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이이와] 꽃길 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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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이와 고전AU]
꽃길 별길
글쓴이 :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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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이 마을은 한양으로 갔다 부인의 요양으로 잠시 고향에 내려온 세도가 집안 덕분에 한동안 떠들썩했다. 오랜만에 고향에 왔다며 몇날 며칠을 잔치를 여는 통에 온 마을 사람이 오랜만에 다 모일수 있었다. 그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은 즐거이 인사를 하였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구경하기 바빴다. 집안도 좋고 인물들도 다 훤한 집안이라 동네 사람들은 눈이 호강을 한다며 즐거워 하였다.
특히 그 집안의 막내 아들이 장대하고 인물이 수려하여 마을 처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나름 인물이 좋다 자부하는 처녀들은 부러 그가 서당에서 집으로 가는길 강귀에서 빨래를 하기도 하였고 물동이를 들고 그의 앞에서 걸으며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였다. 그런 아가씨들을 보며 그는 예쁘게 웃어주긴 했지만 그건 모두에게나 주는 공평한 관심이었기에 처녀들은 입을 샐쭉 내밀었다. 하지만 이내 곧 잘생긴 얼굴에 사르르 녹는게 일상이었다.
모든 일에 능숙하게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쓰는 그가 유일하게 진심으로 환하게 웃는 것은 어릴 적 헤어졌다 다시 만난 동무의 앞 뿐이었다. 사고로 양친을 잃어 혼자 사는 친구의 말벗이 되어주겠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가는 오이카와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저런 사내가 어딨냐고 그를 칭찬했다.
실상은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한양에서 유행하는 옷감을 사다 만든 새옷을 곱게 차려입은 오이카와는 종종 걸음으로 마을 구석 홀로 떨어져있는 집으로 걸어갔다. 대문 앞에서 잠깐 발길을 멈춰 오이카와는 급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멋들어지게 옷고름을 다시 매고 갓을 고쳐 쓴 오이카와는 몇번 헛기침을 하다 슬쩍 문을 열었다. 자신이 사는 으리으리한 기왓집과는 달리 소박하기 그지 없는 집이었지만 주인을 닮아 정갈했다.
조용한 집구석을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찾는 이가 보이지않아 오이카와는 결국 목소리를 내었다.
"이와쨔앙."
한껏 콧소리를 섞어 애교스럽게 부르자 인상을 찌푸린 이와이즈미가 작은방 문을 여는게 보였다. 거기 있었구나. 냉큼 신을 벗고 방으로 뛰어들어가 한껏 품에 안고 그의 체취를 코에 담았다. 책을 보고 있었는지, 간단한 마실 것과 상 옆쪽으로 책들이 쌓여있었다. 이와이즈미와 자신의 사이를 가로막는 책상을 발로 저 멀리 밀어버리며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더욱 품에 끌어안았다. 보고싶었어. 나도. 품에 가득 안은채 조그맣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들이 달큰했다.
"이와쨩! 이거 다과랑 복숭아 말린거랑, 사과 말린거랑. 아, 엿이 녹아서 둘이 붙었다. 자 사과엿!"
고운 보자기에 가득 담아온 먹거리들을 꺼내며 오이카와는 이것 저것 골라내었다. 맛난 것만 쏙쏙 골라 자신에게 넘기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까지 단거는 싫다고 자신은 적당히 차에 향이 진하지 않은 다과가 좋다고 그리 말했는데도, 하나도 안듣고 자신이 좋으면 다들 좋다고 생각하는 그 성정은 어릴때부터 그대로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지 않는 이와이즈미를 모른 척하고 뽀뽀를 하는 둥 얼러가며 입안에 쏙쏙 단것들을 넣는 오이카와의 얼굴은 어미새 그 자체였다.
"맞다. 이와쨩, 요번에 작은 누이가 여기 왔다갔다고 하던데.."
"응. 혼자 사는게 딱하다고 이런 저런거 갖다주더라."
"....누이한테 넘어가면 안돼. 알았지?"
얼굴도 내가 훨씬 낫고 밤일도 내가 더 잘하니까. 하고 샐쭉 웃으며 말하는 오이카와가 얄미워 일부러 손에 힘을 주고 코를 꽉 잡아 비틀었다. 아야야 엄살을 떠는 그를 바라보며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누이가 왔던 날을 떠올려 봤다.
오이카와와 똑같은 갈색 머리에 큰 키를 한 미인이었다. 어릴때와 달리 확연히 여성스러워진 모습에 잠시 못알아봐 어색하게 경게를 하자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와이즈미! 어떻게 날 기억 못할수가 있어! 라고 크게 외치며 등짝을 여러번 내리쳤다. 쓰라린 등을 매만지며 누님 오랜만이에요. 하고 인사를 하자 그제야 환하게 미소지었다.
