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립 / 전력] 사탕비가 내리면

쿠로바스/소설 2015. 3. 15. 00:06

 

 

 

전력 60분, 처음으로 챙기는 기념일.

 

화이트 데이!

 

브금 있어요!

 

 

 

 

 

-

 

 

키세는 용케 카사마츠의 대학교에 합격했다. 잘난 농구 덕분이었다. 농구 동아리에서 손을 휘휘 저으며 선배! 하고 외치는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선배 놀라게 하려고 일부러 오늘까지 아무런 말도 안했슴다! 하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키세의 너른 등판을 고등학교 시절마냥 세게 걷어차고 카사마츠는 웃으면서 잘 왔다고 인사했다. 

어서와 키세.

 

 

-

 

 

잘오기는 개뿔.

 

몇시간전의 자신을 저주하며 카사마츠는 무거운 걸음을 겨우 떼었다. 어깨에는 커다란 덩치 한명이 빨래마냥 널려 있었다. 개자식 근육 더 붙은거봐. 절로 올라오는 짜증에 혀를 쯧 하고 차자 키세가 으응 거리며 어깨에 부비작 거린다. 지 주량도 모르고 좋다고 받아마시니 이 꼴이 나는 거란다.

 

기적의 세대가 왔다며 좋다고 키세의 잔 가든 술을 부어준 동기와 선배들을 떠올리며 카사마츠는 이를 갈았다. 자신들이 책임지지도 않을거면서 좋다고 술은 왕창 먹여놓고 카사마츠를 보며 네 후배라며? 둘이 같이 가면 되겠네! 안녕! 하고 상큼하게도 도망갔다.

 

 

"어라, 선배! 선배 공이에요 공!"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키세가 카사마츠의 팔을 뿌리치고 빠르게 달려나갔다. 말릴 틈도 없이 길거리에서 키세는 멋있게 3점 슛을 날렸다. 취한게 거짓이라는 듯 날카롭게 빛나는 눈과 유연하게 휘어진 몸이 코트 안에 있는 것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키세가 던진건 빈 깡통이었고 코트 주변 사람들의 환호성 대신 빈 거리를 까가강 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남겼다.

 

카사마츠가 키세를 잡으려 할 때마다 키세는 날렵하게 피하며 선배 나를 이기는 건 나뿐이야아아아!  아오미넷치 퍼펙트 카피! 따위를 외치며 카사마츠의 복장을 북북 긁어댔다.

 

아, 죽이고 싶다. 안되나. 농구하는데 에이스가 꼭 필요할까.

 

카사마츠의 깊은 내면 속 갈등도 모른채 키세는 신나게 웃으며 가방을 휘휘 돌렸다. 돌아가는 가방 틈 사이로 조그마한 사탕들이 와르르 흩날렸다. 카사마츠를 피해다니며 깡총깡총 뛰는 키세의 뒤로 사탕들이 길을 만들며 떨어졌다.

 

"..니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헨젤이냐."

 

 

혹시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이 아닌가 싶어 우려심에 카사마츠는 하나하나 주워서 키세 가방에 넣어주었다. 그러나 텐션이 오를대로 오른  키세가 신나게 웃으며 다시 가방을 휙 돌려 카사마츠의 노력과 배려를 수포로 만들었다. 뒷통수를 치고싶은 손을 애써 내려 사탕들을 다시 주워 넣어주면 키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가방을 돌리며 사탕길을 만들었고 카사마츠는 욕을 겨우겨우 눌러가며 사탕을 줍는 일의 반복이어다.

 

 

 

"야! 키새끼야,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허리를 구부려 자그마치 30분간 사탕만 줍던 카사마츠는 울컥 하고 밀려오는 짜증에 키세의 얼굴을 향해 사탕을 던졌다. 원래대로라면 벌써 도착했을 집인데 저놈의 사탕을 줍느라 아직도 길거리였다.

 

 

"썽내지마여 스언배! 인상 찌푸르면 주름짐다!"

 

"니가 성질내게 만들잖아!"

 

"미간괴물!!"

 

 

꺄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 달려가는 키세를 보며 카사마츠는 운동화끈을 고쳐매었다. 오냐, 오늘이 너죽고 나 사는 날이다. 손발목을 풀고 달려나갈 준비를 하던 카사마츠는 저멀리서부터 다시 자신의 쪽으로 달려오는 키세를 보고 멈칫했다. 뭐, 뭐야.

 

 

"서어어언배애애애애애애!!!"

 

 

큰 소리로 외쳐대는 선배소리에 화들짝 놀란 카사마츠가 재빨리 키세에게 다가가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라도 파파라치에게 걸릴까봐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이런 꼬라지가 기자에게 걸려 인터넷에 나도렉 된다면 키세의 이미지는 주정뱅이로 굳혀질게 분명했다. 아직 스물밖에 안된 애한테 그런 이미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이런 카사마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세는 연신 선배선배! 거리며 헤헤 ㅇㅅ기 바빴다.

 

 

 

"서언배! 우리 캇사마츠 선배!"

 

"캇사마츠는 누구냐..."

 

"이잉 당연히 제 앞에 있는 선배죠!"

 

"난 카사마츠인데."

 

"응응 캇싸맛츠!!! 우헤헤헤"

 

"니 멋대로 내 성을 바꾸지마 키세끼야."

