐. 귀엽긴.
"나랑 한 번 자주면 오이카와에게 M의 자리를 줄 수 있는데."
"미친놈.."
"이와이즈미, 나랑 잘래?"
내 품에서 앙앙대면서 베갯머리 송사라도 해봐. 천박한 대사였으나 말하는 본인은 황제마냥 당당했다. 특유의 멍한 눈빛에 이채가 도는 것이 보였다. 얼굴을 날릴까 명치를 날릴까 고민하며 주먹을 세게 쥐던 이와이즈미는 마츠카와의 옆으로 훤히 보이는 무기들과 금괴를 보고 손에 힘을 풀었다. 마츠카와의 말대로 저것들이면 현 정부와 충분히 붙고도 남았다. 이 방에 이정도면 다른 곳에는 저런게 더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포도 숨어있을수 있겠지.
흔들리는 이와이즈미의 표정을 보며 마츠카와는 달래듯 낮은 목소리로 살살 그를 꾀어냈다. 별거 아냐 너도 기분 좋을거야. 섹스 해본적 없지? 응? 넌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겁먹지 말고.키스 기분 좋았잖아. 그것보다 더 기분좋은 걸 하려는거야. 그리고 그게 끝나면 저 모든것은 아오바죠사이의 차지가 되고, 오이카와는 그 누구보다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있겠지. 물론 썩어빠진 정부도 갈아엎을수 있을테고. 그니까
"넌 그냥 내 밑에서 울면 돼."
그럼 M은 다시 살아날거야.
이와이즈미가 천천히 자신의 목을 감싸 안아왔다. 승낙의 표시였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목덜미의 입을 맞추었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은 몸이 사랑스러워 그대로 입술을 묻은 채 푸스스 웃어버리자 아래에 깔린 몸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부드럽게 휘어진 마츠카와의 눈을 바라보다가 이와이즈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까짓것 몇시간만 버티면 판세는 무시무시하게 뒤집어져 있을 것이다. 서늘한 새벽공기와는 달리 입술에 닿아오는 열기가 소름끼치게 짜릿했다. 살살 혀로 제 입술을 핥으며 상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는 마츠카와를 더 세게 껴안았다. 거래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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