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손을 거두었다. 이것은 위험하다. 손끝에 닿았던 것에 온기를 빼앗긴 것처럼 손이 덜덜 떨려왔다. 차갑게 식어가는 한쪽 손을 다른 손으로 붙잡고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그런 이와이즈미를 보고 무언가는 눈을 휘며 웃었다.
"겁먹지마."
어둠속에서 무언가가 몸을 일으키는게 보였다. 아니 그것 자체가 어둠이었다. 이리저리 얽히고 섥히며 모양을 만들어내던 것은 일렁이며 이와이즈미의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한쪽을 집어삼켰던 거대한 어둠은 이내 조그마한 아이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아이는 가볍게 망토를 툭툭 털더니 이와이즈미와 눈을 마주쳤다. 안녕 이와쨩?
붉은 눈이 보석처럼 반짝 이채가 돌았다. 머리 위로 작게 돋아난 뿔이 아이가 인간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아이가 한발자국씩 다가올수록 이와이즈미는 한발자국씩 물러났다. 둘의 거리는 멀어지지도 좁혀지지도 않은 채 평행을 유지했다. 아이는 한발자국씩 다가올 수록 조금씩 나이를 먹었다. 어린 아이에서 앳된 소년으로 그리고 열일곱 정도의 모습에서 어느 새 이와이즈미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어른이 된 순간 이와이즈미는 벽에 부딫혔다.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갈팡질팡 눈만 이리저리 굴리는 동안 그는 이와이즈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있었다.
"왁!"
장난을 치듯 얼굴을 불쑥 들이미며 소리를 내는 그의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재밌다는 듯 푸스스 그가 웃었다. 다정하게 마주쳐오는 눈에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밀려오는 공포가 이와이즈미를 잡아삼키려 넘실거렸다. 그가 움직일때마다 어둠이 흔들리며 제 존재를 과시하였다.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의 머리 위로 단단하게 솓은 뿔은 성당의 높은 천장에 조각된 악마들의 것과 똑같았다. 천사들의 발밑에 깔려 배가 뚫리고 몸뚱아리는 역겹게 뒤틀려 저마다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세상을 저주하고 교회 안에 들어오는 자들을 똑똑히 기억해 찢어죽이겠다는 희번뜩한 눈들이 떠올라 이와이즈미는 몸서리쳤다. 제 눈앞에 있는 존재는 그 악마들과 똑같은 존재임이 분명했다. 아니면 더 악랄한 존재.
어렸을 때 성기사로 훈련을 받던 중 제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며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하지메, 성당위에 조각된 악마들이 무서우냐.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저런 흉측한 꼴이 아닌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것들이란다. 그것들은 다정하게 너에게 다가와 네 영혼을 쥐고 흔들것이다. 그러니 늘 경계하거라. 그것은 네가 이길 수 조차 없으니 마주치지도 않게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야 한단다.
이길 수 조차 없는 그 악랄한 존재는 이와이즈미가 소중하다는 듯 천천히 손을 뻗어 가볍게 목을 쓰다듬었다. 깃털로 간질이듯 가볍게 닿는 그 손길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냉기가 피부를 뚫고 혈관을 타고 돌았다. 몸이 차게 식어가는 것 같았다. 팔딱팔딱 뛰는 목쪽의 혈관을 어루만지며 그가 감탄하듯 눈을 크게 뜨고 속삭였다. 따뜻해.
신기하다는 듯 감동스럽다는 듯 눈을 빛내는 그와는 달리 이와이즈미는 언제 그 손이 제 목을 뚫고 심장을 끄집어낼까 두려워 숨을 멈춘 채 가만히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그채로 목이 뜯겨나갈 것 같았다. 그런 이와이즈미를 가만히 보던 그는 가볍게 검지로 목을 툭 쳤다.
"갑갑하지 않아? 숨셔."
그의 말에 이제서야 호흡하는 법을 배운 아기마냥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산소가 들어오지 않아 파랗게 질렸다가 조금씩 돌아오는 혈색에 그는 기쁘다는 듯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었다.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눈길에 이와이즈미는 용기를 내어 겨우 입을 열었다.
"...나, 한테,왜, 이러,는거야?"
겁에 질려 목소리가 더듬더듬 튀어나왔다. 숨결조차도 일정치 않게 뒤죽박죽 흩어졌다. 떨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그는 가엾다는 듯 한숨같은 숨결을 내뱉었다. 이윽고 따라오는 달콤한 음성에 이와이즈미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말했잖아, 너 예쁘다고."
조심스럽게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이듯 말하는 그의 말에 어렸을때 만났던 작은 꼬마가 생각났다. 머리끝까지 망토를 뒤집어쓴채 자신을 보며 예쁘다고 말하며 소중한 것을 쓰다듬듯 몇번이고 얼굴을 조심스레 만지던 아이. 나중에 다시 보자. 눈을 예쁘게 휘어가며 웃던 그 모습이 지금 자신의 앞에서 눈을 휘며 웃는 그와 겹쳐졌다. 다시 만나자는 게 이런거였어?
발끝에 축축한 것이 닿았다. 이상한 기분에 눈동자만 아래로 내려서 보자 하얀 신발에 검붉은 것이 묻어있었다. 조금 더 옆으로 눈을 굴리자 이리저리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인영이 보였다. 어둠에 대항하기 위해 검을 들었던 새하얀 빛의 무리였다. 공포에 잠식되었던 이성이 깨어나 차츰차츰 이와이즈미의 기억을 깨웠다.
밤중에 성당에 마왕이 나타났다는 얘기에 그와 동료들은 자다가 일어나 검을 들었다. 저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그들의 신앙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감히 신을 모시는 신성한 자리에 더럽고도 사악한 것이 나타났도다. 저것의 목을 베자. 누군가의 외침에 그들은 다들 소리를 지르며 성당으로 뛰쳐들어갔다. 청춘이었기에 열정적이었으며 두려움이 없었고 더없이 무모했다.
마왕의 작은 손짓 하나에 그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순식간이었다. 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 칼을 머리위로 든 순간 마왕은 그들의 마지막 숨결을 앗아갔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채 십자가 앞에서 달빛을 받으며 웃고 있는 마왕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성해보였다. 유일하게 숨이 붙어있는 이와이즈미를 보며 마왕은 한번 눈을 깜빡였고 그대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이와이즈미는 겨우 발걸음을 떼고 십자가를 향해 걸어갔다. 자신이 믿는 신과 함께라면 그렇다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살아날수 있지 않을까. 움직이지 않는 몸을 겨우 이끌어 어둠속에 파묻힌 십자가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이와이즈미는 깨달았다. 이것은 잘못되었노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한기가 스믈스믈 피어올랐고 손에 딱딱한 무언가가 닿았다. 산양의 뿔과 같은 감촉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본능적으로 손을 거두었다. 이것은 위험하다.
"무서워?"
그의 한마디에 현실로 돌아왔다. 안타깝다는 듯 처진 표정에 소름이 끼쳤다. 왜 그런 표정을 짓노냐고 말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팔이 자신의 허리를 감쌌기 때문이다. 더없이 정중하고 부드러운 몸짓에 이와이즈미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젠 익숙해져야해."
이 현실에게도 나에게도.
나긋나긋하게 숨결과 함께 귓가에 불어넣는 목소리는 사슬이 되어 이와이즈미를 옭아매었다.자신은 이 존재에게서 절대 도망치지 못할것이라는 예감이 불현듯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