 

 

우리 아부지가 준 소중한 성이거든?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대답해주는 카사마츠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난다는 듯 카사마츠의 손을 잡고 붕붕 휘두르던 키세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스언배! 히끅."

 

 

아, 술냄새. 너 저리가라. 라고 표정으로 말하는 카사마츠를 보며 키세가 황급히 입을 막았다. 이게 아닌데.

 

 

"선배!"

 

"제가 서언배애 좋아하는거 알져?"

 

"근데 왜 모른척해요?"

 

"나빠 선배."

 

 

 

갑자기 던진 돌직구에 카사마츠는 방어자세를 잡기도 전에 세게 한방 맞았다. 이 미친놈이 뭐라는거야 갑자기. 키세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둘다 꺼내지는 않는 이야기였다. 서로 모른척 하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왜 이제와서 갑자기 꺼내 사람 심장을 떨어지게 만드는 건가.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카사마츠는 그저 어버버 거리며 있었고 그 앞에서 키세는 휘청거리며 아이쒸, 선배도 나 좋아하는거 같은데, 이잉. 하며 취객의 정석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그렇게 석상이 되어버린 사람을 붙잡고 뭐라뭐라 중얼거리던 키세는 결국 휘청거리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한채 길바닥 위로 자빠졌고 키세의 손에 붙잡혀 있던 카사마츠가 같이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직격으로 부딫힌 엉덩이를 문지르며 화를 내려는데 갑자기 키세가 벌떡 일어나 카사마츠의 머리위로 가방을 탈탈 털었다. 커다란 가방 가득히 들어있던 사탕들이 비처럼 카사마츠 머리위로 우수수 쏟아졌다. 엉덩이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아프게 머리를 때리는 사탕들에 카사마츠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야 취할거면 곱게 취해라 엉?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선배 바보에요? 오늘 화이트데이잖아요."

 

"그게 뭔데."

 

"네?"

 

"그거 뭐하는 날인데."

 

"악! 선배 바보에요? 아님 모른척 하는거예요? 진짜 몰라요??"

 

"뭐야. 모른다고 무시하냐 죽을래?"

 

"화이트데이잖아요. 좋아하는 사람한테 사탕 주는 날."

 

 

 

 

키세의 말에 그제서야 카사마츠가 아.. 하고 낮은 탄식을 흘렸다. 그러고보니 이맘때쯤에 모리야마가 사탕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닌 것을 본것 같기도 했다. 자신은 농구하느라 바빴고. 생각해보면 오늘 동기들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사탕 하나씩을 들고 다녔던것 같기도 하다. 물론 자신은 농구하느라 바빴고.

 

 

 

주변에 흩뿌려진 사탕들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키세를 쳐다보자 귀끝까지 빨개진채 울망울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게 보인다.

 

 

 

 

"좋아해요. 선배 진짜 좋아해요."

 

 

 

 

이제는 코까지 훌쩍거리며 말하는 키세의 모습에 카사마츠는 웃음이 나왔다. 덩치는 산만한게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게 귀엽긷 하고 재밌기도 했다. 키세, 야 넌 무라사키바라보고 어린애 같다고 놀리면 안돼. 둘이 하는짓이 똑같구만.

 

 

 

"뭐가 재밌다고 웃슴까! "

 

"너."

 

"...이익.  선배도 나 좋아하잖아요! 사겨요 우리. 아 사겨요!"

 

 

"뭐, 뭔소리 하는거야, 안좋아하거든? 나 막 너한테 막 관심있고 그런거 아니거든?"

 

 

 

 

징징거리는 키세를 향해 사탕 몇개를 집어던지며 카사마츠가 부끄러움에 소리를 빽 하고 지르자 키세가 온몸으로 칭얼거리며 카사마츠 앞에 쭈그려 앉았다.

 

 

선배. 좋아해요. 사실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사탕 주고싶었어요. 발렌타인도 챙기고 싶었고, 성년의 날에도 근사하게 선물 주고싶었어요. 근데 선배가 싫어할까봐. 그래서 못줬는데 이제 짝사랑만 하기도 지치고, 또 술김이니까. 그 핑계도 겸사겸사 해서.

 

 

취기가 도는지 앞뒤로 옆으로 휘청휘청거리며 중얼거리는 모습에 카사마츠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폭 쉬었다. 그런 카사마츠의 눈치를 보다 키세가 밉지않게 씩 하고 웃었다. 그 모습 하나에 이제까지의 짜증이 사르륵 풀리는 걸 보면 자신도 어지간히 요 후배에게 약한게 분명했다.

 

 

자신과 키세 주변에 흩뿌려진 사탕비를 보며 카사마츠가 입을 열었다.

 

 

"나도. 좋아해."

 

 

가로등 불빛에 사탕 껍데기가 반짝반짝하고 빛났다. 어쩌면 술김에 착각일수도 있다. 그랑 자신의 주변만 환하고 빛나보이는 착각. 그러면 어떠한가 이리 좋은데.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고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첫키스는 달콤하지도 귓가에 종소리가 울리자도 않았다. 그저 후덥지근한 숨결 사이에서 올라오는 술냄새가 다였다.

 

그래도 좋아서 둘은 눈가를 휘며 입을 쪽쪽 맞췄다. 이 화이트데이가 둘이 처음으로 챙긴 기념일이자 사귀게 된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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