이런 저런 반찬들을 꺼내며 잔소리 하는 모습이 꼭 예전 그대로라 어색함은 금방 풀렸었다. 그리고 보니 누님 많이 예뻐졌네요. 하고 농담을 건내자 확 얼굴이 붉어지며 깡깡 소리치는 모습이 꼭 오이카와 토오루랑 판박이라 크게 웃어버려 결국 삐친 누이를 달래느라 한참을 씨름해야만 했다.
오이카와의 누이를 생각하며 웃고 있자, 그가 심통이 난건지 이와쨩 나랑 있을 때는 누이가 아니라 날 봐야지. 하고 손을 쭉쭉 잡아당긴다. 언제 누웠는지도 모를만큼 자연스레 이와이즈미의 무릎을 베고 누운 모습이 퍽 익숙하다. 말 없이도 편안한 둘이라 가끔 머리카락을 꼬며 장난을 치거나 손을 얽히고 설키며 장난을 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이 오고가지 않았다.
"야."
"응, 왜 이와쨩?"
"나 다리 아프다."
"그럼 이번에는 이와쨩이 누워! 내가 무릎베개 해줄게."
신이 난듯 벙싯벙싯 웃으며 어느새 휙하고 바뀌어버린 자세에 이와이즈미가 웃음을 터뜨렸다. 무릎베개가 뭐 그리 재밌고, 좋다고 얼굴이 녹아내릴 듯이 달큰하게 웃는게 귀여워서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어어, 왜 웃어. 혹시 저가 자세를 잘못 잡았나 싶어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는 오이카와의 모습이 참으로 좋았다. 에라 인심 썼다. 벌떡 일어나 오이카와의 목을 껴안고 뺨을 부비는 둥 응석을 부리자 이와쨩, 어리광 부리는건 내 몫인데.. 하면서도 저를 꼭 껴안고 토닥여주는 손길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오이카와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참 좋았다. 어릴때부터 서로 뿐이라 오이카와가 한양으로 이사갔을 때는 참으로 허했었다.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라 많이 외롭고 심심했었다. 참으로 오이카와가 보고싶었다. 그러다 다시 돌아온 오이카와는 참으로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잘난 사내 놈이라 괜히 심술도 나고 설레기도 했다. 첫사랑이라 그랬다.
이사가기 전날 밤 다시 여기 오면 우리 꼭 혼인하자며 새끼 손가락 걸며 울던 저보다 작던 오이카와를 달래주던게 엊그제 같은데, 그 약속 기억나냐며 능글맞게 이불속으로 들어오는 오이카와는 이제 자신보다 큰 장대한 사내여서 가끔은 한탄스럽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내가 더 클줄 알았는데.
자신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 오이카와의 손을 잡자, 응? 하고 눈을 맞춰온다. 온 동네 처자맘을 휘어잡은 그 잘난 얼굴이 얄미워서 뽀뽀를 하다 입술을 콱 깨물자 울상을 짓는다.
"뭐야, 입맞춰주는 건줄 알았는데."
"맞췄잖아. 입."
"우리 이와쨩한테 입을 맞춘다는 게 뭔지 내가 가르쳐줘야겠네."
장난스럽게 쪽쪽 하고 부딪히자 이와이즈미가 웃으며 얼굴을 밀어냈다. 오이카와씨의 귀한 뽀뽀라고? 일부러 얼굴을 꽉 잡고 소리나게 입을 맞추다가 뺨을 잘근 깨물기도 하는 둥 장난을 쳤다. 키득키득 웃으며 손발로 밀어내는 이와이즈미를 꽉 잡고 간지럼을 태우며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자 웃음소리가 더더욱 커진다. 마지막은 역시 여기지. 웃느라 살짝 벌려진 입안에 냉큼 혀를 집어넣으며 오이카와는 씩 웃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닿던 입술이 어느새 서로를 희롱하며 탐하는 형태로 바뀌어갔다. 아랫입술이 부풀어 오르도록 진득하게 빨기도 하고 혀로 입천장을 살살 긁어 상대의 신음소리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그런가하면 서로 혀만을 밖에 내밀어 핥다가도 다시 서로의 입속으로 들어가 가릉가릉 울어대었다. 숨이 막혀 입술을 때면 금방 상대편이 쫓아와 다시 맞대고 그 상대가 지쳐 입술을 때면 다시 제가 쫓아가 입술을 맞대었다.
어느새 창 밖으로 기울어진 달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제 옷고름을 풀려 끙끙 거리는 오이카와를 밀어냈다. 집에 갈 시간 다 됐다, 바보야. 한 판만 하자. 한판하고 영원히 안볼래 집에갈래. ....집에 갈래.
외박에는 엄한 집안이라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급히 오이카와의 웃옷을 챙겨주고 자신도 외투를 입는데 이와쨩,하고 조용히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아까의 장난기는 싹 사라진 채 잘 갈아진 칼처럼 눈에 총기를 띄고 있는 오이카와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이와이즈미는 급히 오이카와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와쨩, 나 과거시험을 볼까 해."
한양으로 가겠다는 오이카와의 말에 겁이 덜컥 났다. 저번처럼 한양으로 가서 연락이 끊기면 자신은 어떡해야 하나. 예전에도 연락이 끊겨 혼자 애달파했었다. 더군나 양친이 돌아간 후, 혼자뿐이던 적막한 삶 속 오이카와가 유일한 희망이자 빛이라 그가 사라지면 참으로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질척대며 그에게 매달렸다가는 아예 정을 때버릴거 같았다. 차라리 아무렇지 않게 보내주면 나중에 편하게 친구로서라도 한번 자신을 찾을 수 있으니 지금은 아무 내색없이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언제나 그렇듯이 담담하게 웃으며 한양이라 좋지. 과거시험 잘봐야돼. 하고 그를 격려해주었다. 허나 오이카와는 맘에 안든다는 듯이 이와이즈미의 볼을 주욱 잡아당겼다. 이와쨩, 나쁜 얼굴. 혼나야 돼. 볼따구가 주욱 늘어진채로 어리둥절하게 오이카와를 쳐다보자 그가 툴툴대며 말을 이었다.
"한양에 가서 최대한 빠르게 과거를 볼 생각이야. 지금까지 배운 것도 있고 나 머리도 좋으니까 한번에 붙겠지. 붙으면 바로 거처를 마련하고 거기서부터 차례차례 내 세력을 늘릴거고. 돈도 있고 집안도 좋으니 과거에 붙기만 하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될거야. 그러니까, 그니까... "
방금까지 막힘없이 내뱉던 말과는 달리 오이카와는 마지막 문장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이와이즈미는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왠지 그의 뒷말을 알 것 같았다.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편하게 말을 기다리자 오이카와가 쑥쓰러운 모습으로 이와이즈미의 손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니까 이와쨩, 음음.
무어라 말을 이어야 할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이리저리 눈을 두다가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손을 꼬옥 잡고 그에게 제일 하고싶었던 말을 했다.
"하지메. 나랑 같이살자. 꽃신 신겨줄게."
어리광 부리던 모습도 조금은 경박하던 모습도 다 사라지고, 제법 남자다운 모습으로 말을 하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행복으로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오랜만에 불려보는 이름에 설레었다. 사실, 오이카와는 저보다 더 좋은 사람 예쁜 여자를 만나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손을 놓을 수가 없어서 미안함에 눈가가 시큰해졌다.
"...사내놈한테 꽃신이 뭐냐."
"그럼 멋진 가죽신."
이와쨩 지금 신발이 중요한게 아냐, 대답은? 초조한 듯 울상을 지으며 재촉하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눈물도 터졌다. 과연 자신이 오이카와의 곁에 있을 자격이 있을까. 너무 응석부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겉에 있고픈 마음이 더 커 결국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같이 살자. 하고 울며 웃으며 말을 하자,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이 오이카와는 한숨을 포옥 내쉬고 이와이즈미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한양가서 맛난것도 먹고 나 무릎베게도 해줘 이와쨩. 큰 덩치로 응석을 부리는 그를 겨우 때어내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가야된다며 오이카와를 재촉했다.
"근데 너희 가족이 허락할까.같이 사는 거 반대할 것 같은데."
"아, 누이만 허락하면 돼. 부모님은 이미 허락했구. 그것도 결혼 조건으로."
"그게 무슨말"
"쉿, 이와쨩은 몰라도 돼. 그나저나 작은 누이랑 자꾸 놀지마 이와쨩. 작은 누이 첫사랑이 너란 말야."
"그건 또 뭔말이야."
순식간에 밀려오는 별의 별 이야기에 머리가 과부하가 걸려 멍하니 오이카와를 바라보자 씨익 웃는다. 나만 바라보면 된다는 얘기야. 이와이즈미를 얻기 위해 있었던 더럽고 치졸한 얘기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된다. 한양에 가는 것도 이와이즈미를 얻기 위함이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이와이즈미는 그저 자신이 주는 사랑만 알면 된다. 사실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어머님의 요양도 있었지만, 작은 누이와 저는 이와이즈미를 보기 위해서였다. 누이가 여자라는 장점이 있다면 저는 오랜 추억을 쌓아왔다는 장점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누이가 탐을 내기 전에 이와이즈미를 데리고 홀랑 한양으로 도망갈 생각에 오이카와는 벌써부터 신이 났다. 누이는 다른 좋은 사람한테 시집가라지. 나는 이와쨩한테 장가갈 테니까.
"이와쨩도 미리 짐싸. 언제 갈지 모르니까."
"야반도주냐?"
"그 비슷한거."
이해가 안된다는듯 인상을 찌푸리는 이와이즈미가 무어라 말을하려 입을 열자 오이카와는 한번 더 입술을 맞대어보았다. 어쩔수 없다는 듯이 벌려주는 입속이 방금 먹은 과육처럼 달았다. 이와쨩 나 과거시험 붙고 올테니까, 빨간 혼례복 입고 나한테 시집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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